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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어시장4

김형윤의 <마산야화> - 93. 어시장 93. 어시장(魚市場) 마산의 한인 경제의 동맥이라고 일컫는 구마산 어시장의 연혁은 확실치 않으나 약 2백 수십 년 전부터라는 고로(古老)들의 추측으로서 생선과 일용품 시장은 6,70년 전까지는 구강(舊江, 현 산호동)이라는 취락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업조합으로 약진하여 부산에 버금되는 조합건물이 윤환(輪奐)의 위세를 뽐내고 있지마는, 조합 이전의 어시장에는 객주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영세 어민에게는 조업자금을 대여함으로써 어로고(漁撈高)의 몇 분의 얼마를 이자조로 공제하여 객주와 어민간의 상호 유대를 견지해 왔던 것이다. 합포사라는 객주들의 협의기관을 조직하여 외래자금의 침투를 공고하게 방어하여 그 움직임이 일사불란하였다. 한 예를 들면 외래자금이라는 것은 특히 일인들을 지칭하는 것인바, 그 .. 2016. 5. 23.
마산 창원 역사 읽기 (37) - 마산의 심장, 어시장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2 마산의 심장, 어시장 어시장은 마산의 심장이다. 어시장의 성쇠와 마산은 하나다. 어시장이 살아 숨쉴 때 마산은 피가 끓는 청년이 된다. 어시장의 하루는 아직도 밤이 깊은 새벽 3∼4시부터다. 너른마당의 새벽시장에는 시골에서 지은 채소를 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내리는 할머니, 전날 오후 잡은 게 한 동이를이고 나와 앉은 아주머니, 집에서 만든 고추장, 된장, 된장에 박은 고추를 수북히 담아 들고 나온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건어물가게 주인들은 멸치, 꼴뚜기 등을 수북히 담아 가게 앞에 진열하기 바쁘다. 대풍골목 앞 공터에는 횟집주인들이 5∼6시경이 되면 수십 대의 물차에서 펄떡펄떡 살아있는 히라스(부시리), 광어, 농어, 숭어 등 제철 횟감을 .. 2015. 2. 2.
마산창원 역사 읽기 (20) - 창씨개명 거부한 민족자산가 명도석 3. 지역의 인물을 찾아서 3-3 창씨개명 거부한 민족자산가 명도석 마산 진동 신기리 죽전마을 야트막한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묘 2기가 있다. 허당 명도석은 그의 부인과 함께 나란히 누워있다. 그의 사위인 김춘수가 지은 묘비문이 있다. 선생께서 남기신 항일투쟁 발자취는 크고도 뚜렷합니다.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던 마산어시장에서의 상권투쟁(商權鬪爭), 노동야학교에서의 후진교육(後進敎育), 기미독립만세항쟁(己未獨立萬歲抗爭)의 마산에서의 주도, 동아일보 창립주주로 민족계도사업(民族啓導事業)에 참여 및 만주 땅 안동(安東)에서의 거사모의사건(擧事謀議事件)으로 체포되어 평양에서 치르신 옥고(獄苦), 밀양 폭탄사건(爆彈事件) 거사자금 전담(專擔), 의열단(義烈團) 경남거점조직을 주재(主宰), 일본에의한 창씨개명(創氏改.. 2014. 10.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6) - 강점제3시기 중앙부두 건설공사도 제1부두와 같이 1936년 10월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의 삼택조(三宅組)에 맡겨 시공하여 제1부두와 같은 날인 1939년 5월 19일 준공하였습니다. 총 25,475평 규모로서 총길이 1,080m의 물양장도 갖추었습니다. 현재 이 중앙부두에는 연안여객터미널․마산지방항만청․모래부두․쌍용양회 시멘트 사일로․세관․검역소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아이파크 앞에 합동청사가 준공되었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곧 이전할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이전하고 나면 이 일대를 근래에 조성한 서항부두와 함께 해양친수공원으로 조성할 것입니다. 마산 해안에 큰 변화를 가져올 계획이므로 시민들 기대가 높습니다. 시멘트 사일로도 철거한다고 하는데 여수엑스포 때처럼 재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설.. 2013.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