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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00:0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지표로 해석된다.

구들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먼저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남에서도 초기철기시대 의 구들유적이 출토되었다.

사천시의 늑도에서 발굴된 주거지에 보이는 구들유적이 그것이다. 이 구들유적은 온난한 한반도 남단의 경남 해안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삼한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늑도의 구들유적은 타원형의 주거지 내부에 아궁이 시설을 만들고 외벽을 따라 외줄의 구들 고래를 시설한 것으로, 구들 고래의 끝에서 집 밖으로 연기가 배출되도록 만든 것이다.

한편 초기철기시대 경남지역에는 고상주거(高床住居)가 널리 존재하였다.

대표적인 고상주거지로는 옛 가야지역인 김해 부원동 주거지를 들 수 있으며, 그밖에 삼천포 늑도, 김해 봉황대, 창원 가음정동에서도 고상주거지가 발굴되었다. 이밖에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고상형 가형토기(家形土器)도 고상식 주거 또는 고상식 창고가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해 봉황대 고상식 주거유적 복원지>

 

한반도의 고대국가는 기원 전후로 시작되었다. 북방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 1세기경에, 남방에서는 기원 후 2~3세기경에 백제와 신라가 국가체계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주거 형식도 원시단계에서 벗어나 목조 형식을 기반으로 새롭게 발달하게 된다.

삼국시대 초기에도 서민들의 집은 대체로 움집이었으나 점차 초옥(草屋) 토실(土室)의 초가집으로 발전하였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지붕제인 기와가 도입되면서 왕궁이나 관청, 사찰 등의 공공건물은 기와집으로 건축되었다. 이는 기와지붕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지반조성기술과 함께 기둥이 받는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정교한 건축기술이 도입되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는 실내에 쪽구들을 설치하여 난방과 취사를 하였으며, 상류층은 구들과 함께 철제 화로와 같은 별도의 난방시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아궁이>

 

백제나 가야는 구들보다는 습기를 피하기 용이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고상식 주거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는 T자 형태의 쪽구들이 사용되긴 했으나 상류층은 집의 내부 바닥에 마루를 설치하고 고구려처럼 화로와 같은 별도의 난방시설을 사용했다. 신라는 옥사조(屋舍條)를 제정하고 백성에서부터 진골에 이르기까지 각 계급별로 주택의 규모와 치장, 사용재료 등을 제한하였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귀족 계층은 침상과 평상을 이용하는 기와집을 짓고 살았지만 서민들은 토탑(土榻 : 흙 침상)’이라는 부분 온돌이 설치된 초가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생활이 일반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려 중기 이후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오늘날의 온돌과 같은 전면온돌과 마루가 동시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부분온돌과 전면온돌의 차이는 불을 때는 아궁이가 실내에 있느냐 실외에 있느냐의 차이다.

온돌과 마루의 공존은 이후 우리나라 주거 문화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남쪽에서 발달된 마루와 북쪽에서 발달된 온돌이 결합되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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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07: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무학여고 뒷산에서 나온 붉은 항아리>


마산인근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요?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은 그 동안의 다양한 연구와 유적 발굴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창원시 반계동 선사유적지 발굴현장에서 빙하기에 형성된 토층 발굴과 창원 동면 덕산의 합산패총,
그리고 진해 안골포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토기(土器)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마산의 현동․구산면․진동․진북 등지에 분포된 고인돌과 고대취락지가 있습니다.




마산 도시 한복판
에서도
청동기시대유적
이 나왔습니다.
바로 위 사진입니다.
마산 회원동의 무학여고 뒤 이산미산에서 1972년 출토된 붉은 채색간토기(紅陶)입니다.

채색간토기는 고운 흙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든 뒤 표면을 갈아 반들거리게 하고 그 위에 산화철을 바른 토기입니다.
회원동에서 멀지않은 자산동 환주산성에서도 이와 같은 토기가 출토된 적이 있습니다.

이 균형미 좋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항아리는 마산무학여자고등학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청동기시대,,,,
3,000년이라는 그 아득한 과거의 시간에 누군가가 남긴 이 작은 항아리 한 개가 마산이라는 도시에 얼마나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였던 천관우 선생은 마산·창원·칠원지역을 일러 삼한시대의 변한 13부족 중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 김해)과 변진안야국(弁辰安邪國, 함안)의 사이에 있었던 변진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창원대 남재우 교수는 주조마국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면서,
창원 다호리와 덕천리에서 발견된 묘와 그 부장물로 보아 이 지역이 변한제국(弁韓諸國) 중 하나의 나라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의 추정은 이러하지만,
기록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마산지역의 정치집단은『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이라는 원시적 부족국가 '골포국(骨浦國)'입니다.

포상팔국은 글의 뜻처럼 바닷가에 자리한 여덟 개 나라였습니다.
그 중 골포(骨浦)는 마산과 창원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으며, 칠포(柒浦)는 진동만을 중심으로, 고사포(固史浦)는 현재의 고성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습니다.
이 외에도 사천지방을 중심으로 한 사물국(泗勿國)과 위치를 알 수 없는 보라국(保羅國)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나머지 세 국가는 기록에 조차 나타나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포상팔국의 침입을 받은 가라(加羅=阿羅, 함안)가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응한 신라에 의해 포상팔국이 패퇴합니다.
3년 후,
절치부심(切齒腐心) 복수를 준비한 골포(骨浦)․칠포(柒浦)․고사포(固史浦) 세 나라가 다시 전쟁을 일으킵니다만 또 다시 신라에게 철저히 괴멸 당하고 맙니다.

이 처절한 전사(戰史)를 통해,
비록 패하긴 했으나 강대국 신라를 상대로 보복 전쟁까지 일으킬 수 있었던 골포, 칠포, 고사포 3국도 상당한 세력을 갖춘 나라였다는 추정은 가능한 것 같습니다.

3세기말에 발생한 이 '포상팔국 전쟁' 이후 마산지역에는 새로운 정치집단이 재편되었고,
4세기 이후에는 '탁순국(卓淳國)'이라는 정치집단이 마산 창원일대를 중심으로 세워집니다.

이 국가는 진해의 웅천지역과 칠원의 일부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을 통하여 선진문물을 수입하고자 하였던 일본과의 관계도 활발했습니다.

탁순국은 신라와 백제의 가야지역 침략과정에서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끝임 없는 세력 확장정책에 밀려 금관국(金官國)이 신라에 멸망됨으로써 탁순국은 스스로 더 이상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신라에 자진투항하고 말았습니다.
시기는 신라가 김해의 금관국을 복속시킨 532년 이후에서 541년 이전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있었던 포상팔국의 '골포국'과 뒤를 이은 '탁순국',,,,
그 나라는 어떤 나라였으며,
우리보다 이곳에 먼저 살았던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


<이전 글>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 도시변천사 -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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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배유림 2010.04.13 12: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 시작이네요..
    흥미진진합니다.
    마산의 과거...다음편을 기다립니다

    • 허정도 2010.04.13 14:30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지겨운 글을 기꺼이 '흥미진진'이라는 용어로 포장해 주어 고맙습니다.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올려볼 생각입니다.
      후배님, 봄꽃맞이 안가세요?

  2. 이진규 2010.04.13 17: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국의 고대사는 수많은 가능성의 시대이자 다양성의 시대로 재해석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가야를 비롯한 포상팔국은 그 건국과정에서부터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이는듯 합니다. 위치적으로도 한반도 남단에서 바다와 접해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러한 해석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지금 제가 컴터를 두들기고 있는 이곳 용마산 도서관 언덕은 저 아득한 선사시대를 거쳐 골포국의 누군가가 마산만을 바라보며 한세월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정도 회장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충성!

    • 허정도 2010.04.13 18:10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가워.
      용마산 도서관에는 왠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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