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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常平通寶)3

마산항지(1926년) - 102 - 곤권(坤卷) / 제24장 문화로 가는 선인(鮮人)의 잡속 제24장 문화로 가는 선인(鮮人)의 잡속 회고하면 지금부터 18~19 년 전까지는 지방의 통화(通貨)는 싯가 2리(厘)에 상당하는, 구멍이 사각형으로 뚫린 원형의 동전, 상평통보(常平通寶) 밖에 없었으며 은화(銀貨)와 지폐는 기차 승차권을 연상시킬 정도로 초라했다. 남자는 모두 상투를 틀고 까만 갓을 쓰고, 여자는 일본인을 보면 곧 집구석으로 몸을 감추고 그 기르는 개마저 일본인을 짖어대던 시대는 이미 과거의 꿈같이 사라졌다. 대정 7년(1918) 경까지는 마산포의 장날에 단발(斷髮)한 선인이 보이면 진기하게 여겼는데 다음 해인 대정 8년(1919)쯤 부터는 단발하고 양장한 자가 점점 보이더니 오늘날 시장을 돌아보면 양복, 한복을 불문해 단발자가 그 과반을 차지한다. 상투를 튼 사람은 지게꾼이나 멀리 시.. 2024. 6. 3.
마산항지(1926년) - 39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6. 군사철도의 개방 군사철도 마산선이 개통됐을 당시에는 마산, 삼랑진 간에는 오직 창원과 진영의 두 개 역밖에 없었는데 러일의 평화가 회복되고 군사전용이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이해 11월 1일부터 민간에 개방되어 일반 공중이 자유로이 탈 수 있게 되니 이주자는 확연히 격증하였고 다음 해 광무 10년 즉 명치 39년(1906) 봄부터 거류지, 마산포 및 그 중앙부 다 같이 건축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인의 여관은 빈방이 있는 데가 없고 한인의 여인숙에도 좁은 온돌방에 모국의 동포가 네댓 명이 합숙하는 등 정도의 서광을 엿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다음은 그해 6월 하순에 적어놓았던 필자(아래 사진)의 메모 몇 절을 발췌해서 수록하니 최고 자료로 삼았으면 한다. 나는 처가 있을.. 2023. 3. 6.
마산번창기(1908) - 18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사정 - 1 마산에서 금융기관으로 확립된 데는 두 군데밖에 없으며 제일은행 마산출장소(아래 사진)와 경상농공은행 마산출장소가 그것이다. 전자는 일본이 설립에 관여한 상업기관이며 후자는 한국이 세운 농공업기관이다. 이 외에도 이자가 비싸서 가혹하다는 평을 받는 일시적으로 편리한 전당포도 있다. 또한 한인을 상대로 작은 자본으로 막대한 이익을 악착같이 남기면서 부자가 된 고리대업자도 있다. 그들도 일본을 위한 생산증식의 자본을 공급하는 하나의 기관이기도 하니 동정을 해 줘야겠다. 원래 한국 연안은 일본 경제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금융에 변동을 초래하게 되어 있으며 본 항구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만약 일본 농업에 흉작의 기미가 있다면 본 지방의 중요한 산물인 쌀, 보리, 대두(大豆), 소.. 2021.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