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6.12.12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8, 신인회 탄생

 

128. 신인회(新人會) 탄생

 

 

한국에 사회주의사상이 들어온 것은 19193·1운동 후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는 반드시 사회주의라고는 할 수 없으나 명치 조기에 양행(洋行), 즉 구라파로 갔던 사람들 중에 서원사공중(西園寺公重)이나 복택유길(福澤諭吉)같은 사람은 루소의 민약론(民約論)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 일본에 신사상의 선편(先鞭)을 친 사람들이다.

 

일로(日露) 전역(戰役) 때에는 유명하였던 만조보(萬朝報)라는 신문사에 사주 흑암누향(黑岩淚香), 신덕추수(辛德秋水), 내촌감삼(內村鑑三), 안부기웅(安部磯雄), 석천삼사랑(石川三四郞), 편산잠(片山潛), 계리언(堺利彦) 등등 당대에 쟁쟁한 논객들이 톨스토이의 비전론(非戰論)에 호응하여 반전론을 강조한 범사회주의 시대도 있었지마는,

 

러시아에 공산당이 집권한 뒤로 일본도 공산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조도전(早稻田) 대학 내에는 국수파의 우익단체와 사회주의파의 신인회(新人會)가 있었다.

 

신인회 회원은 동대(東大)출신이 대부분이며 이 중에 좌야학(佐野學)을 필두로 자유주의의 온상인 조대(早大)에 취직한 교수들이 신인회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평소부터 경원지간인 국수파 학생과 교내에 일대 난투극이 벌어진 선물로 좌야학(佐野學) 테이블에서 공산당 비밀서류가 경시청 특고(特高)에 의해서 발견되어 중요 간부 십수명이 재빨리 모스크바와 이루스쿡그로 탈출하고 그 나머지는 일망타진되고 만 것인데, 이것을 모방한 것이 마산 신인회라는 것이다.

 

지금 대광예식장 뒤편이었던 손문기(孫汶岐) 씨 주택 사랑방에서 손문기, 김형두, 이주만 3인이 회합하고 발기문과 취지문을 작성한 것이 1923년 봄인데,

 

이것이 이곳 마산 뿐이 아니고 사회주의 사상의 맹아로서 실로 전국에서 효시였던 것이나 그 후로 이렇다 할 활동이나 뚜렷한 소득도 없고 말았다.<<<

 

<글 중 대광예식장 자리에 들어서 있는 한국투자증권 지점>

 

 

 

 

 

Trackback 0 Comment 0
2014.06.30 00:00

마산·창원 역사읽기(6) - 일본의 침략과 저항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6 일본의 침략과 저항

 

1876년 조선이 일본과의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이후 마산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과 친일조선인들에 의해 잠식당하였다.

개항 이후 마산지역은 러시아와 일본의 조차지 경쟁이 치열하여 개항 초기부터 외세에 의한 피해가 컸던 지역이었다.

특히 마산은 항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해상운송부문 및 어항과 관련한 상업부분을 장악하기 위한 일본 상인들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어 마산은 일본인들의 소굴로 변해갔다.

드디어 1899년 5월1일, 마산은 일본에 의하여 강제적인 개항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산포 남쪽 2㎞거리에 이쓴 창원군 외서면 해안의 신월리와 월영리 일대가 각국공동조계지란 이름으로 계획도시(지금의 신마산지역)가 들어섰다.

같은 해 11월1일, 부산해관 마산출장소로 사용되던 남성동 조창건물에서 시행된 제1차 경매를 시작으로 총 4차례의 경매를 통해 조계지는 외국인들이 소유가 되었다.

1.2차 경매까지만 해도 러시아, 독일, 미국, 일본, 영국, 오스트리아 등이 참여한 공동조계 성격이었지만, 1908년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와 을사조약 체결, 그리고 마산과 삼량진 사이에 건설되었던 철도 마산선의 개통으로 일본인의 독차지가 되었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면서 구마산지역까지 일본인의 영역이 되었다. 1911년 일제는 마산항의 개항을 폐쇄하고 일본과의 단독무역만을 허락하였다.

그 결과 마산은 조선의 쌀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전진기지로 바뀌었고 동시에 일본의 소비재를 수입하는 창구로 변질되어갔다.

<식산은행 마산지점 / 옛 제일은행 마산지점 자리>

 

이에 따라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는 마산사람들의 저항도 점차 거세어졌다. 시장권과 매축권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과 어용단체 신상회사 철폐 및 국채보상운동 등이었다. 또한 마산의 지역 상인들은 일본상인들의 경제적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민의소와 조선인 상업회의소를 만들었다.

비밀결사를 조직해 일제에 저항한 조선인 자본가들도 있었다. 191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대표적 비밀결사조직인 “조선국권회복단 마산지부‘의 지부장 안확, 이형재, 김기성, 배중세 등이 그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창신학교와 의신여학교 그리고 마산노동야학교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도 1910년대의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꿈을 계속 이어갔다. 1911년에 일어난 일본국왕의 즉위를 기념하는 시가행진에서 일제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일제에 강점 당한 이후 국내에서는 일제에 반대하는 투쟁이 계속되었지만, 대부분의 투쟁은 일회적인 것이었고 조직적으로는 전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19년 3월의 만세시위는 달랐다. 일제를 경악하게 만들었으며 독립에 대한 조선인의 열망이 어떠한 것인가를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도 시위는 조직되었고, 만세의 물결이 모든 거리에 넘쳐났다.

만세시위는 기독교 계열과 연계되어 있던 이갑성과 임학찬 등이 중심이되어 시작되었지만,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세력과 연결되고 있었던 김용환, 이형재등 민족주의자들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외에 창신학교와 의신학교의 교사였던 이상소와 박순천 등도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했다. 만세시위는 창신학교와 의신여학교 등의 학생들이 중심이었지만, 마산 시민과 인근 지역의 농민 등도 참여한 광범위한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마산의 시위는 3월3일 두척산(무학산)시위를 시작으로 4차례 이상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창원지역의 구창원읍(지금의 창원시 소답동)의거, 상남면(지금의 창원시 상남동)의거는 창원지역민들의 독립의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3.1운동 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민족적인 민족해방과 독립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해방운동 내부에서는 해방운동의 방법론을 둘러싸고 실력양성을 통해 점진적인 독립을 추구하자는 세력과 일제에 대한 전면적인 항쟁을 통해 즉각적으로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마산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산지역에서도 실력양성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른바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20년 6월경 마산지역 문화운동의 구심점으로 ‘마산구락부’를 창립하고 교육.체육.계몽.교류 활동 등을 활발하게 벌여 나갔다.

마산구락부를 만든 사람들은 과거 마산인의소의 회원들이 많았으며, 회원은 대개가 상인을 비롯한 지주출신 자본가들이었다. 손덕우, 옥기환, 김치수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마산학원과 마산여자야학을 설립하여 정규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민족주의 계열이 민족해방운동전선에서 이탈할 즈음 이 지역에서는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1922년 11월에 결성된 사상단체 ‘신인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듬해 조직을 확대하여 혜성사(살별회)로 개편되었다.

혜성사는 사회주의 사상의 본격적 연구와 전파 그리고 성장하는 민중운동 즉 노동. 농민운동 단체를 ‘조선노동총동맹’에 가입시킨 것은 이들의 활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1925년 건설되었던 ‘조선공산당’에도 적극 참여하여 조선공산당 마산 야체이카(세포-당원)가 되었다.

이후에도 일제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여파로 발생한 ‘친일교사배척운동’ 시위사건과 1937년 신사참배거부를 주도했던 마산 창신학교의 학생들은 폐교가 될 때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이외에도 노동자.농민들의 일제에 대한 투쟁도 계속되었다.<<<

남재우 / 창원대 사학과 교수

<1910년 당시의 창신학교(지금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87번지 자리)>

 

Trackback 0 Comment 2
  1. 김원중 2014.06.30 16:23 address edit & del reply

    상세한 포스팅 내용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오고 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 허정도 2014.06.30 21:02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2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5월 9일 제1야당 대표는 &ldquo;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를 폐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비 없는 에너지 정책 정말 무책임하다.&rdquo;라고 원전사고를 교..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1 - 우리나라의 잦은 지진, 불안하다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속초의 산불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19일과 4월 22일 사흘 간격으로 발생한 지진은 강원도 지역 주민..

쓰레기 대란, 이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곳곳이 쓰레기 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최근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가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쓰레기 대란은 2017년 중국이 플라스틱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수출이 막힌..

London and Quadrant / L & Q

"No one should be denied the opportunity to achieve their potential because of where they live." &ldquo;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 입장문

이 글은 지난 4월 11일 부터 17일까지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을 지키기 위해 결행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이보경 사무국장의 단식에 대한 환경단체의 입장문입니다. ▮ 왕버들군락의 온전성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1등급 습지 대봉늪 지..

미세먼지 줄이는 쉬운 방법

요즘 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고 있다. 노인들은 미세먼지가 심한 때 돌아가시기도 한다. 특히 호흡기 질환이 있는 노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교통사고보다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을 만큼 미세먼지는 우리들의 건강에..

아이 먼저 생각하자 - GMO에 대하여

박순희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이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토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 조금은 비싸지만 하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0 -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이 글은 2017년 10월 12일 포스팅한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9편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후조건, 에너지 자원, 산업구조, 원전의 발전 비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

YMCA 연원을 찾다 - 2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 국제담당국장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라는 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3월 6일 오전 11시 15분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

무등산 산행기-3

무등산 산행기-3 장불재를 내려다보며 하산하다. 장불재는 무학산 서마지기보다 훨씬 더 평평하고 너르다. 마산 같으면 만날재 같은 역할을 했다. 한쪽에는 방송중계탑들이 모여 있다. 하산길은 일방적인 내리막이 아니다. 중봉으로 ..

무등산 산행기-2

무등산 산행기 - 2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 아침 6시다. 8시에 식당에서 바지락 죽 먹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기상이 6시람. 7시 기상해도 충분한데... 다들 나이 값 하느라 그런지 별 불평도 없이 일어난다. 바지락 죽 ..

무등산 산행기-1

무등산 산행기 - 1 학봉산악회 전 100산(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대장 신삼호 회원에게 몇 년 전부터 약속했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랜만에 가는 100산 등산이라 인자부터 산행기 꼭 쓰겠다고 덜..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5. 마치는 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숙소로 시작되었지만 당시..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1) 단지계획 2) 주동계획 가. 동선유형 주동의 동선유형은 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