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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3. 00:00

탈원전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 추세, 새 원전 건설은 결코 안돼

 

요즘 창원 경제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렵고 260 여개 원전 관련업체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한다.

창원시정연구원은 탈석탄.탈원전 등 정부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면서 창원 소재 대기업 및 협력업체 경영여건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보수언론의 경제부장은 “문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고 자유한국당 이언주의원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온갖 거짓뉴스를 보도한 보수언론을 소개하는 형태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였다.

태양광은 가동기간이 30년 이지만 원전은 60년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온 어느 교수는 탈원전은 ‘원자력산업이 전성기에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 될 자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장면>

 

탈원전이 자해라면 대통령은 왜?

 

9월 5일자 보도에 두산중공업이 영국원전에 2천억 원 부품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탈원전 국가는 원전 수출도 못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계약에 성공했을까? 미국이나 일본은 원전을 짓지 않지만 수출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전체 매출 15조 원 중 원전 부문은 1조 5천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탈원전 추세 때문에 수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산은 원전설비만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다. 바닷물 담수사업, 가스, 석탄발전 설비, 풍력산업, 건설기계, 엔진 등 많은 사업부가 있다. 2018년 매출은 15조원에 이르고 2017년보다 6.5% 증가하였고 2019년 3월 현재 동기 대비 매출액이 7.1% 증가하여 금년 매출은 1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주가 하락은 전 세계 원전 회사와 같은 현상이다.

세계 원전의 절반이상을 건설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망했다. 프랑스 원전사 아레바도 망했고 일본 도시바 원전사업도 망했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기업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매출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두산중공업은 원전 전문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종전과 변함이 없다. 2084년이 되어야 탈원전국가가 된다. 65년 이후의 일이다.

계획 중이던 원전 5기 포기한 것이 탈원전의 전부이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이 급변적이라니 할 말이 없다.

원전업계가 어려운 이유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세계의 탈원전 때문이다.

원전산업이 전성기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 뉴스이다. 30년 전에 전 세계의 원전은 451기였다. 2019년 9월 8일 현재 450기이다. 30년 전에 보다 오히려 원전이 줄어 들었는데 전성기라니 이해할 수 없다.

원전은 탄소배출을 석탄보다 10분의 1수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원전을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채택하지 않는다. 경제성,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종주국 미국과 세계 2위 원전 대국 프랑스가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데 어떻게 전성기인가.

일본의 재앙을 모르나. 오염수 한 가지 처리하는데 200조원이 든다는 데 원전이 전성기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원전은 60년을 가동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폐쇄후 30년-40년 원전 부지는 못 쓰는 땅이 되는 것은 계산 하지 않는다.

 

탈원전 정책이 반헌법적.반민주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탈원전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는데 왜 반민주적인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이다.

탈원전 하지 않는 것이 반헌법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도지사, 유승민 의원 모두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산업은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다.

과거 봉제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철강, 전자, 자동차 산업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경제성, 안전성이 없는 원전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태양광, 풍력산업이 들어서고 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시장규모는 500조원이나 원전 신규산업은 50조원도 되지 못한다.

미국의 대표기업이면서 종업원 40만 명, 140년 역사의 코닥이 이러한 산업의 변화를 읽지 못하여 망했다. 반대로 독일의 지멘스는 원전산업을 접자 주가가 오르고 성장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탈원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어려움이나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이 있다면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원전을 다시 건설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국민의 안전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이 글은 2019년 9월 11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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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산인 2019.09.24 17: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원전은 더 이상 안됩니다. 미래 세대도 생각해야합니다.

2019. 4. 1.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0 -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이 글은 2017년 10월 12일 포스팅한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9편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후조건, 에너지 자원, 산업구조, 원전의 발전 비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등이 아주 닮았다.

일본은 1965년 최초의 원전 '도카이원전 1호기'를 가동한 이래 60년 동안 모두 60기를 건설했다. 세계 3위의 원전 강국이었다. 우리나라는 24, 세계 5위다.

일본의 현재 에너지 상황을 좀 살펴보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전에는 54, 정확하게 전력부담률이 우리와 같은 30%였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정부는 54기 모든 원전을 동시에 정지시켰다. 순환 단전 등 특단의 절약 정책으로 정전사태를 막았다. 우리와 같이 경제급전의 원칙으로 평상시 가동하지 않던 가스발전을 최대한 가동해 원전 없는 4년을 보냈다.

2015년 센다이 원전 1호기를 격렬한 찬반 논쟁 끝에 재가동했다.

2018년 말 재가동 원전은 9기까지 늘어났다. 일본의 2017년 원전 전력부담률은 3.6%에 불과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통계에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 40기로 되어 있으나 8년 이상 장기 중단 중인 원전이 무려 29기에 이른다.

장기간 가동하지 많은 원전은 재가동하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2기 정도만 재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11기가 가동될 것이다. 54기에서 8년 만에 11기로 축소되는 것이다.

일본에는 현재 2기가 건설 중인데 '오마1호기'2005년 공사를 시작했고 또 '시마네3호기'2009년 시작해 98% 진척도를 보이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 반대가 심해 가동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1996'가시와자키 7호기' 가동 이후 23년 동안 단 5기 원전만이 추가로 가동됐고 '도마리 3호기' 신규 가동 이후(2009) 10년 동안 단 한 기의 신규 가동이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없었더라도 이미 원전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원전회사는 어떠한가.

세계 최대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한 도시바는 영국 원전 건설에서도 손을 떼기로 했고 미국 원전 건설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보아 140년 역사를 뒤로하고 몰락했다.

히타치는 영국 원전 사업에서 3조 원 손실을 보고 포기했고 미쓰비시는 터키 원전사업을 포기했다. 10년 전에 원전 사업을 버린 '지멘스'는 살아남았고 원전에 올인한 '아레바'는 망했다. 일본 원전회사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전력소비는 어떠한가.

'Enerdata' 통계에 의하면 2010년 일본의 전력소비량은 총 1037테라와트, 2011979, 2016950, 2017년에는 1019 테라와트이다.

사고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정체 또는 감소 추세이다. 가스발전을 늘렸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렸기 때문에 원전이 없었음에도 전력소비는 여전하다. 촛불 켜고 사는 사람은 없다.

201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2%였으나 2017년에는 18%로 늘었다. 한국은 같은 기간 1.8%에서 3.4%로 늘었다.

창원에 있는 원전 관련 회사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어려움은 10년 전부터 발생했다.

10년 동안 단 한 건 수출도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산업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 외면받는 산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 세계 굴지의 회사들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 가지 못해 스러지고 있다.

 

 

원전 해체 시장과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정부는 토목 위주의 반짝 정책에서 4차 산업 쪽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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