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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31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by 운무허정도 2023. 1. 9.

제7장 동포발전사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여기서 '동포'란 마산 거주 일본인을 말한다.

1, 일본인회의 조직

명치 32년(1899) 5월 1일의 개항 당시 우리 일본 동포로서 마산포에 거류한 자는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 스미다 마사키치(隅田政吉), 하마다 린조(濱田林藏)와 그 외 2~3명에 불과했다.

미곡상인 나가사키(長崎) 현 사족 출신의 마츠바라 하야조(松原早藏) 씨가 본거를 부산의 친형 마츠바라 도모조(松原友藏) 씨 집에 두면서 창원읍내에 임시로 살며 가을에 미곡 매출로 왕래하는 일 외에는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원 2~3명과 경찰관 2명이 있을 뿐이었다.

같은 해 11월 3일 제1회 각국거류지 경매 이래 마산의 좋은 입지와 산수의 풍광명미함이 강지에 선전되어 이주자도 역시 점점 늘어나 동 33년(1900) 늦봄에는 약 15~16호, 30여 명에 도달하니 여기에 통일기관의 필요가 생겨 일본인회를 조직하여 평의원 3명을 뽑아 야마다 노리후미(山田敎文) 씨를 회총대(會總代)로 처천해 회 규칙 기타 일체의 회무를 일임함과 동시에 그 경비로서 매월 금 5전의 분두세(分頭稅)를 거두게 되었다.

이해 가을 야마다 회장은 장사에 실패해 행방이 불명해지니 센고쿠 간쿠로(仙石勘九郞) 씨가 그 뒤를 잇게 되고, 통대를 이사로 고치고 평의원을 5명으로 증원해 호구마나 균일하게 20전의 월세를 부과했다.

이때 현재 마산포 사이와이마치(幸町)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씨의 소유지에 사립 일본어학교가 건설되어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가 교편을 잡았다가 얼마 안 있어 가키하라 지로(柿原次郞) 씨가 대신하고 교실을 맞은편의 현재의 도미마치(富町)로 확장했는데 아주 융성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명치 39년(1906) 즈음에 폐쇄되었다.

 

2. 각국거류지로의 이전의 서광

사카다 영사는 부임 이래 게속 거류지로의 이거(移居)를 권유해왔는데 이에 호응하는 자는 없고 동포들은 다 마산포의 남루하고 비좁은 동네, 그것도 악취가 풍기는 온돌방에서 한인을 상대로 잡화점을 경영하기 일쑤였다.

그 원인의 하나는 러시아의 군인이나 민간인이 거류지에서 으스대는 데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거류지에 땅을 빌려 이전해 건축할 자금이 모자란 데에도 있었다.

대정 14년(1925)에 작고한 남만주(南滿洲) 안산의 요정 긴초로(銀蝶樓)의 주인 호리에 다마노신(堀江玉之進) 씨가 가족과 함께 광무 4년, 즉 명치 33년(1900) 말에 이사해 왔으며 다음 해 봄부터 이사한 뒤로는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마츠모토 리스케(松本利助), 스미다 마사키치(隅田政吉), 후쿠나리 미네키치(福成峯吉), 하마다 린조(濱田林藏), 사사키 우마지로(佐佐木馬次郞), 시게무라 우이치(重村宇一), 나카하라 신이치(中原新一), 다나카 츠르마츠(田中鶴松), 히로시게 세츠노스케(弘重節之助), 히다 가츠헤이스케(比田勝兵助), 마츠노베 유우(松延勇), 오카모토 유우(岡本勇), 오다 젠시로(小田善四郞) 등 몇 사람밖에 되지 않았다.

이 해에 목포 영사관 소속 순사부장인 사카이 기타로(境喜太郞) 씨가 경부(警部)로 승진하여 마산영사관 소속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마산에 주재했던 순사부장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씨는 사직하고 한해수산조합(韓海水産組合) 마산지부장이 되어 거류지의 하마마치(濱町)에 살고 있다.

애당초 미야하라 부장은 경부로 승진하여 마산영사관에 근무하도록 사카타 영사도 이를 승인하고 본인도 그럴 참이었는데 사카이 경부가 갑자기 부임하게 되자 아주 분개하고 사직하게 되었다는데 이 경위에 관해서는 조선을 찾아온 애국부인회장인 오쿠무라 이오코(奧村五百子) 여사가 사카이 씨의 간절한 처을 들어주어 같은 사가(佐賀) 현 출신의 나베시마(鍋島) 외무서기관에게 추천한 결과라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일본인의 센고쿠(仙石) 이사도 거류지로 이사해 오고 잡화가게를 열었지만 먼저 거주한 동포처럼 한인 손님이 없음을 만회하고자 상우회를 조직하여 매 일요일에 회우 집을 번갈아 돌면서 회합을 가졌으나 별 효과가 없어 매양 술만 마시다가 끝난 모양이다.

반면에 마산포는 나날이 그 세대와 인구가 늘어나 장사도 잘 돌아가는 것을 보고 사카다 영사는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센고쿠(仙石) 이사,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제씨와 상의해, 마산포 구강(舊江)의 10일에 열리는 정기장(定期市)을 거류지로 옮기고 마산포 5일의 정기장과 번갈아 여는 식으로 책정해 창원감리서의 양해를 얻게 되니 그 선전과 준비에 다망한 나날을 보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31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