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개항사
12. 일본 기생(藝妓)이 폭행 당하다
러시아 소코프 영사가 오랫동안 군함 안에서 집무하여 해상영사관이라 불리었다.
그 후 현재의 혼마치(本町) 4정목에 있는 러시아인 소유의 일식 건축 민가를 빌려 쓰고 있더니, 올해 3월 중에 현재 다이마치(臺町)의 우리 영사관 남족에 위치한 소나무 숲 언덕에 신축사업을 설계했다. 건축 재료인 연와는 작진등 아래 해변가에서 구워내었다.
5월ᅟ하순에 준공하여 6월 1일에 낙성식을 그 관내에서 치루었다. 이에 앞서 우리 일본 동포들은 모두 마산포란 누추한 곳에 살고 있었기에 사카타 영사는 거류지에로의 이주를 권유했다.
이에 호응하여 첫 번째로 거류지에 이주한 이는 술, 차 검도, 궁도, 생화, 요리, 조원(造園), 바둑 등 각종 기예에 통달한 호리에 다마노신(堀江玉之進) 씨였다. 씨는 현재 혼마치 마산우편국 건너편에 함석지붕의 판자집을 지어 대서인(代書人)의 간판을 걸고는 사군정(思君亭)이란 요정과 여관을 겸업하고 있었다.
그 사군정의 음악 반주 기생으로 아치요(阿千代)라는 예기가 있었는데 러시아 영사관 낙성식에 초대되어 양주에 취하면서 돌아오는 길에서 요정까지 불과 2백 미터 지점에서 백주에 러시아 수병에 의해 능욕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당시 거류지는 러시아가 제 마음대로 행세하는 것이라 동포들도 그 때문에 이주를 꺼려했다.
사카타 영사는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엄중이 항의를 하자 소코프 영사는 가해자에 대해 일단 에비심사를 하고 관계서류를 자국 군함에 맡겼으니 관할 법원에 이송될 것이라 회답했다.
처벌이 애매해지니 하야시 공사는 러시아 공사에게 직접 담판을 요구했다 한다. 또한 러시아 영사관 개관 당시 무장병사를 문 지킴이로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 사카타 영사가 다시 항의를 하니 소코프 영사는 해당 변사가 위반행위를 했기에 그 징계로 문전에 세워놓은 것이라는 변명을 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 조치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29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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