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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1910년대의 마산 무역>


당시 마산전경사진입니다.
현 대우백화점과 삼익아파트 일대에 매립을 하기 전이라 해안선이 환주산 밑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고, 신마산과 마산포 사이의 옛 마산시청부터 몽고정까지는 전부 논밭입니다.
왼쪽에 문신미술관이 있는 환주산을 시작으로 멀리 용마산과 팔용산 자락이 차례로 보입니다.
환주산과 용마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 마산포이고, 산 능선 중 잘룩 들어간 곳이 현재 봉암다리가 있는 곳입니다. 매립 전이라 마산만이 꽤 넓습니다.

1911년 새해벽두부터 개항지였던 마산항이 폐쇄되긴 했지만, 식민지의 통치와 수탈에 필요한 선박에 대해서는 세관장의 특별허가라는 명목으로 선박의 출입항을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수탈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 선박은 개항기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다음 표는 강점 제1시기였던 1910년부터 1920년까지의 마산항 대외교역량입니다.
(이출과 이입은 한국과 일본간의 교역을 말합니다. 병합이 되었다해서 타국 간의 용어인 수출과 수입과 다르게 사용하였습니다)

연 도

수․이 출

수․이 입

합 계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

158,834

121,806

76,421

66,106

89,074

151,844

68,652

141,357

1,322,969

3,214,239

3,735,912

566,869

1,002,922

876,321

861,931

719,220

711,465

767,112

911,112

1,007,818

1,844,900

2,105,906

725,703

1,124,728

952,742

928,037

808,294

863,309

835,764

1,052,469

2,330,787

5,059,139

5,841,818


이 표를 보면
합방 직후 마산항의 대외교역 규모는 수출 면에서 다소 위축을 보인 반면 수입 면에서는 급격히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합방 해인 1910년에 수․이출이 약 16만 엔, 수․이입이 약 57만 엔이었는데 1911년에는 수․이출은 12여만 엔으로 다소 감소한 반면 수․이입은 100여만 엔으로 거의
두 배나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증가는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식민지 초기에 시장 개척을 위한 일본 상인들의 경제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런가하면 1918-1919년부터 수․이출입액이 급증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마산항이 개항이 종료된 이후에도 교역량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늘었습니다.
진해만 군항 신설 등의 영향과 점점 늘어가는 식민지 경제수탈이 그 원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18년 '조선및만주사출판부'가 펴낸 『最新朝鮮地誌(中)』에 의하면,
당시 마산에는 일본 외의 국가로 나가는 선박은 없었습니다.
일본과의 항로는 대판상선회사의 대판-인천 간 정기선이 매월 4회 기항하고 있었습니다.
연안 항로는 조선우선(郵船)회사의 부산-여수선, 부산-거제선의 정기선이 매월 2회 발착하는 것과 진해기선조합이 경영하는 마산-진해간의 1일 7회 왕복하는 작은 기선 3척이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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