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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6. 10:37

아테네와 그리스인 조르바

년초에 터키와 그리스를 다녀왔습니다. 특히 그리스라는 이름보다 '아크로폴리스'라는 이름이 더욱 유명한 도시 아테네에 들렀습니다. 일정상 터키에서 야간 배를 타고 아테네 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새벽에 아테네 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아크로 폴리스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가이드의 첫 멘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항구에서 조르바가 크레테 섬으로 향하는 장면을 멋지게 묘사하면서 아테네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선상에서 선잠을 자다기 버스에 몸을 싣고,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들은 조르바의 이야기는 소설을 읽지는 못했지만 자유인 조르바에 대한 이미지가 여행객들의 방랑적 말초신경을 더욱자극하는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사서 보고, 또 영화도 다시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한 고.이윤기 선생은 실제 크레테 섬을 방문하며, 니코스 카잔스키의 묘지를 방문하여 술까지 올리면서 제사를 지냈다는 말에 이 소설이 가지는 크레타 섬에 대한 상징성, 나아가 그리스를 상징하는 문학인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하면 대개 아테네 신전을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건축을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더욱 아테네가 사랑를 받게 된 이유에는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고대 역사사가 큰 몫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신화의 의미를 간진한 신전들을 직접들러본다는 것은 마치수천년전의 시간여행을 하는 의미가 있기에 그 감동이 더욱 오래가게 될 것입니다. 암튼 이번 그리스 여행은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20대에 들어보아야 할 건축의 멘토적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50이 넘어서 방문하는 것에 대한 만시지탄감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읍니다. 하필이면 가는날이 장날리아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한기에 몸을 추스리느라고 감동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원래는 파르테논 신전 기둥을 한아름에 안아보고, 볼도 부벼보고, 바닥돌에 키스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추위에 떠느라 그럴 겨를도 없이 내려온게 큰 후회로 남습니다. 허나 니코스 카잔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을 접하게 된 계기로 보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 도시의 기억을 가장 오래남게 하는 것으로 가시적인 이미지와 심상적 이미지에 남겨진 이미지가 거의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겠구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스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을 통해 각인되고, 아테네라는 도시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자리한 '파르테논'신전이라는 건축물에 의해 각인이 되며, 남측에 자리한 '크레타 섬'은 니코스 카잔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문학소설에 의해 더욱 각인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은 '니코스 카잔키스'가 그리스를 상징하는 인물로 연상이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 조르바가 크레타 섬으로 향하기 위한 소설의 도입부 배경이 된 아테네 항구

●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네테 전경 : 베이지색 톤과 적갈색 지붕의 저층건물들

●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중 : 신전 파괴의 주범인 오스만 투르크족에게 공사비를 청구?

● 여신상 기둥으로 유명한 에렉테이온 신전 : 현재 신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영국박물관에 있다고 함, 뿐만 아니라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 대부분도 영국박물관에 - 이름을 바꿔야 할 듯. 아크로 폴리스 박물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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