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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4. 00:00

창원도시철도, 바로 알고 바로 하자 - 3

이번에는 창원도시철도 타당성 평가에서 '자동차 이용객 유입' 부분과 '수요 예측' 부분입니다.

○ 자동차 이용객 유입 문제

창원시는 자동차 통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다음 세 가지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 팔용산 터널 ; 왕복 4차선으로 올해 착공해 2018년 쯤 준공한다는 계획이며 민간 기업이 추진합니다.

 

2) 제2 봉암교 ; 3천2백 억이 소요되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해저터널 1.3km를 포함 총 연장 2.9km이 이르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놓게 됩니다.

3) 봉암교 확장 ; 현 봉암교에 왕복 2차선을 붙여 내는 공사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 6차선이 8차선으로 넓어집니다. 3백 억이 드는 사업인데 공사가 확정되어 불원간 착공합니다.

이와 같이 터널과 교량공사가 계획되어 있음에도, 창원도시철도 타당성 평가에 의하면 자동차 이용자 4만 명이 도시철도로 유입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도시철도 타당성 평가가 맞다면 자동차 이용자가 줄게 되어 교량 및 터널 공사는 별 필요가 없어집니다. 중복투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민간자본을 투입해 건설하는 팔용산 터널 업체는 아주 곤란해질 겁니다.

하지만 증설될 교량과 터널 때문에 자동차 소통이 좋아져서, 자동차 이용자들이 도시철도로 옮겨 가지 않으면 도시철도 타당성 평가서가 예측하고 있는 4만 명이라는 추정은 차질이 생길 겁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교량 및 터널 공사와 도시철도 중 한 쪽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상호 모순된 교통정책이 나오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만 창원시가 통합적인 교통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 아닌지 싶습니다. 

 

○ 수요 예측 문제

수요 예측에 대해 김석규 의원과 전점석 사무총장의 지적도 많았습니다만 저는 두 분의 지적 외의 것을 말해 보겠습니다.

1) 마산합포구 노선을 해안도로로 결정

아래 그림처럼 합포구는 마산의 9개 중고등학교가 집중한 지역입니다. 중학교가 3개(마산중, 성지여중, 제일여중), 고등학교가 6개(합포고, 마산고, 성지여고, 마산여고, 중앙고, 제일여고)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 9개교 학생들을 싣고 다니는 시내버스는 모두 이 학교들의 교문 앞 혹은 교문 가까이서 정차합니다.

하지만 도시철도가 정차하는 해안도로에서 내리면 약 7-800m의 오르막 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과연 이래도 학생들이 도시철도를 탈까요? 등하교 시간이 비슷하고 학생 수가 많기 때문에 셔틀버스 운행도 곤란합니다.

그런데 이용자 산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 문제 외에도 도시철도가 단일 노선이라 도시전체에 환승시스템이 대거 필요한데 이 문제도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7월4일 KBS 9시 전국 뉴스가 ‘도시철도 교통수요 예측 왜 엉터리인가?’ 라는 보도에서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이용자는 집에서 역까지의 거리, 배차 시간 간격, 목적지까지의 도착 시간이라는 세 가지를 고려해서, 도시철도 탈 것이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용역업체들은 이 세 가지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보도하면서, 그래서 예측이 맞지 않는다고 결론지웠습니다.

이 보도가 맞다면 단일노선인 창원도시철도도 이용객 산정에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글도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 아니라 상식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교량과 터널 공사를 계획하면서 도시철도에 자동차 이용자들이 유입될 것이라고 계획하며, 수요 예측에서 불리한 요인들은 피해갈까요?

이것 역시 이 사업에 대한 여론 문제와 비용편익분석(B/C)의 답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일 겁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국비가 60% 지원된다 하더라도 그 돈 역시 우리의 세금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원시의 재정도 많이 투입됩니다. 공사 끝나고 나면 관리유지의 책임도 창원시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도시철도가 먹어치울지 알 수 없습니다.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차량 시스템 문제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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