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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9.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2. 세비야, 오페라와 축제의 도시

'세비야' 이미지

세비야는 오페라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카르멘'과 '피가로의 결혼'의 배경무대로 유명하다. 특히 카르멘에 등장하는 연초제조창은 아직도 현존하고 있으며, 카르멘이 사랑한 남자 투우사가 활동하던 투우장도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다. 또한 플라멩고의 본 고장이기도 하며, 매년 '4월의 봄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스페인에서 가장 정열적인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 중세풍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성당 주변가로

세비야의 역사

- 세비야 스페인 남부지역으로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보고 있으며, 또한 대서양에서 접근하기 용이한 내륙형 항구도시이다. 세비야 시내를 관통하는 베티스강을 통해 대서양 뿐만 아니라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지중해로 연결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일찌기 페니키아인 및 그리스인들과 교역을 위한 무역거래가 시작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후 로마제국의 통치령이 되었으며, 훗날 서고트 왕국의 지배기간 동안 세비야시의 대주교이자 카콜릭교의 아버지라 알려진 '성 이시도르'의 탄생한 도시이다.

이슬람 도시로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코르도바의 마지막 왕조가 멸망한 후, 소규모 왕국으로 난립하는 전국시대에 가장 번영을 누린 왕조가 세비야에서 3대째 계속된 아바스 왕조이다. 세비야는 1010년에서 1248년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유적으로 알카사르 성채가 있으며, 이는 훗날 궁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함께 현재 행정구역상 안달루시아 주의 주도이며, 인구로는 스페인에서 4번째 도시에 해당된다.

● 세비야 성당 : 스페인의 역사는 8세기 이후부터 중세까지는 이슬람과 카톨릭간에 종교전쟁잰을 통해 이슬람과 카톨릭 왕조간 소왕국들의 군웅할거과정을 거쳐왔다. 대략은 8세기를 시작으로 이슬람 왕조가 득세를 하였으나 11세기경부터 본토사람들의 국토회복운동으로 인해 점차 카톨릭 왕조가 우위를 점하는 형국에서 결국 15세기 말에 카톨릭 왕조로 통일되면서 하나의 스페인이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 주출입구부분입니다. 굵기가 가는 기둥과 벽면에 섬세한 주름을 통해 평면적인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세비야 성당이 자리한 곳은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던 곳이다. 이러한 흔적은 광탑(미나렛)이 남아있다. 회교사원은 카톨릭왕의 점령이후 성당으로 사용되었으나, 1388년에 일어난 대 지진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다.  이후인 140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506년에 완공된 것이 현재의 성당이다. 규모면에서 유럽에서 3번째 큰 성당이라고 한다. 가장 큰 성당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두번째는 영국의 세인트폴 성당이며, 세비야 성당이 그 다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계 3대성당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성당의 내외부 형식은 중세의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복합되어 있다.  - 건물 상공에서본 지도입니다. 상단에 있는 오렌지정원, 그리고 성당은 라틴십자형태의 제대 모습이 뚜렷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 중앙부에 있는 것이 히랄다탑입니다.

- 종탑에서 본 오렌지정원입니다. 이러한 배치는 이슬람사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 고딕양식의 플라잉버터리스 벽 모습 : 중앙부의 높은 벽면의 측압을 지지하기 위해 걸쳐진 보와 기둥.

● 성당종탑(히랄다 탑) : 회교사원과 함께  상징적 랜드마크인 광탑(미나렛)인 '히랄다 탑'은1184년 건축되어 1198년 완성되었으며, 이것은 훗날 페르난도 3세 카톨릭 왕이 재정복했을 때 성당의 종탑으로 변경시켰으며, 1558년부터 1568년에 청동상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탑의 전체 높이는 93.9미터로 25개의 종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과 카톨릭 두 종교의 전혀 다른 두가지 상징적 의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탑 내부는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당시 예배시간을 알리는 집사나 종치기가 당나귀를 타고 종탑 상단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고 한다. 탑 정상부에서 보는 세비야의 시가지 전경이 볼만하다.

- 히랄다탑 : 스페인어로 바람개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탑의 몸통부분은 이슬람 미나렛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부에 종탑부분과 첨탑부분은 성당공사시 개조된 형태이다.

- 종탑 최상층부분의 종들- 종탑에서 바라본 세비야 전경 : 고층건물 찾아볼 수 없다.

- 도시의 이미지는 황색계통의 스페니쉬 기와와 하얀색의 벽면과 녹음 3가지 색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성당내부 : 내부에는 당시 중세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특히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되찾은 영웅 산 페르난도왕의 비롯한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또한 세비야를 출발하여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유해가 성당내에 조각상에 의해 들어올려져 안치되어있다. 남미를 식민지로하여 제국을 형성할 수 있는 개척자의 시조로 높게 받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콜럼버스의 유해를 메고있는 가마지기 4사람은 스페인의 고 왕조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와서 왕들을 상여꾼으로 둘 만큼 출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제대부분 천정은 주변보다 높게 장식되어 있다.

- 성당 제대부분은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막혀져 있다.

- 목조각에 의해 장식된 제대부분은 코르도바 성당과 유사하다.

- 바닥에 유해가 안치된 왕들을 소개하는 안내판

- 컬럼버스의 유해가 있는 관을 스페인 고 왕조 4명의 왕들의 들고 서있는 모습

성당주변 명소들 

- 카사노바와 더불어 탕아의 대명사인 '돈 주앙' 소재의 오페라 '돈 지오바니'를 창작한 여인숙이다. 모짜르트가 이 곳에서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 오페라 '돈 지오바니'의 작가 모짜르트가 묶은 오랜된 여관임을 알리는 안내문

- 현재는 도서관인 건물이나 돈 주앙이 마지막으로 사귄 간호사가 근무했던 병원이라고 가이드가 소개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글쎄이지만, 암튼 맞은편에 모짜르트가 작업한 여관이 있는 것을로 봐서는 그럴듯 함.

- 병원이였던 미술관과 여관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

지금의 세비야 : '세비야'는 발음에 따라 '세빌리아'라고 달리 불리기도 한다. 특히 세비야는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오페라 제목에 의해 음악적인 도시, 오페라의 도시로 상징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투우가 유명한 곳, 집시들의 플라멩고가 유명한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몇가지 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서 활용하는 것이 도시의 축제이다. 4월의 봄 맞이 축제는 도시가 가진 문화적 콘텐츠를 마케팅하기 위한 행사라 볼 수 있다. 단순히 하나만 관광하기에는 아쉽지만, 이러한 몇가지 콘텐츠가 있다면 누군들 가 보고싶지 않으랴!

우리가 참조할 만한 것이 있다면, 역사가 오래지 않은 도시에서는 영화나 문학 속의 배경도시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부산은 그래서 영화제작에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문화예술인을 포용할 수 있는 도시가 좋은도시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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