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은행
이곳에 제1착으로 은행이 설치된 것은 일본 굴지의 재벌인 삽택영일계(澁澤榮一系)의 제일은행 출장소. 현재 신마산 진일기계 제작소 건너편에 있는 천주교당(현 월남동 성당-옮긴이) 자리이다. 물론 한일합병 전이며 그곳이 조선은행 출장소가 되었다.
<제일은행 마산출장소 신축 기념 사진 / 1907년>
<위 제일은행이 있었던 마산월남동 성당>
그 뒤에 조선식산은행 출장소로서 8·15 후에 구마산 지점으로 합병되었는데 조선은행 출장소 시절에는 조선인 행원이라고는 칠원인 김성현 단 한 사람뿐이었다.
1911년경에 식산은행(현 제일은행) 후정(後庭) 서북 모서리에 목조 평옥(平屋)의 농공은행 마산지점이 설치되었으며 노폭은 현재대로였으나 신작로로 확장되면서부터 현재 건물로 신축했었다.
그래서 은행이라고는 일본인들의 독점 경영하는 것뿐으로 조선인 상인들은 부득이 이 은행 외에 거래할 곳이 없었다.
1918년 여름에 부산에 본점을 둔 조선인 경영의 경남은행이 마산에 지점을 설치했으니 장소는 구 동인의원 자리이며 초대지점장은 마산 재판소 서기를 지낸 김장환이었다. 개점 초에는 상당히 은진(殷賑)하더니 자금 관계인지 개설 4,5년만에 철수하였다.
그 다음으로 신마산에 현재 창원군 농협 구판장 자리에 목조 2층의 상업은행 지점이 설치되고 뒤에 상공회의소 건너편에 신축 이전하였다.
상업은행 전신은 순 조선인으로서 출자 조직된 천일은행(天一銀行)인데 현재 국내 은행 중에서는 최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정 때 두취(頭取, 은행장)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박영철이다.
박 두취가 마산지점에 순시를 왔을 때 지점 구마산 이전설에 약기(躍起)한 신마산 일본인 유지가 총동원되다시피 해서 이전 반대 정진(情陳) 소동도 있었으나 6·25를 기하여 오행당 약국 일부로 가이전했다가 현 사옥에 자리 잡은 것이다.
상은(商銀) 마산지점도 개점 초에는 조선인 행원은 문봉상 단 한 사람 뿐이었으며 이 문봉상으로 하여 구마산 상가에는 도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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