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신인회(新人會) 탄생
한국에 사회주의사상이 들어온 것은 1919년 3·1운동 후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는 반드시 사회주의라고는 할 수 없으나 명치 조기에 양행(洋行)한, 즉 구라파로 갔던 사람들 중에 서원사공중(西園寺公重)이나 복택유길(福澤諭吉)같은 사람은 루소의 민약론(民約論)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 일본에 신사상의 선편(先鞭)을 친 사람들이다.
일로(日露) 전역(戰役) 때에는 유명하였던 만조보(萬朝報)라는 신문사에 사주 흑암누향(黑岩淚香), 신덕추수(辛德秋水), 내촌감삼(內村鑑三), 안부기웅(安部磯雄), 석천삼사랑(石川三四郞), 편산잠(片山潛), 계리언(堺利彦) 등등 당대에 쟁쟁한 논객들이 톨스토이의 비전론(非戰論)에 호응하여 반전론을 강조한 범사회주의 시대도 있었지마는,
러시아에 공산당이 집권한 뒤로 일본도 공산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조도전(早稻田) 대학 내에는 국수파의 우익단체와 사회주의파의 신인회(新人會)가 있었다.
신인회 회원은 동대(東大)출신이 대부분이며 이 중에 좌야학(佐野學)을 필두로 자유주의의 온상인 조대(早大)에 취직한 교수들이 신인회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평소부터 경원지간인 국수파 학생과 교내에 일대 난투극이 벌어진 선물로 좌야학(佐野學) 테이블에서 공산당 비밀서류가 경시청 특고(特高)에 의해서 발견되어 중요 간부 십수명이 재빨리 모스크바와 이루스쿡그로 탈출하고 그 나머지는 일망타진되고 만 것인데, 이것을 모방한 것이 마산 신인회라는 것이다.
지금 대광예식장 뒤편이었던 손문기(孫汶岐) 씨 주택 사랑방에서 손문기, 김형두, 이주만 3인이 회합하고 발기문과 취지문을 작성한 것이 1923년 봄인데,
이것이 이곳 마산 뿐이 아니고 사회주의 사상의 맹아로서 실로 전국에서 효시였던 것이나 그 후로 이렇다 할 활동이나 뚜렷한 소득도 없고 말았다.<<<
<글 중 대광예식장 자리에 들어서 있는 한국투자증권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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