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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시이야기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by 운무허정도 2018. 9. 2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하싼 화티는 이 극장을 일러 그리스식과 엘리자베드시대풍의 중간 정도라고 했다.

극장은 지붕이 없는 사다리꼴의 공간이었는데 가장 긴 쪽에 무대가 있고 나머지 삼면에 관객을 위한 계단식 좌석이 있으며 원형무대가 있었던 중앙부는 별 표식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무대는 단순한 형태의 1m 높이에 폭 10m 크기로 돌로 만들어졌으며 천정이 열려있었다.

무대에는 고정된 두 개의 장식이 있는데 관객 쪽에서 볼 때 왼쪽의 계단은 길을 나타내며 오른쪽의 시설물은 내부 또는 정원을 나타낸다고 건축가가 설명한바 있다.

원래는 무대에 장식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모두 훼손되고 중간의 문과 그 위의 발코니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원래 원형무대가 있었던 곳으로 원래 11평방미터 크기의 투기장으로 연극공연이나 운동경기를 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 듯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싼 화티는 이 극장에서 연극이 시작될 즈음의 장면에 대해 "시원한 밤, 별이 가득 찬 하늘 아래, 돌 의자에 빽빽이 앉거나 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관객들 앞의 무대는 컴컴한 채 텅 비어 있다. 이윽고 노랫소리가 무대 뒤 어디에선가 들려온다. 그러면 관객들은 조용해지고 이 노랫소리가 다가옴에 따라 관객들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라고 묘사한바 있다.

키가 큰 안내자는 "지금도 극장이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 저녁에도 동네 아이들의 연극 공연이 있다"고 말했다.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사각형 건물이 마을 회관이란 간판을 달고 덩그렇게 서있는 우리의 시골마을에 비하면 높은 문화수준이었다.

비록 가난하지만 저녁시간 극장에 모이는 이곳 구르나 마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단지 돈 몇 푼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침 휴일이라 상점은 휴장이었으며 유일하게 한 채 남아있는 주택은 하싼 화티가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문이 잠겨 내부를 못 본 것이 아쉽다.

원래 구르나 마을에는 회교사원과 극장, 칸 외에 학교, 공동목욕탕, 벽돌공장, 농가, 공동세탁장, 인공호수 등 여러 종류의 시설들이 있었다.

이 모든 시설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싼 화티가 우려했던 조악한 평스라브의 콘크리트 단층, 혹은 이층 건물이 난잡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어지는 하싼 화티의 건축정신-

 

안내를 끝낸 뒤, 청년은 자신의 이름이 무하마드라고 밝히면서 카이로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지금은 스스로 이곳에 와서 수행자 생활을 한다고 밝혔다.

그 청년은 하싼 화티가 이 마을을 건설할 때 자신의 아버지가 이곳에서 건설 기술자로 일했다고 소개하면서 아버지와 하싼 화티에 대한 존경심을 아주 자랑스럽게 표현했다.

 

장차 훌륭한 건축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덕담에 그 청년은 웃으면서 즉답을 피했지만 그의 눈 속에 비친 건축에 대한 열정과 위대한 건축가에 대한 존경심은 숨기지 못했다.

한국 건축가 중 혹은 한국인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구르나 마을을 다녀 온 이후,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과 기대는 많이 변했다.

 

 

그것은 위대한, 그래서 전 세계에서 100회 이상의 건축과 관련한 상을 수상한 작품이 60년이 채 못 된 세월이 지난 후 변해버린 모습 때문이었다.

 

한 사람은 한 채의 집조차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열 명이 모이면 열 채의 집도 매우 쉽게 지을 수 있다. 백 채의 집조차 가능하다 - Hassan Fathy, Architecture for the Poor,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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