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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윤의 <삼진기행> 2 / 1954년 4월 15일 (목)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2 일행은 이(李) 열사가 생전에 생장하셨다는 봉곡 부락 길가에 정차를 하고, 좁다란 밭 기슭을 타서 가면 신작로에서 불과 3·4분 만에 선생의 구거에 당도된다. 가옥은 농촌의 공통으로, 나지막한 토장(土墻, 흙담)과 싸리(柴, 시 / 산야에 절로 나는 왜소한 잡목)문을 들어서니 선생이 거처하던 노후하였던 집은 전항(前項)의 말과 같이 소실되고 소나무 향기와 흙냄새가 나는 새(新)집으로 변하였다. 이름과 외관만은 새집이지만 찬바람이 스며드는 쓸쓸하기 한량없으니 생계야말로 과반사(過半思)가 아닐까? 선생의 계보를 들어보면 수대를 두고 독자(獨子)로서 백숙형제(伯叔兄弟)가 없었고 원척(遠戚, 먼 일가) 외에는 혈혈 고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으며 장(長)하여.. 2019. 10. 28.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오늘부터의 포스팅은 창원지역에서 평생 언론인으로 살다간 목발(目拔) 김형윤(金亨潤) 선생이 남긴 기행문이다.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실렸고, 기고자는 본명 대신 ‘H 생’이라 되어 있다. 제목은 「삼진기행」이며 1954년 4월 14일부터 23일까지 9회 실렸다. 당시 마산일보 사장이었던 김형윤 선생이 15명의 벗들과 함께 1933년 순국한 독립지사 '죽헌 이교재 선생'의 유족을 찾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찾았던 기록이다. 이 글의 가치는 이교재 선생과 유족에 대한 내용과 함께,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당시의 삼진지역(진동, 진전, 진북)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다. 김형윤 선생의 기고문에 맞추어 모두 9회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이다. 원문 그대로 옮기지만 일부 고문(古文)은 읽기 편하게 고쳐 쓰고,.. 2019. 10. 21.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축문화제’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자주 없는 나는 처음이었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워 천천히 동상을 감상한 뒤 설명문까지 차분히 읽었다. 기단부에 새겨진 설명문 사진이다. 기록문 중 생년(1859년)은 오기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등 관련자료 다수에서는 185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로 잡아야할 일이다. 마침 외국인 여러 명이 동상 주변으로 와 ‘이게 누구 동상이지?’라는 표정으로 동상과 아래 설명문을 살폈다. 하지만 동상에는 한글 외에 아무 설명도 없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외국어 설명문.. 2019. 10. 14.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구글과 애플 탈원전 정책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지난 9월 3일 창원시정연구원과 창원상공회의소는 ‘정부 에너지 정책 변화와 지역 경제 세미나’를 개최해 원전 산업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탈원전을 감행하는 나라가 없고 원전 산업 전성기에 탈원전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주장했다. 한 언론사 경제부기자는 보수 야당 의원의 말을 빌려 ‘탈원전 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는 표현을 자료집에 실었고, 언론은 이를 받아 크게 보도하였다. 탈원전 정책을 찬성하는 발표자는 한 사람도 없었고,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발표자도 없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오직 경제적 어려움만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경제 전문가도 아니었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자. 도대체 국민의.. 2019.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