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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6.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대 토박이들이 비치거리계’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노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재건약국 옆쪽에 비석이 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없어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창원군 내서면장을 지냈던 진봉계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 구름다리

구 북마산역 광장에서 교원동 쪽으로 임항선 철로 위에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육교로 구름다리, 북마산 구름교로 불리고 있다.

1971년경에 세워진 길이 28.8m 폭 3.0m의 강재슬라브 다리이다. 

이 다리는 철로 레일을 휘어서 만든 특이한 공법의 다리로도 유명하다. 

이 다리가 설치되기 전에는 북마산역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를 왕래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었는데 다리가 설치되면서 북마산 일대 주민들의 통행이 아주 편리해져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당시 신문에는 다리 완공 소식이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기도 했다.

이 구름다리는 당시 국회의원 한태일(1909-1995)이 사비를 들여 세웠다고 알려졌다. 

한태일은 1967년 6월에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로 고려모직주식회사 사장, 마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당시 마산 상공계의 거두였다.

 

 

● 북마산역

예전에 마산에 있던 세 개의 기차역 중 하나로 상남동 1-39번지 일대에 있었다.

1924년 2월 경남선(마산-진주)의 일부인 마산-군북 노선이 개통되며 역이 설치되었다. 

다음해에 경남선이 완공된 후 함안 군북 진주 등 경남 서부지역의 여객 및 화물 수송과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그 부근의 농촌지대와 거래하는 여객이나 화물의 철도 이용도가 높아졌고 더욱이 구마산 장날에는 농작물을 이고 진 승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1967년에는 경남선이 순천까지 연결되면서 그 절정기를 맞았다. 

북마산역 역전마당은 예전에 아주 활기찬 시장이었다. 일년내내 싸전이 열렸으며 봄 되면 딸기전이었고 가을 되면 감시장이었고, 기차가 도착하면 순식간에 번개시장이 섰다. 

오후 6시 40분이 되면 인근 함안 등지에서 통근 통학하는 사람들로 역마당이 가득찼다고 한다.

삼역통합으로 북마산역은 폐역이 되었지만 노선은 계속 유지되었다. 

이 노선은 마산항 제1부두선(馬山港 第一埠頭線) 또는 마산임항선(馬山臨港線)으로 불렀는데 , 마산역에서 마산항역을 잇는 총연장 8.6km인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이었다.

2011년 2월에 폐선되고 그 선로에는 임항선 그린웨이가 조성되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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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9.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0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있었다. 

징병 징용 등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동포들이 해방 후에 돌아와 거기에 칸을 치고 살게 되면서 부터 '나래비 마을' 또는 '하모니카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피란민들의 판자집도 다닥다닥 들어서면서 빈민층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마산의 대표적인 빈민주거지역이 되면서 사람들이 세칭 ‘회원동 500번지’로 부르게 되었다. 

일본군 창고집(아래 사진 중앙 상부의 직사각형 건물 세 동)은 1979년에야 헐리고 그 자리에 새한아파트 세 동이 들어섰다. 

현재 회원2구역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 아리랑고개

교방천에서 무학산을 바라보면 오른쪽교원동 방면으로 철로 옆을 따라 쭉 이어진 고갯길이다

현재 그 길의 이름은 노산서 2이다. ‘아리랑고개길이라고 이름지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길이다

지금 보면 고갯길’ 같이 보이지 않지만 나이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전에는 제법 높았다고 한다

교방천 쪽에서 짐이라도 들고 그 길을 올라가자면 꽤 힘들었다고 한다날이라도 더웠으면 중간에 다리쉼이 생각도 날 법한 길이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아리랑고개는 힘들지만 결국에는 이겨내고 올라야만 하는 고개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비록 낮은 고개지만 그런 이름이 자연스레 붙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고개마루 바로 밑 지점 쯤에 아리랑 실비’ 조그마한 술집이 있어 한두 잔 막걸리를 팔고 있다.

고개마루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교방동 위로 올라가는 골목이 나오고 몇발자욱 더 가면 오른쪽으로는 북마산 구름다리가 있었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뻗어나가는 좁은 교원동 골목길은 회원천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리랑고개는 나무전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무학산이나 무학산 너머 감천 골짜기에서 땔감을 해서 소달구지에 싣거나 지게에 지고 와서 팔았다고 한다화목 같은 장작도 팔았지만 주로 갈비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

장작은 어시장이나 포교당 절 앞에서 많이 팔았고 이쪽 아리랑고개에서는 소나무 갈비를 짚동처럼 묶은 갈비를 주로 팔았다고 한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연탄이 보급되면서 아리랑고개 나무전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에 예전에 마산부 관문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 회산다리

상남동과 회원동 사이의 회원천에 놓인 다리로 회산교(檜山橋)라고도 한다예전에는 회원교(檜原橋)라고도 했다

지금 다리에는 한글로 회산교라고 새겨져있다회산(檜山)은 창원의 오래된 별호(別號)인데 이름에서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이 다리는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목발 김형윤 선생(아래 사진)은 마산야화(馬山野話)에서, '이 다리에 옛날에 隆熙二年建立이란 표석(標石)이 있었는데 해방 후에 반가지(半可知)의 애국가(愛國家)들의 손으로 삭제(削除)되고 단기연호(檀紀年號)로 박혀버렸다'고 애석해 하면서, '마산에서 함안진주로 통하는 신작로(新作路)가 생긴 때가 1908(융희 2)인데 이 표석이 그 증거'라고 밝히고 있다

 

 

또 신마산 시청 앞의 도로는 1914년경에 생겼다고 한다

마산에서 진해현(진동)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는 신작로즉 진주가도(晋州街道)가 1908년에 닦였다는 것이다

참고로 1912년 당시 마산 진주간 180리 길을 자동차로 가는데 4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뽀얀 먼지 날리는 신작로 풍경이 떠오른다.

마산 최초의 신작로에 놓인 유서깊은 다리인데 지금 그 표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없다

오래된 지도를 보면 회산다리는 돌다리로 표시되어 있다

사실 1970년에 회산다리 도로즉 지금의 북성로를 폭 20m로 확장하기 전만 해도 길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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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2.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9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이고개(배드나무 고개)라고 부른다. 

먼 옛날 해일이 넘쳐 배가 산고개를 넘어 갔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다. 

이 고개에서는 지금도 메밀이 드문드문 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배가 메밀을 싣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파선을 당했는데 그 메밀 싹이 튼 것이라 한다. 

또 회원동 앤지밭골에는 오랜 옛날에 바닷물이 그곳까지 들어왔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두척산(무학산)에는 배넘이고개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가 한 군데 더 있다. 완월동 공동묘지 뒤에서 서원골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배넘이고개라고 한다. 

역시 바닷물이 넘쳐 배가 산을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고개이다.

 

● 회원 서낭당

회원동 북쪽 골짜기 쪽에 있었다고 하는 서낭당인데 현재는 아는 이도 없고 흔적도 없다.

 

● 상보

회원천에서 회원 뒷들로 들어오는 보(洑)라고 한다.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성황산봉수터(城隍山烽燧)

무학산 줄기인 해발 265m의 봉화산(烽火山)에 있으며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을 서울에 알리는 신호수단으로 쌓은 것이라 추정된다.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라고도 하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화산 봉수대는 간봉(間峰) 6로로서 처음 부산 다대포봉수대에서 시작하여, 웅천(熊川)의 고산(高山) 봉수대→봉화산봉수대→칠원(漆原)의 안곡산(安谷山)봉수대→창녕 현풍 노산봉수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서울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연결되었다.

 

● 회원동 둥구나무 [정자나무]

회원천변의 회원동 543번지에 있는 수령 5백년이 넘는 느티나무로 회원동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나무의 일부가 고사하고 부러졌지만 높이 13m 가슴 높이 둘레 3.8m의 거목으로 1982년부터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다. 

느티나무는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어 왔으며, 오래된 느티나무는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 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이 나무 역시 지역주민들로부터 보호받아 왔다.

350여 년 전 통영의 통제사(統制使)가 이 나무를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주변에 거주하는 노씨(盧氏) 가문의 6대조(六代祖)가 만류하여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둥구나무도 회원동의 당산나무로 예전에는 해마다 회원동의 동제(洞祭)를 이 나무 아래에서 지내왔다고 한다. 

당제(堂祭), 당산제(堂山祭)로도 부르는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 제사인데 현재는 중단된 지 오래이다. 

오래 사신 분의 얘기에 의하면 동제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크게 지냈다고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해서 제물을 차려 놓고, 부정을 타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 제주가 되어 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가 끝나고 나면 건구(매구, 풍물)도 치며 놀았다고 한다. 제를 지낼 노인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맥을 이을 사람이 없어 중단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회원동 둥구나무 (2009년)

 

● 둥구나무 비석군

회원동 둥구나무 옆의 하천변에 세 개의 비석이 서 있다. 

세 개의 비는 枕溪亭交河盧公諱世煥遺蹟碑(침계정교하노공휘세환유적비), 金海金公昌鑄善蹟紀念碑(김해김공창주선적기념비), 五一六軍事革命碑(오일육군사혁명비) 등이다. 

이 비들은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김창주 선적기념비는 일제강점기인 정축년(1937년)에 세워진 것이고, 침계정 노세환 유적비는 신축년(1961년), 그리고 오일육군사혁명비 역시 1960년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중에서 오일육군사혁명비(아래 사진)는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비는 박정희 정권 말기에 국방장관을 지낸 노재현 씨 집안에서 5.16을 찬양하며 세웠다. 

 

 

이후 시민단체에서 비를 철거했으나 일부 주민들이 비를 다시 세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둥구나무 있는 곳에서 회원천을 따라 조금 위로 올라가면 마산연합시우회관이 있다. 

그 회관 옆에 江焉金震權先生功績碑(강언김진권선생공적비)라는 또 하나의 비가 있다. 이 비는 회원동에서 원동정미소를 경영했던 실업인 김진권의 공적을 기려 1975년에 세워졌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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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5.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8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1

 

● 돌산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자락으로 돌과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 주공아파트 위쪽 편으로 돌이 많아서 돌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돌산에는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 배암골

무학산과 봉화산 사이의 골짜기로 배암(뱀)처럼 길게 뻗었다고 붙은 이름이다.

아주 오래된 이름으로 연로하신 토박이들 한두 분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연계밭골 [蓮溪田谷, 앤지밭골, 앵기밭골]

회원동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산골 마을이다.

지금은 이 골짜기가 회원동에서 가깝지만 예전에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골짜기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옛날 앤지닭(영계)가 울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유사한 발음으로 추정한 속설일 뿐이다.

인근 무학농장이 어른들의 놀이터로 유명했다면 연계밭골은 1970~80년대 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로 유명했다.

1926년에 펴낸 조선교통도(아래 그림)에 연계전곡(蓮溪田谷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朝鮮交通圖(馬山五號), 1926.

 

● 문바우 [문암]

무학농원 서쪽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로 문처럼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멀리서도 잘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 어느 바위인지 찾기가 어렵다.

 

● 탕건바우

회원동의 남서쪽 무학산 기슭에 있는 탕건 모양의 바위라고 한다.

산에 나무가 거의 없던 민둥산 시절에는 산에 있는 바위들이 두드러져 보였으나 지금은 숲이 우거져 바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절터골

돌산 위쪽 산골짜기로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터골 위쪽에 조그마한 폭포가 있었는데 소라고동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약수바위

절터골 폭포 옆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 밑에 샘물이 있는데, 약물처럼 물맛이 좋다고 한다.

예전에는 회원골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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