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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5.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4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7) "허허벌판에 이룬 삶의 터전" ------------------------- 박○○

1947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72-22

날짜 : 2015년 1월 8일

장소 : 관룡사

 

- 반갑습니다. 예전 이 동네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 옛날에는 이 일대가 거의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지금 현동에 가면 국화밭 있죠? 거기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여기는 특별한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무학상가 있는 그 근방에 옛날 주택 부서진 데 있죠? 여러 집 있습니다. 거기는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그쪽에 국화밭이 형성되어 있다가 저쪽 현동으로 가버렸거든요.

 

국화밭(참고자료)

 

- 지금 무학상가 위쪽에 국화밭이 있었다는 거지요?

= 그쪽으로 있었고 주택도 쭉 있었어요.

- 다른 분 얘기 들으니까 미나리꽝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 그쪽에 좀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일대에는요 보존할 게 하나도 없어요. 전설이라든지 그런 것도 없어요.

이 밑에는 예를 들어서 2지구 같으면 정자나무가 있는데 그 유래가 있어가지고 보존할만한 게 되지만 이쪽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여기는 우리 서민 생활 있죠? 그대로 입니다.

- 예. 이 동네는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지요.

= 서민들 동네이기 때문에 건물 자체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변한 게 있어야지요.

예전에는 앞에 이 도로도 없었거든요. 큰 도로 여기도 골목이었거든요. 이 위에 우리 지구에는 안들어가는데 교방초등학교 못가서 오른쪽 편 거기도 집이 몇 채밖에 없었거든요.

육일약국 하고 교방초등학교 중간에 거기는 옛날에 아무 것도 없었고 허허벌판인데 집 몇 채만 지어져 있었거든요. 이쪽 밑으로는 국화밭이 있었고...

- 그러니까 국화밭이 있고 할 때에는 70년대 이후이겠네요?

= 그렇겠네요. 그래 내가 공직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아는데 그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예를 들어 저 밑에 같으면 오백번지는 난민촌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허허. 여기 우리 아파트는 옛날에 야산에 돌밭이었습니다.

- 동네 옛날 이야기 들으러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만 여쭤 보겠습니다. 이 위를 앵지밭골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회원동 말고 옛날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 있었습니까?

= 이 동네는 내가 알기로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서 석전동은 옛날에 봉오재라 했고 회성동을 살구지이라 했거든요.

- 옛날 교원동사무소가 어디 있었습니까?

= 자이아파트 있지요? 그 바로 뒤편에 있었습니다. 거기가 전부 조그만 주거지였지요.

그 동네는 난민촌 비슷했어요. 그 다음에 도랑 있지요? 도랑 옆에 거기도 전부 교원동이었어요.

- 그리고 여기 못산이라고 있었다고 하던데요?

= 이 다리 밑에 조그만 못이 있었다고 합디다. 옛날에 이 도로 밑이 못이었어요. 하천 이쪽에 간판집 그 밑이 못이었어요.

그래 조합에 김상열 이사 있죠? 거기 가서 물어보면 됩니다.

내가 공직생활을 했는데 교방동 교원동 일대를 훤히 압니다. 그래 김상열 씨 자기 집이 못산쌀집을 했어요.

- 앤지밭골에도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습니까?

= 조그만한 목장이 있고 사람도 살았습니다. 지금도 목장 있어요.

우리 신도가 거기서도 오기 때문에 압니다. 그런데 회원2동은 재개발 하는데 그런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뭐 보존한다는데 할 게 있어야지 내놓고 할 게 없습니다.

- 예. 그럼 못산이란 여기는 사람들이 좀 모여 살았습니까?

= 나는 그때는 모르죠. 태어나기도 전인데 거기가 못이라는 것만 들었죠.

- 이 밑에 598번지 일대에 공영주택 있지 않습니까? 그 일대에 옛날에 미나리꽝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 여기가 못이기 때문에 거기에 미나리꽝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교방초등학교 뒤쪽 있죠? 그 오른쪽에는 옛날에 자갈밭이었어요. 집 다섯 채 있었는데 길이 포장도 안되고 질퍽질퍽 하이 그랬어요.

- 여기 회원동이 옛날에 국화재배로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 예. 그래요. 여기 옛날에 시의원 했던 염 의원 집 앞이 전부다 국화밭이었어요.

국화밭 앞에 우리 집이었거든요. 허허허.

- 그럼 절 여기 지었을 때는 주변에 집이 많이 없었겠네요?

= 많이 있었죠. 옛날 집은 밑에 그대로 있어요. 밑에 가보시면 천막 덮고 부서진 집이 여러 채 있어요.

거기는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게 제일 오래된 집일 겁니다. 또 그 밑에 무학아파트 있죠? 거기도 제일 오래됐습니다.

- 예. 지나다보니까 물이 새고 그렇더라고요.

= 그것도 처음 짓고 나서는 잘 지었다고 막 그랬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다 주공아파트였거든요. 여기 주공아파트 선 자리 이 밑으로는 뭐 없었어요. 이름있는 그런 게 아무 것도 없어요.

2지구 같으면 오백번지 나래비집, 또 정자나무 그런 건 유명하지만 여긴 아무 것도 없는데요.

국화밭도 그전에는 미나리 하다가 국화 심은 겁니다. 미나리밭 하다가 국화 심고 그 다음에 집이 들어서고 그랬습니다.

- 여기 절은 원래부터 여기 있었습니까?

= 짓고는 바로 들어왔습니다. 여기 못이 있었다는 것도 우리 절에 나오던 나이 구십 넘은 사람들한테 들은 겁니다.

지금 여기 사람들은 모릅니다. 다 객지 사람들이거든요.

옛날에 내가 공직에 있을 때 이 동네 오면 신발 다 버리고 그랬어요.

왜 그런가 하면 비가 와서 땅이 질퍽질퍽 한데 신발에 흙이 붙어가지고 엉망이 되고 그랬거든요.

하하하. 여기가 그랬던 곳입니다. 그때 비하면 엄청나게 변했지요.

- 예.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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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8.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3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6) "사십 년을 살아온 제2의 고향" ------------------------- 조○○

1940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2-2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선생님께서도 우체국에 오래 근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나도 우체국에 근무했습니다. 한 삼십 년 됩니다.

예전에는 체신부에 근무한다고 체신인이라 했어요. 체신부가 건국 이후 부터 내려오다가 과학이 발달되고 정보통신 계통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까 정보통신부로 개명이 되었다가 다시 전파 업무를 관장하게 되다 보니까 모든 방송전파 업무를 관리를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전파관리국에서 전화국도 관리 했고 통신도 관리했지요.

처음에는 체신부에서 전화와 모로스 전신 업무를 담당했는데 업무가 점점 늘어나서 전화국에서 담당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산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통신 업무가 제일 중요했는데 전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전화 가설을 해줘야 되는데 그 수요를 못따라 가서 부작용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전기통신연구소를 창설해서 거기서 자동교환기를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개발한 겁니다. 그 기술을 금성사에다가 넘겨 가지고 기계를 만들어서 엄청 돈을 벌었다고 해요.

그 당시만 해도 전자교환기는 없었거든요.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서는 독일 정도가 했고 나머지 나라에서는 못만들었던 시절에 우리나라 전기통신연구소에서 개발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도 1만회선 정도 되면 그 당시에 전화국을 하나 지었어요. 그 당시 그러니까 75년도에 내가 마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때 창원공단이 막 설립이 되었어요. 지금 창원우체국 전신인 창원기지우체국을 창설하는데 필요한 수요조사를 맡게 되었어요.

- 창원기계공단이 조성되던 초기이군요.

= 그렇죠. 그 당시에 공단 쪽에서 하는 얘기가 우체국을 꼭 세워줘야 한다고 하더만요. 그러면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앞으로 공장이 몇 개가 들어설 것이고 하는 내용인데... 그 당시만 해도 나도 그렇고 우리 우체국 안에서도 선반이 무엇인지 금형이 뭔지 몰랐어요.

그래 모든 걸 되는 쪽으로 출장보고서를 체신청에 올렸어요. 그걸 기준으로 해서 설립이 되었는데 그 우체국이 기지우체국에서 서기관 우체국으로까지 발전했어요.

- 처음 그 우체국이 들어선 자리는 어디입니까?

= 처음 들어선 데는 공단관리청(아래 사진) 안입니다.

몇 년 안가서 공장이 많이 들어서게 되니까 전화 업무도 폭발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까 거기 전화국도 하나 서게 됐습니다.

 

공단 관리청. 당시에는 저층부(2층)만 있었다.

 

- 그럼 마산에는 언제 오시게 되었습니까?

= 함안에서 살다가 75년도인가 집을 사고 이사 오기는 76년도에 이사를 왔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 자리입니다.

집은 기와집인데 아래채 두 채가 물치로 등기가 되어 있었어요. 물치가 뭔 말이냐 하면 헛간입니다. 그런데 농사를 안짓게 되니까 거기다가 방을 넣어서 방을 여덟 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 그 방세 받아가지고 내 월급하고 해서 아들 공부시키고 그랬죠. 그 뒤에 정년퇴직 하면서 뜯고 집을 새로 지었어요.

- 그럼 언제 정년퇴직 하신 겁니까?

= 98년도 말에 이 집을 지었는데 정년퇴직 하면서 이사를 들어왔어요.

새 집을 지을려고 사택 있는 데로 부임해 갔다가 집을 짓고 퇴직 하면서 이리 들어 온 거죠. 76년도에 여기 왔으니까 내년이면 딱 사십 년이 되네요.

- 여기서도 오래 사셨군요. 그럼 원래 고향은 어디 입니까?

= 함안 산인입니다. 내가 커기는 산인에서 컸어요. 마산대학 있는 고개 하나 넘으면 우리 동네인데 문암마을이라 불렀어요.

산인 입곡못 들어가는 거기에 고속도로 있고 옛날 기차길도 있는 그 길가에 집채만한 바위가 네갠가 다섯갠가 있었어요. 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문바구인데 그게 우리 동네 이름입니다.

그 동네가 분지처럼 되어 있거든요. 기차굴도 뚫혀 있고 그 가운데쯤 동네가 우리 동네입니다. 그리고 또 학교도 창신고등학교 나왔는데 59년도에 졸업했어요.

- 그럼 고등학교 다니실 때 산인에서는 어떻게?

= 기차로 통학을 했어요.

아침 통근차가 그 당시에 여기에 여덟시인가 도착하는 기차가 있었어요. 산인에서 타면 한 삼십 분 걸렸어요.

- 옛날 북마산역(아래 사진)에 내렸겠네요?

 

 

= 그렇죠. 그런데 걸어다니면 두세 시간 걸렸지요. 기차가 없을 때는 걸어다녔어요. 당시에 우리 마을에서 걸어다닌 학생이 있었어요. 나보다 두 살 더한 사람인데...

- 76년도에 이사왔을 때는 이 동네에 주택이 다 들어서 있었습니까?

= 여기에는 집이 얼쭉 다 있었어요. 저 다리걸 위로는 다 밭이고 꽃 키우고 그랬어요.

여기 조금 위에 예전에는 논으로 해서 물이 내려오던 도랑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도랑이 전부다 묻히고 물이 다른 쪽으로 흘러나갑니다. 미나리꽝은 앵지밭골 쪽에 있었고 이쪽에는 많이 없었어요.

- 그리고 또 공장은 없었습니까?

= 저 무학상가 쪽에서 어떤 사람이 공장을 하다가 망해서 팔고 거기에 무학상가를 지었어요. 그리고 저 건너 대림아파트 쪽에 공장이 있었는데 염색공장인지 그 염색한 물이... 회산다리 옆에 구거가 하나 있어요.

어북 높은 하수구가 있었는데 거기에 항상 시커먼 물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그 하수구가 철길따라 쭉 있어요. 그때 우리가 그걸 보고는, 저것 때문에 우리 앞바다가 죽음의 바다가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이 밑에 소가죽 가공하는 우피공장이 있었는데 도둑놈들이 소 몰고 와서 잡아가지고 시장에 팔고 그랬다는 얘기도 있어요. 지금 자동차주차장 있죠?

그 옆에 큰 집이 그것 허물고 지은 집입니다. 거기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주차장 옆으로 들어 가는 그게 우피공장 터구만요. 또 회산다리 쪽에 정미소가 있었어요.

그 정미소 이름은 모르겠는데 산인에서도 구르마를 대가지고 나락을 싣고와서 찧어 가지고 마산에 팔고 그랬거든요. 산인에서도 여기 올 정도가 됐으니까 내서, 칠원 쪽에서 많이 왔죠.

그 아들이 김형일 씨라고 로타리 회장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시조회관하고 연결이 되고 있어요.

이 밑에 북마산중앙시장 주인이지 싶은데 박씨라고 그 분이 또 솥 공장을 했어요.

- 처음 이사 오셨을 때 여기 하천에는 물이 어땠습니까?

= 내 이사올 그때는 벌써 추접어졌어요. 비가 와서 한번 싹 쓸고 내려가면 만회할 정도였지요.

왜 그렇느냐 하면 건너 둥구나무 있는 데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지고 하수가 많이 나왔거든요. 지금 마여중 있는 데까지 올라가야 빨래를 할 수 있었어요.

- 예전에 출퇴근은 주로 어떻게 했습니까?

= 나는 주로 걸어다녔거든요. 차를 안타고 마산우체국까지 지금 중부경찰서 앞에 합포우체국까지 걸어 다녔어요.

여름 한철 한 두어 달 정도는 못걸었고 그때 외에는 늘 걸어서 출근 했어요. 왜 그러냐 하니까 나는 버스를 타는 게 굉장히 싫더만요. 그 당시는 시내버스는 굉장히 비좁고 좀 뭐한 운전기사는 일부러 급브레이크를 밟아 사람들을 뒤로 밀어서 억지로 많이 태울려고 그런 짓을 많이 했거든요. 사람을 짐짝 취급하는 게 싫어서 걸어다니기로 하고 그때부터 계속 걸어 다녔어요. 걸어 다니니까 좋은 것이 지금 나타납니다.

그 걸어다닌 그 결과로 지금 무릎이 안아파요. 처음 사십대에는 무릎이 많이 아팠는데 계속 걸어다니니까 그 아픈 게 잦아들더만요. 그래 철길따라 쭉 가는 길로도 다니고 화장막으로 해서 자산동으로 걸어다녔어요.

그 당시에 우리 집 있는 도랑 이쪽은 여기까지만 길이고 그 위로는 없었고요. 지금 저 웃다리 앞에 다리는 오래된 다리이고 그 위 다리도 오래된 다리거든요.

거기서 버스 다니는 길과 연결되는 길이 있는데 그쪽만 연결되어 가지고 꼬불꼬불 하게 위로 올라갔지 지금처럼 안발랐어요. 그 공사하는 바람에 우리 집에도 물이 들어와 가지고 혼이 났지요.

- 이 하천 때문에 수해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 얘기 좀 해 주시지요.

= 80년도인가 79년도인가 그렇습니다. 앵지밭골에서 내려오는 냇가가 있는데 마여중 쪽에서 부터 하천 직강공사를 했거든요.

그 이전에는 꼬불꼬불 했어요. 그 공사를 빨리 했어야 되는데 흙을 그냥 방치해 둔 상태에서 엄청난 비가 오니까 그 흙이 다 쓸려 내려가 버렸어요.

개울에 흙이 어느 정도 쌓였냐 하면 저 , 절반쯤 쌓였어요. 그 흙이 다 쓸려내려와 오니까 우리 집에도 물이 들었고 지금 소담한의원 하던 자리도 싹 쓸어가지고 거기 살던 사람이 수해를 많이 입었죠.

그 당시 낮에 비가 크게 왔으니까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어요. 밤에 비가 왔으면 집 쓸려 간 사람들은 욕을 봤을 겁니다. 저 밑에 빙 돌아가는 거기가 지대가 좀 낮아요.

낮부터 비가 많이 왔으니까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물 구경도 하고 그랬거든요. 나도 퇴근해가지고 애들을 친척집에다가 데려다 주고 이 집을 비웠어요. 연탄 때던 시절인데 집에 물이 들어차 가지고 연탄이 녹아서 가루가 되어 버리고... 그런 시절이었지요.

그게 아마 79년도일 겁니다. 내가 이사 온 몇 년 뒤니까요. 그때 교방동에도 수해가 났는데 그 위에 풀장에 물을 가두었다가 한참에 여는 바람에 피해가 많았다고 하더구만요.

- 그 당시에 이 앞에 다리도 떠내려가고 그랬다고 하던데요?

= 완전히 쓸려내려 간 것 아니고 반쯤 떠내려갔던 것 같네요. 일렁일렁 해가지고 난리가 났었지요.

그 당시에 우리 집에서 조금 내려가면 돌다리가 두 개 있었어요. 위에 다리는 허물고 새 다리를 지었고 밑에 거는 도시계획으로 동중학교로 연결되는 길이 뚫리면서 새 다리가 섰고 그 다리는 못 쓰는 다리가 됐지요. 옛날에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조금만 올라가면, 여기 다리 말고 웃다리에만 가도 이런 바위들 큰 돌멩이가 많았거든요.

바위가 아니고 둥글둥글 한 큰 돌멩이지요. 그걸 학생들이 주워다가 창신고등학교 울을 쌓았어요.

- 담장을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 그렇지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학교 담이 없고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새로 온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이 마음대로 들락거리니까 안되겠다며 담을 쌓았어요.

학생들을 모두 동원해서 이 회원천에서 돌멩이를 말큼 주워와서 쌓아가지고 돌담을 만든 겁니다. 전부 다 학생들이 운반했어요. 그 당시에 우리 고등학교가 세 학급으로 모두 아홉 학급이고, 중학교가 아홉 학급 되니까, 열여덟 학급이고 육십 명씩 하면 약 천 명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학생 한 명이 한 개씩 운반해도 천 개니까 그게 어디요? 그렇게 쌓은 그 담이 최근까지 있다가 아파트 지으면서 그걸 싹 다 없애버렸더라고요.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그때가 언제입니까?

= 그 때가 58년도, 59년도지요.

그 당시만 해도 이 하천 바닥을 견치돌로 안해놨고 시멘트도 안해놨고 자연상태 그대로니까 그냥 일반 내와 같이 이런 돌멩이들이 많았어요.

그래 학교 졸업하고 십 몇 년 지나서 여기로 오니까 냇가 양쪽을 견치돌로 다 쌓았더라고요. 바닥도 견치돌로 전부 다 이렇게 해놓고 물이 그 위로 흐르도록 해놨더라고요.

- 예전에 이 하천 건너 정자나무 있는 데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 그냥 회원동 둥구나무라 했지요.

또 회원동 그쪽은 일제시대 일본군 말 키우는 마사가 있었다는데 일본군이 물러가고 나서 귀환동포가 거기 살았다고 합디다. 그걸 시에서 싹 뜯어버리고 아파트 지어 분양을 하고 그랬다하대요.

- 그리고 이 위로는 그 당시에 앤지밭골 하고 무학농장이 유명했다고 하던데요?

= 그렇지요. 무학농장은 주로 봄철에 사람들이 놀러 가던 장소로 유명했습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까 자주 못갔는데 우리 함안조씨 화수회를 거기서 한 적도 있어요.

한때 사람들이 많이 놀러 갔었는데 그 뒤에 무학농원이 없어지고 나서는 마재고개 두척 골짝에 도축장 밑에도 놀러 갔어요. 그것도 요 근래에는 없어졌는데 거기도 우리가 두어번 놀러갔어요.

우리 동네에서 친목계를 만들자 해서 모아가지고 장구도 사고 해서 그 장구 가지고 놀러가고 그랬습니다. 동네 계이니까 별 이름도 없이 그냥 묵자계인데 나는 그 뒤에 빠졌지만 지금도 그 계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놀러 다니는 편이 아이었던가 봐요. 일요일에도 집에 붙어 있고... 그 당시만 해도 경제사정이 어려워가지고 놀러 한번 가는 것 같으면 월급이 많이 손해가 나거든요.

그러니까 못갔어요. 요새처럼 돈이 넉넉했으면 놀러도 다녔을텐데... 항금에야 등산이나 하고... 허허허. 그리고 지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는데 저 위쪽 산에 수도사라고 절이 있어요. 그 자리가 원래 창신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맨 처음... 참 그 어른도 굉장한 분이야.

그 당시에 순 바위만 있는 거기에다가, 어디 가서 바위 깨는 방법을 배워와가지고, 바위를 깨고 그걸 쌓아가지고 거기다 집을 조그맣게 하나 지었어요.

몇년 지나고 거기 가니까 절이 서 있더라고요. 왜 갔느냐 하면 그 선생님이 장미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자기 집 근처에 장미꽃을 많이 심었어요. 백장미도 있고 흑장미, 검붉은 장미도 있고... 장미를 아주 많이 심었는데 우리가 가면 그 선생님이 접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더만요.

눈만 딱 떼어가지고 접붙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데 나도 그 꽃이 너무 좋아서 그걸 하나 얻어와서 해보고 했는데 한번도 성공을 못했어요.

지금 거기 가면 주춧돌 바닥에서 돌멩이로 쌓은 언덕이 있는데 거의 반 정도는 그 선생님이 쌓았을 거구만요. 그래서 지금은 거기가 넓은 절터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수도사에서 등허리를 하나 넘으면 무학농원이거든요.

- 예전에 시장은 어디로 다녔습니까? 목욕탕은 어디가 먼저 생겼습니까?

= 남일탕이 먼저 생겼지요. 지금은 남일탕은 없어졌는데 거기에 어린이집이 들어섰습니다.

그 다음에 태양탕이 생기고 나서는 주로 태양탕에 갔어요. 남일탕이 좀 낡았다고 사람들이 잘 안가더만요. 태양탕은 그 주인이 그것 팔고 저 건너편에 현대탕을 했어요.

당시에 수출자유지역에 공장이 많이 있으니까 그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우리 동네 와서 방 얻어가지고 그리 생활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에 방이 그리 많았지요.

이 밑에 중앙시장도 전에는 없었어요. 북마산역 앞에 소전거리라고 제비산 밑에 우시장에 있었던 상점이 옮겨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못쓰는 땅에다 건물을 지었는데 거기에 북마산시장이 생겼거든요. 시장 들어선 데가 원래 지대가 좀 낮은 곳이었요.

그래 내가 이 동네로 오니까 이미 거기에 상남동우체국이 있었어요. 시장이 이사 오고 사람들이 엄청 붐비니까 상남동우체국도 일이 많아진 거죠.

- 벌써 사십년 가까이 이 동네에서 사셨는데 감회가 어떠십니까?

= 뭐 특별한 감회 같은 그런 거는 없고요. 현대적인 집이 들어선다 하니까 좋지요.

- 예. 오늘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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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축학도 2021.01.22 00:38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건축학도입니다. 이번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산항에 대해서 관심이 아주 많았는데 선생님의 좋은 글귀와 생생한 역사 텍스트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고 귀한 글을 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자주 들려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2. 허정도 2021.02.06 16:46 address edit & del reply

    방문 감사합니다~

  3. 한찬욱 2021.02.18 22:16 address edit & del reply

    아주 흥미롭고 깊은 내용이 많군요 도시에 관심이 많으신 데 혹시 이 책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도시의 정의 신전 기원 역할 경제성장 에너지 엔트로피 관점에서 고찰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611153

2021. 1. 11.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2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5) "서민들 사는 보통 동네에서의 조용한 기쁨" ------------------------- 최○○

1936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1-5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저기 걸린 액자는 좀 특이하군요?

= 저건 내가 우체국장 하다가 정년퇴직 했더니 누가 기념으로 준 겁니다.

청춘은 결코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다 마음의 상태이다는, 이 말은 젊다고 청춘이 아니고 늙어도 마음만 먹고 있으면 청춘이다는 뜻입니다.

정년퇴직 하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라는 뜻에서 내한테 준 것입니다.

- 예. 보통 동양고전에서 좋은 말을 가져와서 액자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 사람 이름이 적혀 있네요?

= 그렇지요. 사무엘 울만이 유명한 사람은 아닌데 저런 말을 한 모양입니다. 청춘이란 것은 젊다고 청춘이 아니고 마음이 젊으면 항상 청춘이다는 그런 말이죠.

- 그럼 선생님께서는 이 동네에는 언제쯤 오셨습니까?

= 내가 이 집에는 1997년 6월달에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여기 온 지도 만 18년이 됐네요.

-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네요. 그럼 퇴임하시고 나서 집을 사가지고 오신 거네요?

= 그렇지요.

- 이 동네가 처음 여기 오셨을 때와 지금하고 큰 변화가 있습니까?

= 똑 같습니다. 하나도 안변했어요. 이 근처는 딱 그대롭니다. 이 집도 옛날 그대로 입니다. 원래 집에다 샤슈만 새로 했는데 이것도 내가 한 게 아니고 전에 살던 사람이 이렇게 해 놓은 거예요. 샤슈를 달아놓으니까 난방도 되고 그래요. 안 그러면 추워서 안되지요.

저 마당에 있는 정원수도 내가 심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 것입니다. 이 앞에 솔나무까지만 내 거고 나머지는 원래 땅주인 겁니다. 나는 집만 샀어요. 그러니까 이쪽은 대지고 저쪽은 밭입니다. 등기상으로는 전으로 되어 있어요.

- 이 동네에서 이십여 년 가까이 사시면서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었어요. 큰 사건도 없었고...

- 동네가 좀 조용한 편인 모양입니다.

= 아닙니다. 이 동네가 좀 시끄럽습니다.

하하. 뭐 그렇게 크게 시끄러운 일은 없었지요. 또 보면 전부 서민들이거든요. 집도 터가 몇평밖에 안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면 되는데 아파트 지어 놓으면 들어가 살려고 해도 돈이 없어요. 돈을 더 넣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입니다.

- 그러면 퇴임은 어디에서 하신 겁니까?

= 여기 상남동우체국(아래 사진)에서 국장 하다가 퇴임 했어요. 이 우체국으로 들어오면서 살 곳을 물색을 했지요.

상남동우체국도 역사가 오래된 우체국이고 또 큰 우체국이 석전동에 하나 있고 경찰서 앞에 또 하나 있지요. 거기는 서기관 우체국입니다. 또 남성동에도 우체국이 있는데 내가 거기 있다가 이리로 와서 여기서 정년퇴직 했어요.

 

 

우리는 한 사람을 한 군데 오래 안놓아 두거든요. 한 삼 년 주기로 로테이션 시킵니다. 왜그러냐 하면 한 군데 오래 놔두

면 아는 사람 많아지고 그러면 부정을 저지를 소지가 생기니까 그걸 아예 차단하려고 하는 겁니다.

우체국도 세월의 변화에 따라 엄청 변했습니다. 옛날에는 일이 많아서 상당히 바빴는데 요즘은 전에 맨치로 그렇게 안바쁘지요. 일반 국민들이 편지를 안써잖아요. 옛날에는 전부 편지 아닙니까? 요즘은 편지가 없어요. 뭐 통지서 보내는 것 말고는...

옛날처럼 안부 묻고 그런 거는 전화로 하지 누가 편지 보냅니까. 그래서 우편물량이 싹 줄어들었어요. 요즘에는 금융 편리함 때문에 우체국 왔다갔다 하는 거죠. 우체국이 제일 낫잖아요? 이자가 좋은 건 아니지만 국가에서 직접 하니까 신뢰성이 있지 않습니까?

일반 금융기관 말고 신협 같은 그런 데는 안그렇습니까? 만약 부실하게 되면 몇천만 원까지만 보장한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 이상은 힘든 겁니다. 그런데 우체국은 국가에서 하니까, 우스개소리로 김정일이가 온다 해도 국가에서 보장하는 거니까요. 하하.

- 우체국에는 언제 처음 들어가셨습니까?

= 정확한 거는 내 수첩을 봅시다. 나는 이런 거 적어 다녀요. 혹시 어디 쓰고 할 일이 있을까봐.

1966년 1월달에 서울저금보험관리국에 국가공무원으로 그 당시에 5급 공무원으로 들어갔어요. 요즘으로 치면 9급택인데 그 당시는 5급이라 했어요.

- 그럼 처음에는 서울에서 근무하셨네요?

= 공무원 첫 출발은 서울에서 했죠. 실력이 좋으니까 서울에서 근무한 거죠.

하하. 그 당시에 5급 공무원 모집공고를 내면 시험을 치기는 도별로 모아서 쳤습니다. 전국에서 도별로 시험을 치고 나면 합격자들은 국가공무원이니까 총무처에서 총괄관리를 하거든요.

요즘은 총무처라 안하고 행정자치부라 하지만 옛날에는 총무처라 했어요. 그래 공무원이 되어 가지고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마산전화국으로 왔어요. 분수로타리 있던 데 거기 근무했어요.

그래 전화국에 칠팔 년 있다가 우체국으로 갔어요. 그 뒤로 기장우체국, 서생우체국, 칠원우체국, 진해우체국, 양덕우체국, 남성동우체국, 회성동우체국을 거쳐서 여기 상남동우체국에서 정년퇴직을 했지요. 그러니까 삼십 년 넘게 근무했네요.

- 그래 살아보시니까 이 동네 어떻습니까?

= 직장에만 왔다갔다 하니까 동네 사람들과 접촉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또 나이가 많으니까 친구가 별로 없어요. 이 동네에 내 또래 친구도 없고 그러니까 맨날 혼자서 집에서 책 보고 신문 보고 시조창이나 하고... 하하. 그렇게 지냅니다.

- 여기 건너편에 보니까 시조 회관이라고 있던대요 ?

= 내가 거기 다닙니다. 시조 공부하러 다닙니다. 거기 이름이 한국전통예약총연합회 마산지부인데 시조창 하는 데입니다. 내가 국창까지 졸업 다 했어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 한테 가서 가르쳐요. 오늘도 내가 갔다 왔는데, 제일여고 앞에 보면 금강복지회관 있죠? 거기에서 하모니카를 배우고 있습니다. 또 명상도 하고 그러는데 뭐 소일거리죠.

- 그래도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 알죠. 하모 이걸 모르면 되는가요?

하하. 이걸 하니까 재미있어요. 이거는 계음을 모르면 안되거든요. 하모니카 배운 지는 한 일년쯤 됐어요.

- 그럼 악보 없이도 여러 곡을 연주하시겠네요?

= 그런데 계음을 알아도 악보 없이는 안됩니다. 젊은 사람들 맨치로 악보를 못 외웁니다. 그러니까 악보를 보고 불어야지요. 하하.

- 좋은 취미생활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요산산악회라고 있는데 거기서 딱 금요일마다 산에 갑니다. 옛날에는 천 고지 이상 갔는데 요즘은 나이 많다고 조금 낮은 산에 다닌다고 오륙백 정도 되는 데 갑니다.

하하. 그래도 네 시간 이상 걸으니까 좋습니다. 나댕기니까 마음이 즐겁고 그래요.

- 이 동네에 이십여 년 사시면서 동네 옛날 이야기 이런 거 들으신 거는 없습니까? 옛날에 여기 미나리꽝이 있어서 얼음이 얼고 그랬다고 합니다.

= 미나리꽝이 어디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왔을 때는 무학상가가 지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밭이고 그랬지요. 그런데 마을흔적 남기기, 한다는데 여기가 옛날에 무슨 훌륭한 역사의 유적 같으면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고 보통 동네인데 뭐 할 게 있나 싶습니다.

한다고 해도 여기는 옛날에 무슨 터라고 조그만 비석 하나만 세워놓고 말아도 돼요. 그래 간단히 하면 될 걸 거기다가 무슨 거창하게 넣을 게 있겠습니까?

-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가 사라지기 전에 동네의 사소한 이야기라도 모아서 남기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예정대로 절차가 진행되면 몇 년 안에 다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설 것 아닙니까?

= 확실히 어떻게 될지 그거는 잘 모르죠. 이게 뭐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벌써 몇 년 째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뭐 그런갑다 하고 그냥 있는 거죠.

- 예정대로 재개발이 잘 진행되고 또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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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4.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1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동네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살고 계신 데는 언제부터 사셨습니까?

= 우리 동네 내력을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69년도에 들어 왔습니다.

- 예. 정말 오래 되었네요.

= 68년도에 집이 완공 되고 69년도에 입주가 되었는데 우리도 69년도에 들어왔으니까 올해가 46년째인가 그럴 겁니다.

여기가 원래 나락 심고 하던 논이고 미나리꽝이고 그랬다고 합디다. 몇 사람 업자들이 모여 가지고 택지로 개발해서 집 서른두 동을 딱 한꺼번에 지어 가지고 개개인 한테 팔았어요. 매월 얼마씩 부금을 넣어야 하는데 14년 부금이었을 겁니다.

- 여기 주택들이 평수가 다 비슷해 보이던데요?

= 모서리에 있는 집 같은 경우는 조금 어중간 하니까 몇평 더 있어도 그외는 거의 다 비슷해요. 등기상으로는 서른다섯 평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서른여덟 평입니다. 분양할 때는 서른다섯 평인데 그 뒤에 재어 보니까 우리 게 평수가 더 있어요.

똑같이 짓는다고 했는데 우리 집은 세 평이 더 있어요. 그래 69년도에 입주를 했다가 그 뒤에 팔고 나가고 새로 들어오고... 우리는 한번도 옮긴 적이 없었고요.

- 당시에 여기 오셨을 때 이 동네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 공영주택입니다.

- 그러면 수재민 주택이라는 것은 잘못된 얘기군요? 여기를 수재민 주택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던데요?

= 예. 수재민 주택은 아닙니다. 우리가 집을 사서 들어왔는데 수재민 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이사 들어오고 나서 수재가 났습니다. 그때 도랑가 집들이 홀라당 떠내려가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여기 오고 얼마 안있어 가지고 사태가 났어요. 큰물이 졌거든요. 우리 동네도 얼쭉 담았어요. 우리 집은 조금 높다 보니깐 안그런데 낮은 집은 방에까지 물이 들어갈 정도였거든요.

그래 우리 여기는 조금 높고 도랑가는 조금 낮습니다. 그러니까 벽을 뚫어가지고 물 빠져나가게 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수해가 나서 이 밑에는 쓸었어요.

그래 그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화란주택이 지어졌습니다.

그때는 내가 젊었을 때인데 천주교에서 화란주택이란 거를 지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요.

- 화란 즉 네덜란드에서 원조를 하고 천주교에서 관여를 해서 주택을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 맞아요.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이 수재민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처럼 주택 단지로 지어진 것은 여기가 처음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보로꾸로 지은 게 아니고 전부다 벽돌로 지은 겁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동네 집을 보고 우와~ 하고 그랬어요. 슬라브로 깨끗하게 지으놓으니까 전부 다 우와~ 하고 놀라고 그랬거든요.

여기 들어온 사람들도 교감 선생님, 공무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로는 고급주택이었어요. 처음 지을 때부터 단층 슬라브였는데 우리 집은 그때부터 하나도 안변했습니다.

지금 보면 이층 올린 데는 다 새로 지은 거고 우리는 단층 그대로입니다. 조금 달아냈을 따름이지 나머지는 거의 원형 그대로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난 뒤론 이 동네는 큰 변화가 없었어요. 집 다 들어서고 난 뒤로는 딱 그대로 입니다. 지금은 좋은 집들이 많으니까 이건 집도 아닙니다. 오두막이지. 하하. 사십 년 전에는 진짜로 좋았습니다.

- 그럼 69년도에 들어오셨을 때 이 밑에 무학상가도 없었겠네요?

= 그렇죠. 우리 오고 나서 그 뒤에 무학상가가 들어섰습니다.

이 주변에는 이 동네만 오물오물 있었고 위로는 전부 논이고 밭이었습니다. 이 위에 올라가면 태양탕 있지요? 거기는 솔밭 비슷하게 언덕받이가 되어 가지고 묘지도 있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태양탕이 들어오고 그 위에 또 황금탕이 지어지고 그랬어요. 지금은 남일탕이 없어졌습니다만 옛날에는 거기로도 목욕하러 다니고 했거든요.

주공아파트, 지금 블루밍 안있습니까? 거기도 다 언덕받이 비슷한 그런 상태였어요. 도랑 건너에 집이 조금조금 있고 회원국민학교가 있었고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아래 미나리꽝 있는 그 언덕으로 집이 몇채씩 있었어요. 부분부분 조금 있고 또 논이 있고 그랬어요. 그때는 차가 없으니까 부림동으로 내려 가려면 마을 가운데 샛길을 지나서 모 심어놓은 논길을 지나서 걸어다녔거든요.

이 아래 북마산역에 가려고 하면 사선으로 질러가는 길로 다녔습니다. 구마산역 쪽으로 해서 공설운동장, 양덕 한일합섬으로 가려고 하면 문디고개라 하는 데가 있었는데 그 길로도 넘어 다니고 그랬어요.

거기도 약간 언덕받이처럼 그랬는데 온통 흙구덩이였어요. 산호동 학교 뒤로 그쪽으로는요.

- 여기 오셨을 때 주변에 작은 공장은 없었습니까?

= 엄청 못사는 동네였어요. 여기가 옛날에 산동네 아닙니까? 그러니까 큰 공장은 없었어요. 도랑 따라 내려가면 저쪽 건너편에 건빵 공장, 또 회원초등학교 쪽에는 장갑 짜는 공장 그런 잔잔한 공장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다양한 과자가 나오지만...

옛날에 뻥튀기 비슷한 과자 안있습니까? 그 만드는 공장이 언덕받이에 하나 있었습니다. 여기서 얼마 안올라갑니다. 무학농장 올라가는 길 쪽에 지금 형제상가 근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과자 공장이 있었어요.

거기 가면 과자를 많이 줬어요. 모양을 만들어서 튀기는 과자인데 그런 걸 사러 간 적이 있어요. 애들이 어릴 때니까 한 70년대 중반쯤 되겠네요.

- 그 당시에 무학농장이 아주 유명했지요?

= 그렇죠. 무학농장은 처음에 누가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는 한일합섬에서 인수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왔을 당시에는 무학농장 관리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당시는 참 좋았어요. 마산에서 유명한 유원지 아닙니까?

봄 되면 사람들이 여기 얼마나 많이 온지 모릅니다. 앵기밭골 하고 무학농장은 또 다릅니다. 위치가 약간 다르거든요. 무학농장은 성인들 술 먹고 노는 그런 위주고 앵지밭골은 초등학생 중학생 소풍 가는 장소로 많이 이용 됐어요.

그때 무학농장이 얼마나 많이 알아줬다고요. 마산시민이 진짜 다오다시피 했어요.

우리가 신마산에서 살았는데 걸어서라도 여기까지 왔어요. 봄 되면 꽃이 많이 피고... 봄 되면요. 여자 두어 명 모이면, 우리 무학농장에 치마 주워러 가자, 이럴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유명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자들이 술 먹고 놀다 보면 옷상태가 형편없이 되고 그렇거든요. 치마도 내팽겨치고 가버리고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온 겁니다. 그만큼 여기가 유명한 곳이었어요.

무학농장 옆으로 앵기밭골 쪽에는 젖소도 유명했어요.

- 옛날에는 이 앞 도랑에서 빨래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요. 그 송사리 같은 고기도 잡고 그랬어요. 물이 얼마나 깨끗했다고요.

70년대에 태어난 애들은 여기서 목욕 했어요. 우리 애들도 데리고 나가 씻기도 그랬거든요. 다라이에 담요 같은 거 들고 가서 밟아서 행구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수도물이 제대로 안들어 왔거든요. 우물도 안파져 있었거든요. 집 지었을 때 수도는 넣었는데 수도물이 잘 안나왔습니다. 격일제로 나왔거든요. 열두 시에 나올 때도 있고, 잠시잠시 주고 그랬거든요. 물이 없어 가지고 물 이로도 많이 댕기고 그랬어요. 온 동네 댕기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주로 도랑가에서 빨래를 씻었지요.

- 여기 도랑에는 샘이 없었습니까?

= 지금 위에 다리 있지요? 이 앞에 다리 말고 위에 다리, 그 바로 밑에서 물이 나왔어요. 얼마나 물 좋았다고요.

겨울에도 얼지않고요. 여자들은 거기 가서 빨래 씻고... 밤되면 저녁 묵고 설걷이 다 해 놓고, 아이들 다 그거 해 놓고 거기 가서 빨래 씻고 목욕하고 오고 그랬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 그럼 그 샘을 뭐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까?

= 물이 솟으니까 물난데라 그랬지요.

여자들은 우리 저 위에 목욕하러 가자, 하면서 여자들 혼자는 안가고요. 너는 씻으로 안갈래? 그랬어요. 다리 밑에 물이 송송송 났거든요.

거기서 내려오면 공동샘이 또하나 있었거든요. 옛날에 설훈 집 옆에 깊지는 안해도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 물을 이고오고 그랬어요.

지금 도랑 건너 미장원이 하나 있는데 그 미장원 뒤에 조그만 기와집이 있었고 그 앞에 설훈 집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집이 남아있을 겁니다.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하는 그 설훈입니다. 막내 동생 하고 마고 동기거든요. 이 집에도 놀러 오고 했어요.

또 이 밑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메워져 있어요. 그 우물은 얼마 안됐어요. 우리 집 굼티 있는 데로 나가면 대문에 키위나무 있는 집 그 안에 우물이 있었어요.

그 우물이 너무 좋았어요. 거기로 물 뜨러 가기도 하고 그랬죠. 옛날에는 조그만 터만 있으면 방을 지어서 남 세주고 그랬는데 그 구석에 샘이 있는데 참 물이 좋더라고요. 이 동네가 옛날에는 참 물 좋다 했는데 지금은 집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때만 해도 골짜기 아닙니까?

옛날에는 회원동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아이고 지금도 회원동 그 골짜기 사나? 이런 말을 했어요. 실제로 참 못사는 동네였어요. 택시도 안올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제사 모실려고 제사장을 봐서 택시 불러서 회원동 정자나무로 가자고 하면 택시를 딱 대다가도 가버립니다. 세 대쯤 보내야 택시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랬는데 이제는 서로 올라 합니다.

하하. 회원동 정자나무(아래 사진), 그 나무가 육백 년 됐다고 그러는데 그게 많이 알아줬거든요. 무학농장 가는 길 정자나무라 하면 알아줬거든요.

 

 

- 하나 더 여쭤 보겠습니다. 예전에 마포중학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마포중학교 알지요. 그 자리가 어디인가 하면 무학자이 있는 그 자리입니다. 마포중학교가 야간도 있었고 주간도 있었고 그랬는데... 그 주위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지요.

없어진지 오래됐는데 그래도 거기가 추억이 어린 곳이요. 우리 때는 마중이나 동중 이런 데는 시험을 치고 들어가야 하니까, 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 배운다고 마포중학교에 많이 다녔어요.

그런 얘기하면 눈물 흘리는 사람 많을거요. 참 못살아서... 먹을 것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배우겠다고 밤에도 오고... 신마산에서도 여기 오고 그랬어요.

- 그리고 혹시 이 공영주택 입주 당시 사진이라든지 옛날 이 동네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는지요?

= 그때는 카메라도 귀했어요. 애들 운동회 한다고 카메라 하나 빌리려고 해도 사진관에서도 잘 대여 안해줬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사진 남기고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사진 찾아봐 달라고 얘기하길래 지금 좀 찾아 보니까 옛날 사진이 몇장 있네요.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인데 한번 보십시오. 이 사진은 결혼 사진인데, 이 날이 1969년 12월 21일입니다. 성호초등학교 앞에 있던 청락예식장에서 식을 마치고 우리 집사람이 이 집으로 들어오는 사진입니다.

- 예. 사진 찍은 날짜가 분명하고 또 그 당시 주택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사진입니다. 앞으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계획대로 잘 추진되면 몇년 안에 새로 아파트가 들어설 것 아닙니까? 이 동네서 오래 사셨는데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이 동네 서른한 집 중에서 우리가 제일 오래됐어요. 이사도 안가고 지금까지 사는 집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내가 고향이 월영동 만날고개 올라가는 데 거깁니다. 큰 당산나무 밑 동네인데 거기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거기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이 동네서 늙어간다 아닙니까?

지금 이 사업이 빨리 되었으면 하는 게 시작한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기록해 두는 것은 참 좋은 겁니다. 왜냐하면 이걸 안해 두면 이 역사가 땅에 묻혀버리고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옛날에 이런이런 게 있었다는 이게 시의 역사거든요. 나도 마산시청에서 삼십몇 년 근무 했습니다. 청소과, 세무과, 공보실 안가본 데가 없습니다.

또 중앙동 동서기부터 시작해서 교방동, 회원2동, 월영1동, 서성동, 저 구산면 면서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역사를 밝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재개발이 잘 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하천이 깨끗해져서 빨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송사리 노는 거는 한번 봐야 안되겠습니까?

= 그리 될 날이 오겠지요.

- 오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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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환경운동가 박종권 선생(아래 사진)이 썼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이기도 한 박종권 선생은 7순을 바라봄에도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우리 는 앞에 와 있다. 대통령도 기후위기,..

이산화탄소의 위력

이 글은 환경운동가 박종권 선생(아래 사진)이 썼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이기도 한 박종권 선생은 7순을 바라봄에도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있다. 요즘 전 세계의 최대 화두는 기후위기 문제입니다. 바이..

기후변화와 언론

이 글은 환경운동가 박종권 선생(아래 사진)이 썼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이기도 한 박종권 선생은 7순을 바라봄에도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있다. &ldquo;새로운 기록이에요&rdquo; 그레타 툰베..

마산포 옛 모습

2020년 5월 6일 박영주 선생이 페이스북에 아래 글과 함께 마산포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소개했다. 출처는 &lsquo;東京大学学術機関リポジトリ https://repository.dl.itc.u-tokyo.ac.jp..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2021년 1월 19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950년대 설립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옛날 사진 속에서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7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10) "진짜 본토박이" ------------------------- 배○○ 1941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04-2 날짜 : 2015년 1월 1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

창원 민주화 역사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

이 글은 <문화뉴스> 노예진 기자의 2021년 3월 5일 기사입니다. 2월 28일 성황리에 막을 내리다 강제규 감독 &ldquo;코로나 이길 희망으로 기억되길&rdquo; 창원시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창작연극 &rsquo;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