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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23. 00:00

마산번창기(1908) - 1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를 포스팅한다.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이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 참자고 있던 이 책을 찾아냈고, 이를 창원시정연구원이 번역 출판하였다.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마산이 언급된 책은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책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일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산이라는 지역 사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추가된 셈이다. 번역서에 실린 ‘발간사’와 ‘마산번창기 해제’를 우선 소개한다.

 

 

발간사

지역의 역사와 문화전반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웃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자긍심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도시성장을 위한 지방자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2020년 12월, 지방자치법 정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창원시는 마침내 인구 100만 대도시에 걸맞은 ‘특례시’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창원, 마산, 진해의 3개 시가 통합한 지 10년 만에 얻게 된 소중한 결실로, 통합창원시를 감싸왔던 3분 4열의 원심력이 ‘셋(3)이 하나(1) 됨으로써 다섯의 총합으로 나타난다’는 3·15의 구심력 원리가 발현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창원시는 2022년 ‘창원특례시로서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됩니다. 따라서 ‘창원의 번창’을 위해 한 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 행진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여러 시민의 발걸음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봄, 창원시정연구원은 창원이 가진 고유성과 차별성을 찾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역사·문헌자료의 발굴 및 번역, 시민·전문가 연구 공모사업 등의 다양한 연구 활동을 맡을 창원학연구센터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2021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마산번창기(馬山繁昌記)』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마산을 다룬 문헌 중 가장 유명한 『마산항지(馬山港誌)』의 저자인 스와 부고츠(諏方武骨)가 1908년에 발행한 책으로, 전통적인 농어촌이었던 마산지역이 근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최초의 조사연구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한국의 근대식민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건설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인의 시각에서 근대 창원지역, 그 가운데 근대 마산사회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번창을 구가한 점은 뼈아프지만, 한국의 근대사가 안았던 숙명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며, 역사의 교훈을 절실하게 새기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산번창기』가 출간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제목 정도만 알 뿐 구할 수 없었던 귀한 자료를 찾아 내어주신 박영주 선생님, 자료가 지닌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알아보시고 창원학연구센터의 첫 과제로 제안하고 발간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도맡아 주신 한석태 초빙연구원과 송효진 센터장, 그리고 일본어와 우리말의 간격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매끄럽게 번역해주신 재일동포 하동길 선생님, 어떤 요청에도 흔쾌히 도와주신 문창문화연구원의 안용준 연구위원 및 한 면 한 면 정성으로 디자인과 편집을 맡아주신 불휘미디어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창원시정연구원과 창원학연구센터는 창원인에 의한 『창원번창기』가 나오길 기대하고, 창원의 언어, 역사, 지리, 풍속, 예술, 문화, 인물 등의 인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 정치, 경제, 행정 등 사회과학 분야와 도시, 조경, 건축, 교통, 물류 등의 지역 도시학 분야 등과 연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기반을 다져 나가며 창원인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2월

창원시정연구원장 전수식

 

마산번창기 해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과 경영은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창원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문헌자료를 번역하는 작업은 이 지역의 식민지화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데 필수적 과제이다. 창원의 근대사 연구에 선결해야 할 작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이른 시기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강력하게 받은, 일본제국의 식민도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식민도시 건설 당시 일본인의 시작에 의해 기록된 문헌자료의 검색과 정리는 지역의 근대사 연구에 있어 더 이상 미루어 둘 수 없는 일임은 자명하다.

『마산번창기』는 1908년(명치 41년)에 발간된 저작으로, 1902년(명치 35년) 『한국안내(韓國案內)』 속의 마산편에서 소개된 소략한 기사와는 달리 한 개인 기록자이자 연구가인 단행본 체재의 형식과 내용을 갖춘, 창원지역 중의 마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지리지이다. 동일 저자에 의해 보강된 1926년(대정 15년) 『마산항지(馬山港誌)』와 함께 근대 식민도시 마산을 조명하는 데 가장 비중이 크고 내용이 충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 스와 부고츠(諏方武骨)는 부친 고슈(翁洲)의 차남으로 태어나 부친의 영향으로 시문에 일찍이 눈을 떴다 한다.

부친은 아이즈와카마츠(會津若松)란 대번의 무가 출신으로 소년 시기 선발되어 에도에 가서 쇼헤고(昌平黌)에서 10년간 수학하고, 귀향한 후 일신관(日新館)의 교수가 되었다. 보신전쟁(戊辰戰爭)에 연루되어 참전했다가 지금의 후쿠시마 현인 아이즈번의 몰락을 보게 된다. 유폐의 고초를 겪은 후 와카마츠 현 양성학교장 겸 예과학과장, 후쿠시마 현 제3사범학교 학감을 역임하고 1888년(명치 21년)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台) 시에서 세이신기쥬쿠(聲振義塾) 관사숙을 열고 한문을 교수했다. 동북의 두 석학 중 일인으로 칭해졌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부친의 훈도에 따라 영문, 한문, 일문을 배우고 일찍이 지리 역사에 취미를 가졌다 한다. 몰락한 무산 계급이 대만과 조선으로 진출한 사례의 한 전형으로 저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도한하기 전 먼저 대만에서 일정 시간 주유한 뒤 모친을 히로시마(廣島)의 집에서 장사 치루었다. 오카야마(岡山) 출신의 보육원 교사이자 산파 자격증을 가진 부인과 혼인한 것도 이 시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인천에 도착한 다음, 마산에 온 것은 1906년(명치 39년) 3월이었다. 이 해 6월 하순부터 기록을 개시하여 1908년(명치 41년) 9월에 완성한 것이 바로 『마산번창기』이다.

명치 41년 12월 1일 발행일자의 저자 겸 발행자는 스와 부고츠(諏方武骨)란 본명을 밝히고 책의 서언에서는 거동노부(去洞老夫) 스와 쇼오센(諏方松仙)이란 아호와 필명을 사용한다. 별천지(洞天)를 찾는(去) 소나무 아래 신선(松仙) 이름과 사무라이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무골(武骨)이란 이름이 퍽 대조적이다.

후일 『마산항지』에서는 스와 시로(諏方史郞)란 이름을 사용하고 자신을 겸칭할 때는 국사(局史 ; 시로의 눈)라 하기도 하여 역사기록자임을 자임한다. 자신의 집필 공간을 하쿠엔보(白猿坊)라 하여 백수(白首)임을 은연중 드러내는 문사적 기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17년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마산항지』와 『경남사적명승담총(慶南史蹟名勝談叢)』이란 책을 상재하고 그 후 건강이 악화되어 병상에서 「경남사적보유」를 쓰다가 1927년(소화 2년) 2월 8일 타계하였다.

본 『번창기』는 연구자에게 실물을 제공하기 위해 원본을 그대로 후철하고 번역본을 전철하기로 한다. 원본에는 25쪽에 걸친 광고가 게재되어 있어 당시 마산의 사회경제상 일면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광고 연구자들에게 희소식일 것이다.

목차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언

제1장 마산의 대관

제2장 마산의 관공서

제3장 지질 및 기후

제4장 위생 및 의사

제5장 교육기관

제6장 신도 및 종교

제7장 교통

제8장 호구

제9장 경제사정

제10장 마산의 잡록, 여러 근황

마산의 노래

본문 109쪽, 전부(前付) 14쪽, 후부 14쪽으로 전체가 구성되어 있다.

2020년 여름,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 자문위원인 박영주(朴永周) 선생이 일본 내 대학도서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원본을, 출간한지 110여 년 만에 발굴하여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명치시대의 어문으로 난독의 저술인지라 재일동포 재야사학자이자 교토 소재 국제중고등학교 전 교장 하동길(河東吉) 선생께 번역을 의뢰하였고 쾌히 수락한 번역 작업에 박영주 선생이 각주를 달고 본인이 윤문과 해제를 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창원학연구센터가 기획하고 있는 창원지역 근대문헌자료 번역 작업의 첫 결과물로서 발간함을 밝혀두고자 한다.

2021년 2월 18일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 초빙연구원 한석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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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5. 07:02

마산포 옛 모습

2020년 5월 6일 박영주 선생이 페이스북에 아래 글과 함께 마산포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소개했다. 출처는 ‘東京大学学術機関リポジトリ https://repository.dl.itc.u-tokyo.ac.jp/라고 밝혔다. 희귀한 자료다.

 

 

바다는 고요하다.

작은 고깃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 논밭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120년 전.

1901년 1월 마산포 앞바다의 모습.

조랑말 4마리와 대원 6명으로 답사대를 꾸려 1900~1901년, 1901~1902년 두 번의 겨울에 걸쳐 266일간 한반도를 답사하며 지질조사를 했던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郎).

이 사진은 그가 1901년 1월 24일 부산을 출발하여 김해, 창원을 거쳐 1월 말경 마산포에 도착했을 때의 것이다. 사진을 보면 용마산에서 남쪽 바다를 보고 찍은 걸 알 수 있다.

하천 끝자락이 바다로 삐죽이 튀어나온 곳은 오동동다리 아래 쪽이고 해안을 따라 경사진 논밭은 산호동 일대이다.

오른쪽으로 돛섬이 보이고 바다 건너편의 삼귀 해안도 그렇고 인공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옛 해안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은 고토의 논문 조선산맥론(An Orogrphic Sketch of Korea. 1903)의 말미에 수록된 9장 중 하나로 여기에는 금강산, 대관령, 개마고원, 제물포, 은봉 등의 사진도 같이 실려있다.

조선기행록(Jouneys through Korea, 손일 옮김, 푸른길, 2010)에서 번역자가 "조선산맥론의 원본을 구하지 못해 9매의 사진을 실을 수 없어 아쉽다"고 한 바로 그 사진 중의 하나다.

그런데 최근에 자료를 찾다가 이 논문의 스캔본을 보게 됐는데 뜻밖에 이 사진이 있었다. 논문의 도판에 수록된 것은 남해 다도해의 해안선 굴곡의 성인을 설명하는 자신의 산맥이론의 전형적인 예로서 만입이 깊은 마산포와 진해만을 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은 크기가 작은데다 상태가 좋진 않지만 마산포의 당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어릴 때부터 배웠던 고토분지로의 산맥론은 산경표와 백두대간으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의 지리 관념과 오래 전부터 충돌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는 별개로 우리 지역과 연관된 그의 이론이 있어 언급해 둘까 한다. 마산 창원지역뿐 아니라 부산, 경주 등 경상분지에 널리 분포하는 특정의 화강암을 마산암(馬山岩)이라 이름 붙였고 이는 지금도 학술용어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는 또 마산포 북쪽에서 시작해 낙동강 동안을 따라 칠곡, 비안으로 향하는 산맥을 '마산포산맥'으로 이름짓기도 했지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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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시티 2021.04.24 19:01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시의 창원이나 김해 사진은 없겠죠 ㅎㅋ. 아쉽습니다.

    • 허정도 2021.04.24 21:11 address edit & del

      찾아보면 당연히 있겠죠.

2021. 3. 29. 00:00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2021년 1월 19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950년대 설립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의 1960년대 초반의 졸업앨범 한 권을 (자료수집용으로) 샀다. 앨범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해서 보니 '노동의원'이라고 세로로 쓴 한글 간판이 선명하다. (표시 부분)

 

 

노동의원!

중앙동 1가에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궁금해했었던 바로 그 '마산노동병원'인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1962년 5월 16일, '5.16혁명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으로 위치는 현재의 통술거리 일대이다.

이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기념식이 펼쳐졌는데 마산에서도 중앙부두 앞 광장에 학생과 공무원, 시민 등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신마산 일대를 돌아 마산시청 앞에 설치된 사열대 앞을 지나 구마산 방면으로 군대식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이 학생 브라스밴드를 앞세워 저 '노동의원' 앞을 지나갈 때 그 병원의 실질적 설립자인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당시 마산노동병원, 노동병원, 노동의원 등으로 불리던 이 병원은 마산부두노조에서 1957년에 부설 기관으로 설립한 병원이었다.

당시 부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각종 재해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대두되었고 마산부두노조에서는 이미 1954년부터 설립을 추진했지만 당시 여건상 쉽지 않았다.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지역 내 의사들의 동참과 각계의 후원과 협조를 끌어내 1957년 8월 노동병원의 개원을 실현하게 된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마산노동병원은 조합원과 그 가족, 영세시민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명의 의사들이 당번을 맡아 진료하고 치료비는 최저 실비만 받았다.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 설립은 일제강점기부터 추진되었는데 특히 1928년 설립된 원산노동병원이 유명했다.

마산에서도 병원 설립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보건 향상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1923년 마산노농동우회는 '무산계급'을 위해 삼성의원 학산의원 등 5개 의원을 섭외하여 이들 병원에서는 노동자에게 무료 진찰을 해주고 약값은 반으로 할인해 주게 하였다.

또 1930년 마산자유노동조합에서는 시내 6개 의원과 교섭하여 극빈 조합원들에게 무료치료권을 배부하여 화류병을 제외한 병의 무료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해방 이후 마산노동병원이 설립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목포, 화순, 대전, 부산 등지에도 노동병원이 세워졌다. 한편 마산부두노조에서는 노동자 결핵요양소 설치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추진에 나서기도 했다.

마산노동병원의 운영은 매우 어려웠다. 노현섭 위원장은 "우리(노동자)의 병원은 우리(노조)의 힘으로 세워야 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임의사를 확보하기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시내 의사들의 희생적인 협조로 근근이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설립된 지 채 4년이 지나지 않은 1961년 5.16쿠데타 이틀 뒤 노현섭은 육군 방첩대에 전격 체포되었다.

노현섭은 마산부두노조 위원장으로서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섰을 뿐 아니라 마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마산씨름협회 회장을 맡는 등 지역사회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4월혁명 후에는 교원노조 활동을 지원하고 '양민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학살자유족회를 이끌고 있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혁신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노현섭은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5년의 중형을 언도받게 된다.

마산노동병원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노현섭 위원장의 수감 이후 병원은 운영난으로 인건비 염출에도 애로를 겪게 된다.

마산부두노조는 노동병원의 시설을 확충하고 사단법인화를 통해 운영난을 타개하려고 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원장이 바뀌면서 병원은 이어져 갔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 말 이후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모른다. 더 자료를 찾아보고 해야 하지만... 누군가 마산노동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마산노동병원은 노동자와 노동단체의 힘으로 의료인과 연대해 노동복지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흔치 않은 사례이다.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극빈 노무자'들의 '의료후생'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소중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 혹시 노현섭 선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그의 평전인 "불세출의 혁명가 소담 노현섭"(홍중조 이상용 저, 2016.)을 보시길 바람.

추가 ; 아래 사진은 마산일보 1965년 10월 29일자 3면에 실린 '노동병원을 확장-보사부장관 지정으로' 기사에 실린 것입니다. 위 박영주 선생이 발견한 사진과  '노동의원'이라는 간판이 똑 같습니다. 두 사진과 주변 건물들을 보면 병원 위치는 현재의 '홍시통술(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1가 11-1)'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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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1. 00:00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마산번창기 표지>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통, 호구, 경제사정, 마산잡록잡황, 마산의 노래 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안내서 성격이다.

1900년대의 마산에 대한 일본 문헌으로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 여러 문헌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자료가 처음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번창해 가는 新市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일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또 近刊 書目으로 馬山開港十年史, 馬山名所舊跡誌, 馬山裏面 세 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보여지는 諏方武骨은 1906년경부터 마산에 정착한 이후 1915년에 朝鮮史談会란 단체를 만들고 朝鮮史談이란 잡지도 내며 활동하다가 1926년에 馬山港誌를 출판했다.

근간할 예정이었던 책들은 아마도 출판되지 못했고 아마도 馬山港誌에 수렴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다음 해에 慶南史蹟名勝談叢이 그의 유고집으로 나왔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산이라는 지역 사회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추가된 셈이다. 

 

<마산번창기 광고면에 실린 현 월남동 3가에 자리한 인풍당약국과 자산동의 한국요리점 융월. 융월의 광고에는 두 기생의 사진과 함께 하단에 명월, 월선 등 기생 이름을 공개해 놓았다>

 

위의 글을 4월 6일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가 기사화 했다. 기사 제목은 「개항기 풍경 담은 〈마산번창기〉 발견」.

이 책의 광고 면에는 당시 마산의 약식 지도 외에 약, 요리, 잡화, 여관, 은행, 병원, 신문, 주조, 정미소, 인쇄, 수산회사, 법률사무소, 목재상, 사진관, 산파, 미곡, 담배 등의 업체를 소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통영의 산업에 대한 광고이다. 통영의 어시장, 여관, 잡화점, 선박회사, 요리점, 약국 등도 이 책 광고 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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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번창기(1908) - 4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2 ■ 각국 거류지(各國 居留地) 월영동의 일부와 신월동 일부를 쪼개서 이루어진 해변의 신시가(新市街)이며 마산이사청 관내의 중심인 곳이다. 1898년(명치 31년) 2월 21일부 칙재(勅裁)로 개..

마산번창기(1908) - 3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1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밝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

마산번창기(1908) - 2

서언 마산의 진상(眞相)을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으로 세상에 알리는 일은 오직 스와교도(諏方去洞) 씨가 편찬한 『마산번창기』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시찰이나 관광 명목으로 수많이 관민에 의한 수기가 잡지, 신문 등에 기술되었건..

마산번창기(1908) - 1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를 포스팅한다.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이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 참자고 있던 이 책을 찾아냈고, 이를 창원시정연구원이 번역 출판하였다.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4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lsquo;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rsquo;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3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lsquo;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rsquo;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2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lsquo;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rsquo;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1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lsquo;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rsquo;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lsquo;선진국에서는...&rsquo; &lsquo;우리도 선진국이 되어야...&rsquo; 등 등 , 오랜 세월 얼마나 들먹이며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선&middot;진&middot;국 7월 2일 UNCTAD(유엔무역개..

마산 인공섬(해양신도시)을 에너지자립섬으로

이 글은 최근 경남지역의 세 NGO에서 창원시에 공개적으로 제출한 요청서입니다. 창원시가 개발업체를 공모 중인 마산 앞바다의 인공섬(해양신도시)을 에너지 자립섬으로 만들자는 내용입니다. 마산 인공섬을 에너지자립섬으로 개발 요청..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가치를 논하다

마산YMCA 제22회 시민논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에 현존하는 옛 전기회사 지점장 건물의 보전 문제를 두고 지난 3월 12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가 심의한 뒤 그 가치를 인정해 &lsquo;창원시 ..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마산YMCA 제89회 아침논단 이번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는 창원대학교 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준비한 이번 강연은 유물과 유적으로 창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장 중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호남 5대 명산 천관산 탐방 산행기-2

-2021년 5월 28일&sim;29일(금&sim;토, 1박2일) / 이 글은 참가자 중 손상락 선생이 썼다. 2일차 아침은 그 유명한 라면으로 집단 급식을 한 후 8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8시 25분경 천관산 입구에 도착했다...

호남 5대 명산 천관산 탐방 산행기-1

-2021년 5월 28일&sim;29일(금&sim;토, 1박2일) / 이 글은 참가자 중 손상락 선생이 썼다. 학봉산악회는 창립 12주년을 기념하는 100산 탐방 프로그램 일환으로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장흥군이 자랑하는 천관..

Building the Housing of the Future - 4

2019년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 Inc. / BCG)에서 미래주거를 주제로 &lsquo;Building the Housing of the Future&rsquo;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