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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5. 07:02

마산포 옛 모습

2020년 5월 6일 박영주 선생이 페이스북에 아래 글과 함께 마산포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소개했다. 출처는 ‘東京大学学術機関リポジトリ https://repository.dl.itc.u-tokyo.ac.jp/라고 밝혔다. 희귀한 자료다.

 

 

바다는 고요하다.

작은 고깃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 논밭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120년 전.

1901년 1월 마산포 앞바다의 모습.

조랑말 4마리와 대원 6명으로 답사대를 꾸려 1900~1901년, 1901~1902년 두 번의 겨울에 걸쳐 266일간 한반도를 답사하며 지질조사를 했던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郎).

이 사진은 그가 1901년 1월 24일 부산을 출발하여 김해, 창원을 거쳐 1월 말경 마산포에 도착했을 때의 것이다. 사진을 보면 용마산에서 남쪽 바다를 보고 찍은 걸 알 수 있다.

하천 끝자락이 바다로 삐죽이 튀어나온 곳은 오동동다리 아래 쪽이고 해안을 따라 경사진 논밭은 산호동 일대이다.

오른쪽으로 돛섬이 보이고 바다 건너편의 삼귀 해안도 그렇고 인공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옛 해안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은 고토의 논문 조선산맥론(An Orogrphic Sketch of Korea. 1903)의 말미에 수록된 9장 중 하나로 여기에는 금강산, 대관령, 개마고원, 제물포, 은봉 등의 사진도 같이 실려있다.

조선기행록(Jouneys through Korea, 손일 옮김, 푸른길, 2010)에서 번역자가 "조선산맥론의 원본을 구하지 못해 9매의 사진을 실을 수 없어 아쉽다"고 한 바로 그 사진 중의 하나다.

그런데 최근에 자료를 찾다가 이 논문의 스캔본을 보게 됐는데 뜻밖에 이 사진이 있었다. 논문의 도판에 수록된 것은 남해 다도해의 해안선 굴곡의 성인을 설명하는 자신의 산맥이론의 전형적인 예로서 만입이 깊은 마산포와 진해만을 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은 크기가 작은데다 상태가 좋진 않지만 마산포의 당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어릴 때부터 배웠던 고토분지로의 산맥론은 산경표와 백두대간으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의 지리 관념과 오래 전부터 충돌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는 별개로 우리 지역과 연관된 그의 이론이 있어 언급해 둘까 한다. 마산 창원지역뿐 아니라 부산, 경주 등 경상분지에 널리 분포하는 특정의 화강암을 마산암(馬山岩)이라 이름 붙였고 이는 지금도 학술용어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는 또 마산포 북쪽에서 시작해 낙동강 동안을 따라 칠곡, 비안으로 향하는 산맥을 '마산포산맥'으로 이름짓기도 했지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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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시티 2021.04.24 19:01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시의 창원이나 김해 사진은 없겠죠 ㅎㅋ. 아쉽습니다.

    • 허정도 2021.04.24 21:11 address edit & del

      찾아보면 당연히 있겠죠.

2021. 3. 29. 00:00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2021년 1월 19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950년대 설립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의 1960년대 초반의 졸업앨범 한 권을 (자료수집용으로) 샀다. 앨범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해서 보니 '노동의원'이라고 세로로 쓴 한글 간판이 선명하다. (표시 부분)

 

 

노동의원!

중앙동 1가에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궁금해했었던 바로 그 '마산노동병원'인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1962년 5월 16일, '5.16혁명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으로 위치는 현재의 통술거리 일대이다.

이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기념식이 펼쳐졌는데 마산에서도 중앙부두 앞 광장에 학생과 공무원, 시민 등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신마산 일대를 돌아 마산시청 앞에 설치된 사열대 앞을 지나 구마산 방면으로 군대식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이 학생 브라스밴드를 앞세워 저 '노동의원' 앞을 지나갈 때 그 병원의 실질적 설립자인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당시 마산노동병원, 노동병원, 노동의원 등으로 불리던 이 병원은 마산부두노조에서 1957년에 부설 기관으로 설립한 병원이었다.

당시 부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각종 재해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대두되었고 마산부두노조에서는 이미 1954년부터 설립을 추진했지만 당시 여건상 쉽지 않았다.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지역 내 의사들의 동참과 각계의 후원과 협조를 끌어내 1957년 8월 노동병원의 개원을 실현하게 된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마산노동병원은 조합원과 그 가족, 영세시민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명의 의사들이 당번을 맡아 진료하고 치료비는 최저 실비만 받았다.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 설립은 일제강점기부터 추진되었는데 특히 1928년 설립된 원산노동병원이 유명했다.

마산에서도 병원 설립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보건 향상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1923년 마산노농동우회는 '무산계급'을 위해 삼성의원 학산의원 등 5개 의원을 섭외하여 이들 병원에서는 노동자에게 무료 진찰을 해주고 약값은 반으로 할인해 주게 하였다.

또 1930년 마산자유노동조합에서는 시내 6개 의원과 교섭하여 극빈 조합원들에게 무료치료권을 배부하여 화류병을 제외한 병의 무료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해방 이후 마산노동병원이 설립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목포, 화순, 대전, 부산 등지에도 노동병원이 세워졌다. 한편 마산부두노조에서는 노동자 결핵요양소 설치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추진에 나서기도 했다.

마산노동병원의 운영은 매우 어려웠다. 노현섭 위원장은 "우리(노동자)의 병원은 우리(노조)의 힘으로 세워야 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임의사를 확보하기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시내 의사들의 희생적인 협조로 근근이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설립된 지 채 4년이 지나지 않은 1961년 5.16쿠데타 이틀 뒤 노현섭은 육군 방첩대에 전격 체포되었다.

노현섭은 마산부두노조 위원장으로서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섰을 뿐 아니라 마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마산씨름협회 회장을 맡는 등 지역사회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4월혁명 후에는 교원노조 활동을 지원하고 '양민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학살자유족회를 이끌고 있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혁신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노현섭은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5년의 중형을 언도받게 된다.

마산노동병원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노현섭 위원장의 수감 이후 병원은 운영난으로 인건비 염출에도 애로를 겪게 된다.

마산부두노조는 노동병원의 시설을 확충하고 사단법인화를 통해 운영난을 타개하려고 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원장이 바뀌면서 병원은 이어져 갔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 말 이후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모른다. 더 자료를 찾아보고 해야 하지만... 누군가 마산노동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마산노동병원은 노동자와 노동단체의 힘으로 의료인과 연대해 노동복지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흔치 않은 사례이다.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극빈 노무자'들의 '의료후생'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소중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 혹시 노현섭 선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그의 평전인 "불세출의 혁명가 소담 노현섭"(홍중조 이상용 저, 2016.)을 보시길 바람.

추가 ; 아래 사진은 마산일보 1965년 10월 29일자 3면에 실린 '노동병원을 확장-보사부장관 지정으로' 기사에 실린 것입니다. 위 박영주 선생이 발견한 사진과  '노동의원'이라는 간판이 똑 같습니다. 두 사진과 주변 건물들을 보면 병원 위치는 현재의 '홍시통술(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1가 11-1)'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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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1. 00:00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마산번창기 표지>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통, 호구, 경제사정, 마산잡록잡황, 마산의 노래 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안내서 성격이다.

1900년대의 마산에 대한 일본 문헌으로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 여러 문헌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자료가 처음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번창해 가는 新市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일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또 近刊 書目으로 馬山開港十年史, 馬山名所舊跡誌, 馬山裏面 세 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보여지는 諏方武骨은 1906년경부터 마산에 정착한 이후 1915년에 朝鮮史談会란 단체를 만들고 朝鮮史談이란 잡지도 내며 활동하다가 1926년에 馬山港誌를 출판했다.

근간할 예정이었던 책들은 아마도 출판되지 못했고 아마도 馬山港誌에 수렴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다음 해에 慶南史蹟名勝談叢이 그의 유고집으로 나왔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산이라는 지역 사회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추가된 셈이다. 

 

<마산번창기 광고면에 실린 현 월남동 3가에 자리한 인풍당약국과 자산동의 한국요리점 융월. 융월의 광고에는 두 기생의 사진과 함께 하단에 명월, 월선 등 기생 이름을 공개해 놓았다>

 

위의 글을 4월 6일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가 기사화 했다. 기사 제목은 「개항기 풍경 담은 〈마산번창기〉 발견」.

이 책의 광고 면에는 당시 마산의 약식 지도 외에 약, 요리, 잡화, 여관, 은행, 병원, 신문, 주조, 정미소, 인쇄, 수산회사, 법률사무소, 목재상, 사진관, 산파, 미곡, 담배 등의 업체를 소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통영의 산업에 대한 광고이다. 통영의 어시장, 여관, 잡화점, 선박회사, 요리점, 약국 등도 이 책 광고 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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