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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산역4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대 토박이들이 ‘비치거리계’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노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재건약국 옆쪽에 비석이 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없어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창원군 내서면장을 지냈던 진봉계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 구름다리 구 북마산역 광장에서 교원동 쪽으로 임항선 철로 위에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육교로 구름다리, 북마산 구름교로 불리고 있다. 1971년경에 세워진 길이 28.8m 폭 3.0m의 강재슬라브 다.. 2020. 10. 26.
김형윤의 <마산야화> - 84. 105인 사건의 후환, 85. 역장의 폭행 84. 105인 사건의 후환 마산원동회사가 발족하기 훨씬 오래전, 초대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가 북한을 초도 순시할 때의 일이다. 조선인 지사(志士)를 탄압하기 위해 조만식 등 1백 수십 명을 타진하고 사내(寺內)암살 음모라는 모략을 조작했다. 이것을 트집하여 지방에 산재한 열혈지사(熱血志士)까지 마수가 뻗쳐졌던 것이다. 원동회사 사옥 자리에서 학부(대한제국 문교부) 편찬교과서를 판매하던 김지관(서울 출신)에게 뜻하지 않던 한 장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발행국 소인은 불명한 것이나 내용을 약기(略記)하면 ‘3년 전에 우리의 원수이며 한국민의 대적인 이등박문을 안중근 의사가 죽였으니 이번엔 사내(寺內)라는 흉적을 처치해야 안되겠냐? 이 글월을 받는 즉시 때를 잃지 말고 거사준비를 하라!’ 이 글을 본 .. 2016. 4. 11.
김형윤의 <마산야화> - 21. 간판칠갑의 사무소, 22. 철도 이야기 21. 간판칠갑의 사무소 마산에 간판 많기로 이름난 점포는 신마산 함흥집 자리의 석견옥(石見屋)이라는 신약 도매상이었다. 간판을 보면 대학목약(大學目藥), 미안수(美顔水) 하루나, 대전위약(大田胃藥) 등을 비롯하여 장방형의 작은 간판이 20여 개나 되었는데, 제내과(諸內科) 자리 건너편 3층 건물로 신축 이전 후에는 없어졌고, 본래 점포에는 ‘고마야’라는 상호의 오복점(吳服店)이 들어 앉았다. 몇해 후에는 민의소 건너편에, 즉 지금의 중앙병원 자리에 노농동우회(勞農同友會)와 조선일보 지국이 자리잡고 난 뒤로는 대소 간판이 십 수개가 붙었는데 기억되는 명칭은 다음과 같다. 노농문고(서적 대부분이 ML당원 김형두의 장서), 무산자신문(日共의 佐野學 主宰), 민중신문(일본의 赤松克磨 주간), 혜성사진(彗星社進.. 2015. 6. 8.
새단장한 구름다리가 달갑지 않은 이유 옛 북마산역 자리의 구름다리가 새단장을 하고 있다. 계단과 육교상판에 합성목재를 덧대고, 기존 철재난간도 모두 잘라내어 합성목재로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래보다 한결 깔끔해졌다. 하지만 나는 새단장한 모습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소중히 숨겨두고 간혹 꺼내보는 무언가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나에게 이 구름다리는 어쩌다 한번씩 건널때마다 아련한 옛추억을 떠올려주는 고마운 장치 중의 하나였다. 그 추억은 철길로 인해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다리'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수없이 지나간 사람들의 발길에 닳고 닳아 자갈이 도드라진 계단판과, 시대를 반영해 다양한 구호가 써 있던 녹슨 아치와, 기성품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손길이 담긴 허술한듯 정직한 철재난간 따위에서 온.. 2010.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