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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24.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5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아파트의 기원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집중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도시로의 인구집중과 그에 따른 주택난이 토지의 입체적 이용, 즉 공동주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파트였다.

형식은 집단주거였지만 이념적으로는 19세기 서구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라는 이상주의의 산물이었다.

 

<한국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서울 마포아파트(1962~1964)>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의 아파트는 전쟁 때 가족과 함께 들어온 주한미군을 위한 것이거나 그 외의 것은 극히 소규모였다.

따라서 국내 최초의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60년대 초에 건설된 위 그림의 서울 마포아파트를 든다. 13평 내외의 저소득층을 위한 서민용 주택이었다.

196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도시의 주거수요에 비해 택지와 주택이 턱 없이 부족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아파트이다.

60년대 말, 대한주택공사가 한강변에 중대형(25-55)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맨션아파트라는 신종어가 생겼다.

대한주택공사는 이 아파트를 공급한 후 국영기업이 부자를 위한 주택을 짓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구조는 칸막이벽의 이동이 가능한 라멘 구조였고 난방시설은 중앙집중식이었다. 프로판가스가 들어갔으며 옥상에는 TV 안테나가 설치되었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의 반포지구와 잠실지구 대단지였다.

핵가족 시대 이전이어서 각 방의 넓이보다 방의 개수가 많아야 했던 시절이어서 최하 3.5방까지 있었다. 아파트 공급 초기였기 때문에 특정한 유형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이 나타난 시기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 경남에서도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영리를 목적한 민간기업의 아파트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형 단지개발 보다는 기존 택지와 산업용지에 재개발 형식으로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 들어 아파트는 질적인 변화를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유형들이 나타났지만 방의 수를 늘이기 위한 좁은 방이 사라지고 평면구조는 거실을 중심으로 각 실들이 둘러싸는 유형이 대종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의 평면구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면적은 1980년대 들어 대부분 국민주택 규모인 85가 대종을 이루었다.

외부에서 볼 때 아파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거동 형식이다. 아파트는 단위주거들이 모여서 하나의 주거 집합을 이루기 때문에 각 세대들이 결합방식이 전체 집합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단위주거가 조합되는 방식에 따라 주거동 내부에서의 상호관계가 성립되면, 주거동이 모이는 방식에 따라 단지의 특성이 규정되어 진다. 주거동의 구성은 각각의 단위세대가 모여 하나의 집합을 이루며 가장 기본적인 상호관계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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