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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4.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3 / 1954년 4월 16일 (금)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3

 

산협의 좁은 비렁(‘벼랑’의 방언)을 얼마쯤 나가니, 간데 마다 산은 백구질을 하여 황토만 노출(露出)한 독산인데 이 산 중복(中腹)쯤 되는 곳에 선생의 백골(白骨)이 묻혀있는 허물어진 분묘가 눈에 뜨이고 조금 아래 양지쪽에 두 봉(封)의 묘소가 있는데 이곳은 선생의 선친 선영이다.

노(老) 미망인은 여기서 시부모와 부군을 추억하는 듯 몇 개의 풀을 뽑고 있었다.

선생의 봉분 아래는 산이 급각도로 수직하며 묘소 정면은 협소하여 성묘하기에도 부자유하다.

선생이 지하에든지 봄바람 가을달이 몇 번이나 지났건만 찾는 사람 별로 없고 유족생계가 화급하여 그랬는지 봉축은 허물어져 황폐 그대로 이고 한 조각 표석조차 없으니 마음 없는 초동이야 지하의 고인이 어찌 누구인줄 알까보냐.

일행의 단심으로 묘전에 간단한 요핵(核)을 차려놓고 추념의 제를 지내게 되었으니 제문의 애절함에 전배자는 물론 유족의 단장애(斷腸哀)는 어느 누가 알아주랴.

오십 반평생 제물(祭物) 앞이나 무덤 앞에 절해본 일이 없는 기자가 뜻밖에도 이 날 제주(祭主)라는 직위로 초헌(初獻)을 올리고 절을 하게 된 것도 비망록에 기록하여 둘 일이다.

이어서 일행의 대표로 이(李) 마산시장이 아헌(亞獻), 다음으로 이 씨 문중 취객으로 허 금조(금융조합)이사의 순으로 정성껏 잔 들어 올리고 일동이 함께 재배하니 일행 중 백발이 휘날리는 윤치왕 군의학교 교장, 전 마산여고 교장 권영운 씨, 김형철 삼성병원장 등 삼노(三老)가 이날 특이한 채색(彩色)과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성어린 추모의 제를 마치고 일행은 고인의 선영 앞 장방형으로 된 석축 위의 잔디에서 파제(罷祭) 제물을 벌려놓고 고인의 불타는 애국정신과 그 업적에 경탄과 찬양(讚揚)의 꽃을 피웠다.

아울러 허물어진 봉분의 수축, 유족의 생활대책 문제가 화제에 올라 즉석에서 선열의 기념사업 추진 발기인으로 권영운 김상용 양씨 외 기자 3명이 지명을 받고 단시일 내에 이 사업의 구체안을 구상하여 유종의 결실을 보도록 하였다.

각설(却說), 이교재 선생은 어떠한 경로를 밟고 어떠한 결과를 맺었는가 우선 윤곽만을 소개하고 상보(詳報)는 기념사업추위에 있을 것을 믿고 미루어 두기로 한다.

선생은 1919 독립운동이 전국 우내(宇內, 온 세계)에 창일하였을 때 감연(敢然)히 상해로 망명하여 당시 대한임시정부의 동지와 규합하고 굳은 결심과 사(死) 서(誓)하고(죽음을 맹세하고) 중대 밀명을 띈 밀사로 국내에 잠입 활약하였다함은 이미 소개한 바이나

국내 험의(험疑, ?) 처음 군자금 징모 사건으로 지명 수배되어 동지 이병수씨(현존)와 통영 마산 진주 방면으로 전전 피신하던 중 김도산 일행의 신파연극을 변장 관람 중 동(同) 고향인 오서리 출신 이만갑이라는 진주서 고등형사(부장)에게 발각 피검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었으며 종시(終始) 일관(一貫) 굳게 입을 다물고 자백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치장 혹은 감방에서도 다만 동지들에게 「수구여병(守口如甁)」의 구호로써 동지들을 경고 하였다고한다.

5년 언도 후 공소심에서 3년형을 마치고 출옥 즉시 초지일관 백절불굴 조국광복의 열혈은 촌흐(寸?)도 냉(冷, 식다)함이 없이 상해 임정과 더욱 긴밀한 연락을 하다가 다시 혈고서파부(血告書播付, ?)사건이 발각되어 부산형무소에서 2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일차 피검당시 전신 타박의 어혈병과 야만적 생식기 고문 여독의 화로 드디어 사십구 세를 일기로 열혈 심장의 고동도 장한을 품은 채 옥중에 정돈(停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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