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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김형윤의 <삼진기행> 8 / 1954년 4월 22일 (목)

by 운무허정도 2019. 12. 9.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2

 

논둑 받아(?) 둑아 날 살리라 심의중(沈宜中)이 불콩이 날 죽인다!

이것은 누구의 창작인지 미상이나 지금도 산야엘 가면 나물 캐는 촌새악씨나 나무하는 목동이나 또는 소먹이는 어린 목동의 애절한 목소리와 가련한 입에서 구(舊)아리랑 곡으로 처량히 흘러내리는 민요라 한다.

이 민요는 누가 들어도 직해(直解)할 수 있는 것이니 삼진부락민이 기미년 독립운동 당시 헌병분견소를 습격하러 진주(進駐)하여 가는 도중 황교교각에서 잠복하였던 일인 헌병과 협력한 보조헌병 심의중이라는 악도가 있었는데 일본헌병이 처음에는 공포(空砲)로 위협하고 일보 더 접근되자 적두(赤豆)로 유인하여 사정 내에 애국용사가 돌입하였을 때 최선두에서 제1발을 쏜 자가 심의중이라는 자라고 한다.

적탄은 간발도 없이 난사되었으나 맨주먹과 곤봉만 휘두르던 앞선 용사는 쓰러지고 용사의 시체를 넘어 다시 돌진하던 동지도 일보 더 전진하지 못하고 또한 비참하게도 전사의 시체 위에 쓰러져 열렬한 애국청년의 선혈은 대지에 물들었으니 김수동 김호현 고묘주 변갑석 김영환 홍두익 변상복 이기봉 씨 등이 즉 8열사들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서 이교재 선생이나 이들 팔열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초개에 파묻혀 있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이분들 대개가 순박한 농민이며 기이한 운명을 약속한 것 같이 순국 후 겨우 무덤에 벌초 정도나 해줄 양자들이 대부분이니 일가친척들인들 백사지(白沙地)같은 세도인심(世道人心)이라 오비(吾鼻)도 수삼 척에 순사(殉死)한 이들에게 마음만으로 어찌할 것인가?

일정시대에는 친일파와 밀정이 횡행하므로 자기신변이 위태로워 도와주지 못했고 8·15 후는 유상무상(有象無象)의 군맹(群盲)이 매관매직과 모리(牟利)에 분망하였으니 사욕에 실명한 자들이 이해득실이 없는 남의 일에 관심될 리가 만무하다.

총탄과 백인(白刃)에 몸은 사력(砂礫)에 폭쇄되어 지하삼 척(尺)에서 묵묵히 묻혀있고 혼백은 백학을 타고 구만리 장천으로 등(登)히 선(仙)하였으나 허구한 세월에도 시냇물은 유유자류(悠悠自流)하며 산용(山容)은 의구하니 팔열사의 고전장(古戰場)에 오고가는 나그네가 뉘라서 발을 멈추리요?

삼진방면의 애국열사가 사파(沙婆)를 떠난 지 근 사십년. 생시에는 조국광복에 일편적심이요, 몰(歿) 후에는 호국의 충혼이 되었으나 사자(死者) 이미 입을 굳게 닫았으니 은수(恩讐, 은혜와 원한) 가 누구인가 알 길이 바이없다.

이화(李華)의 글을 차용하면

鳥無聲兮山寂寂(조무성혜산적적 : 새들은 우짖지 않고 산은 고요하다)

夜正長兮風淅淅(야정장혜풍석석 : 밤은 참으로 긴데 바람 소리만 쓸쓸히 들린다)

魂魄結兮天沈沈(혼백결혜천침침 : 혼백이 서로 엉키어 하늘은 자욱하고)

鬼神聚兮雲冪冪(귀신취혜운멱멱 : 귀신이 모여들어 구름이 뒤덮인다)

日光寒兮草短(일광한혜초단 : 햇빛이 차가우니 풀조차 자라지 않고)

月色苦兮霜白(월색고혜상백 : 달빛은 처량한데 서리가 하얗다)

傷心慘目(상심참목 : 상처난 마음 처참한 눈이)

有如是耶(유여시야 : 이와 같은 곳이 또 있을까)

-(중략)

布奠傾觴(포전경상 : 마침내 제사상을 차려 술판에 술을 붓고)

哭望天涯(곡망천애 : 통곡하면서 하늘 끝을 바라보니)

天地爲愁(천지위수 : 하늘도 땅도 그를 위해 슬퍼하고)

草木凄悲(초목처비 : 초목도 처량하고 비통해 한다)

弔祭不至(조제불지 :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가 지극하지 않으면)

精魂無(본문은 何)依(정혼무의 : 혼령도 의탁할 곳이 없으리니)

-(하략)

실로 혼신을 울리던 8열사의 장렬한 최후. 공민(公民)된 자 누가 머리를 숙이지 않을 소냐?

누가 그 공적을 그대로 방치하고 묵살할 것인가?

그들 유족은 거의 산지사방(散之四方)하여 실낱같은 로명(露命, 이슬처럼 덧없는 목숨)을 겨우겨우 이어간다는 풍문만 들리니 선열에 대한 예의는 빠졌으나 후손이라도 찾을 수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