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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 20:34

김형윤의 <삼진기행> 7 / 1954년 4월 21일 (수)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1

 

우리일행은 이교재선생의 묘소에 정중한 전배식(展拜式)을 마치고 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사양(斜陽)이 부락에 빚칠 때이다.

일행은 노부인과 작별인사를 할 때 굵은 눈물방울이 양 볼에 흘러내리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양친을 일찍 여읜 기자의 가슴속에 형상할 수 없는 만감이 충격한다.

기자는 다시 노부인의 눈물을 닦아주고 후일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떠나면서 고개를 잠시 돌려보니 아직도 동구(洞口)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서있다.

마치 자식을 먼 길로 보내는 자모(慈母)와도 같다.

일행은 급급히 회로(回路)를 달리며 다시 한 번 황교 좌우를 돌려보며 1919년 삼일독립전투시를 회상해본다. 1919년이면 지금부터 손꼽아서 삼십육 년이라는 옛날이다.

그때 이 태황께서 승단하시고 인산(因山)을 기회로 국내외 동포들은 분연히 일어서서 독립만세를 절규하자 그 위세는 요원의 불길같이 급속도로 전토(全土)에 미만(彌滿, 널리 퍼지어 가득 참)하자 일부 호농(豪農)과 일본인에 아부하여 재산생명을 보호 받는 무리들 외 일제봉기(一齊蜂起)하여 방방곡곡이 타도일본 독립만세 소리가 하늘을 질렀다.

그때 도시에서는 단순한 비밀삐라 산포가 아니면 만세절규에 그쳤지마는 농촌에서는 이와 같은 서당 샌님들의 미온태도에 만족치 않고 감연(敢然)히 일헌(日憲)에게 직접 행동을 가하였음으로 그 때문에 피해정도가 극히 참혹하였다고 한다.

수원교회 학살 사건도 국내에서 가장 으뜸 될 일이니 이것은 불의의 피습으로 말미암아 하가(何暇, 어느 겨를)에 대항은 고사하고 피난할 겨를조차 없어 비참한 희생을 입었지마는 그 최후의 장렬함에 있어서는 삼진방면의 황교전투보다 오른편에 내세울 비극은 드물다는 것이다.

도시나 농촌이 모두 마찬가지지마는 음모 행동은 대부분이 시일(市日, 장날)을 택한 모양인데 삼진의 전투로 최고의 희생을 당한 날이 음력 2월 3일의 진북의 시일(市日)을 기하여 인근 부락민의 대거출동으로 일헌(日憲)에 일격을 가하고자함에 그 정신과 그 기세야말로 장할 지고!

그러나 어찌 꾀 하였으리요, 무기 없는 불행한 약소민족으로 범 앞에 둥지개 바람(?)이니 어찌 통분함을 금할 수 있으리오.

그 의지는 장하고 용(勇)하였으나 결국은 비극의 씨를 뿌리게 되었으니 후일의 민중운동에 커다란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겼다고 할 것이다.

그때 누구의 말인지 모르나 유아동포 유진무태(唯我同胞 有進無退) 라는 「모토」대로 이를 애국청년에게는 오직 전진이 있었을 뿐이고 조국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든 것이니 서반아(西班牙)혁명 때 부인(婦人)이 가슴을 내밀고 적의 권총 앞에 돌격하던 것을 연상케 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으냐?

비극의 황교 동편에는 일헌과 그의 주구되는 헌병 보조원이 총부리를 들고 대진(對陣)하고 있었고 오서리 방면에서 합류한 청년들은 이것을 격퇴코저 진군할 때 별안간 적측(敵側)에서 탄환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그 탄환은 팥(赤豆)이었으므로 그들이 유도작전을 하는 흉계에 속아서 일제히 선풍지세(旋風之勢)로 헌병을 포위하려고 할 찰나에 실탄은 소낙비와 같이 애국청년의 머리 위에 쏟아져서 유탄(流彈)으로 어린애가5명 청장년 8명이 일시에 절명되었든 것을 일행은 다시 한 번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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