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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82 - 곤권(坤卷) / 제9장 사직기관

by 운무허정도 2024. 1. 15.

제9장 사직기관

 

1.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토오리마치(通町) 4정목에 있으며 정문은 미야코마치(都町) 3정목으로 열려있다.(아래 사진)

한국정부 시대의 재판소는 지방군수의 권한에 속해 왔지만, 명치 41년(1908) 사법제도의 개선에 따라 마산포는 창원감리서 내에 마산구(馬山區) 재판소를 두고, 법무보좌관으로서 판사 오쿠보 우타하후(久保歌治) 씨가, 감독서기 요시나리 긴타로(吉成欽太郞) 씨, 통역 겸 서기 우에노 에이스케(上野榮助) 씨와 함께 착임하여 청사를 마산포, 현재의 도미마치(富町)에 있는 일어학교 교사로 이전했다.

다음 해 명치 42년(1909) 봄에 부산지방법원 마산지부가 설치되어 판사 이우라 요시히사(井浦義久), 검사 신도오 간자부로(新藤寬三郎) 두 사람이 착임하여 현재의 다이마치(臺町)의 높은 언덕에 있던 마산이사청의 구청사를 빌려 쓰면서 구재판소와 더불어 여기로 이전해 왔다가 얼마 있지 않아 청사의 관리 전환을 허가받아 건물을 매립지에 이축시켰다.

지부는 지청으로 개칭되는 동시에 구재판소는 철폐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2. 부산형무소 마산지소

한국시대에는 현재의 도미마치(富町)에 있는 경무청(警務廳) 내에 있었는데 명치 42년(1909)쯤에 현재 위치에 신축하여, 그 후 몇 번이나 증축을 가해 오늘에 이른다.

애당초 당 지소는 마산분감으로서 완월동 지역에 건축되도록 토지의 성토 등이 수인(囚人)들의 손에 의해 많이 진전을 보고 있었고 현재의 공동묘지 내에 수인묘역도 확정되었을 때, 미마스 이사관이 이 조망 좋은 곳에 세상이 혐오하는 감옥을 건축한다는 것은 마산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해 마침내 중지하게 되어 현재의 위치가 설정된 것이라 한다.

소내의 사업으로는 편직공장을 첫째로 하고 직기를 50여대 설치해 구루메가스리(久留米耕) 회사의 위탁에 의한 우수한 구루메가스리(직물)를 짜내고 있다.

그 외로 짚풀 세공, 등나무줄기 세공, 가락지 세공, 그물 제작 등의 공장이 있어 그 실적이 만만치가 않다 한다.

여성 수인은 편물, 재봉, 세탁 등에 종사하며 누구의 의뢰든 받아들이고 그 공임이 싼 것에 항민은 편리함을 느끼고 있다.

작업장 일실(一室)에 아미타불의 금불상을 안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정 12년(1923) 4월 교계사(敎戒師)로 위촉받고 있는 혼간지(本願寺) 본산에서 기증한 것이며 그달 27일에 마산의 저명한 관민을 초대해 성대한 입불식(入佛式)을 거행해 수인 전원이 예배토록 하고 나서 축복의 향연을 베풀었다.

 

3. 집달리 사무소

집달리의 사무 취급은 전 경부보(警部補) 사토 젠쿠로(佐藤善九郎), 전 마산법원 지청 감독서기 시노다 신이치(信田辰一), 두 사람이 맡고 있으며 사무는 마산법원 지청 내 별실에서 보며 매일 바쁜 업무에 쫓기고 있다.

수입은 두 사람이 균등하게 나눈다고 한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82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