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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113 - 곤권(坤卷) / 제29장 마산의 장래 시가지와 매축지

by 운무허정도 2024. 8. 19.

3. 신마산 해안 간석지의 매립

마산포 오동동의 간석지 등에 개인적인 사용 목적으로 매립허가를 얻어, 이미 사업의 완성을 알린 데도 있으나 일반 공중의 목적으로 매립해 이것을 완료한 것은 마산포 모토마치(元町) 땅 끝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郎) 씨의 1만2천여 평이 있을 뿐이다.

 

이 매축지 모서리에서 마산역 기관고의 모서리에 이르며, 나아가 미나토마치(湊町) 매축지 모서리에서 철도용지와 마산세관부두를 거쳐 군용지 근위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간석매립계획은 일전에 고베 스즈키상점계(鈴木商店系)의 남조선철도회사에서 실시했었다.

사철합동(私鐵合同) 결과 동 회사는 경성에 이전해 조선철도회사가 되고 난 후에는 설계가 중단되어, 신마산의 유지인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郎)씨가 새로이 미나토마치의 철도용지 매축지 모서리에서 서쪽으로 우회해 세관부두에 이르기까지의 매립사업에 허가를 받게 되었다.

마산부 및 조선철도회사와의 매립지 양여(讓與) 교섭도 원만히 해결되었으니, 메카다 씨는 최근 이미 상세한 설계를 회원리 행정(杏亭)에 있는 오카노 다이조(岡野大藏) 씨에게 의뢰했다고 하니 그 실현도 역시 이삼 년 내에 이루어지리라고 본다.(이 사업으로 1928년 월남동, 창포동 일대 1만5백 평이 매립되었다.)

 

4. 마산포 가로(街路) 및 기타 정리

마산부윤 데라시마 도시히사(寺島利久, 일제 관료로 부산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1922년 제4대 마산부윤으로 부임해 와 인천부윤으로 영전해 가는 1928년까지 6년간 재임하였다. 아래 사진) 씨는 착임 이래 그 현저한 업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중앙대운동장의 공설, 공공우물을 새로 판 것과 개수, 오기마치(扇町), 도미마치(富町) 양 시장의 공설, 북마산과 구마산을 연결하는 상남동 도로 개통, 오동동에서 요로즈마치(萬町)를 거쳐 도미마치 공설시장에 나가는 가로의 대개수, 오동동 해안 쪽을 왼쪽으로 가 산호리를 향하는 창원군과의 연결도로와 구마산 역전에서 직선으로 서남으로 가 어항을 매축 통과하고 모토마치(元町) 끝머리 매축지 천변에 이르는 도로의 개설, 마산경찰서 구마산파출소(한 번 요로즈마치에 건설된 것은 실패했음)를 마산포 모토마치 식산은행 지점 맞은편에 신축하여 규모는 작으나 장려함을 자랑하고 있고 종루(鐘樓)가 철제로 견고하다.

한국정부로부터 인계받은 건물을 응용한 구마산파출소는 도(道)와 교섭하면 저절로 해체되어 그 결과 도미마치 공설시장은 크게 확장하게 될 것이다.

우시장도 이미 새로 지어져 있으니 남는 일은, 이미 본부(총독부)와 본도의 양해를 얻어 반룡산 중에 수원지를 상정한 마산상수도의 건설과 마산포 어항의 정리뿐이다. 이러니 데라시마부윤의 치적은 영구불멸하리라.<<<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113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