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 9. 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2) - 개항기

사람 손 닿기 전의 신마산 옛 모습

<마산포 각국조계도>

1899년 / 네델란드인 스태든으로 추정 / 각국정부 / 막대추정 / 군산 마산포 성진 각국조계장정 / 규장각

이 지도는 외부대신 박제순과 각국 대표들이 맺은「군산․마산포․성진 각국조계장정」에 첨부된 설계도면입니다.
개항기 마산관련 자료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지도로 근대적인 측량기법으로 작성된 마산시내 최초의 지형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등고선으로 표시된 지도라 지형의 고저(高低)와 기복(起伏)을 잘 알 수 있으며 해안의 간조선과 만조선 그리고 하천까지, 사람 손이 닿기 전의 조계지(신마산) 옛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있는 자료입니다.


등고선의 단위(고저차)가 표기되지 않아 아쉽습니다만 현재의 지형과 비교해보면 등고선의 고저차가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도에 나타난 자연지형 및 관련자료들을 종합해보면, 마산포에서 진주로 가던 '진주가도'는 해안에서 5-6번째 등고선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각국공동조계지의 범역(Settlement Boundary)이 그려져 있으며 주도로(Main Road)의 동쪽(도면의 방위표에는 착오로 W와 E가 바뀌어 있습니다) 해변에 세관을 비롯한 개별 필지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조계지 최초로 조성할 부지로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주도로는 지금의 월남동 성당 정문 앞의 간선도로이며 짙게 표기된 도로가 사잇길인데 이 지도에서 계획된대로 길이 뚫렸고 모두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쪽 신월천 중간 쯤에 급경사로 인한 폭포(Bluff)가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복개되었기 때문에 지금 저 위치에 폭포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 주위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도 비가  많이 오면 지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고 합니다.

지도 중간에 표기된 하천이 옛 마산시장 관사 앞의 창원천(대곡천)이며, 아래 쪽 하천이 월영천인데 지금은 복개되어 경남대 정문앞 월영광장 지하에 흐르고 있습니다.

폭포 윗부분에 해관장 관사(Grounds Reserved for a Commissioner's Residence)가 표기되어있습니다.
지금의 제일여고 자리입니다.
해관장 관사는 계획만 했을 뿐 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마산 신사(神社)가 들어섰고 일제기 내내 마산공원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지금의 월포초등학교와 경남아파트, 마산종합복지관 터는 봉곳하게 틔어오른 작은 봉우리라 조계지와 마산 앞바다를 내다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솟아 올랐던 당시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지형을 보면 조계지는 마산 앞바다와 무학산 사이의 좁은 경사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형적 조건은 지난 100년간 이 도시에 매립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지가 별로 없었는 당시 지형을 보면,
이곳 월영리와 신월리에 살았던 마산의 옛 사람들은 다랑이논 몇 뼘 외에 합포만과 갯벌, 그리고 무학산록에 기대어 생업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도에 표기된 조계지의 범역을 현재로 옮겨 보았습니다.
속칭 깡통골목에서 경남대 정문 앞 월영광장까지, 뒤로는 제일여고 뒷경계 까지가 조계지였습니다.
두 개의 해안선은 간조선과 만조선입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2010/08/2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2010/08/3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Trackback 0 Comment 0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5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4) 그렇다면 이교재와 함께 형무소에 갇힌 위의 인물들은 누구일까. 순서대로 적힌 인물들을 검토해 보자. 沈相沅에 관한 기록은 재판 기록 이외에서는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4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3) 이교재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뛰어든 것은 3.1운동 때였다. 그는 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고향의 동지와 더불어 선언서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문..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3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2) 이교재가 소년시절을 보냈던 조선조 말기와 대한제국시기에 진전면 일대에는 몇몇 서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마을 단위이자 문중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문중 중에서도 ..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2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1) 이교재(사진)는 1887년(고종 24년) 7월 9일 경상도 진해현 서면 대곡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578번지)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가 부농의 아..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 1

앞서 9회에 걸쳐 1954년 김형윤 선생이 마산일보에 기고한 '이교재 선생 생가 기행문' 「삼진기행」을 포스팅했다. 오늘부터는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위 사진)의 생애사를 연구한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아래 사..

김형윤의 <삼진기행> 9 / 1954년 4월 23일 (금)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3 이 황교전투로 말하면 삼진방면의 만세의거로서는 제3회째라고 하는데 제1회가 현동 제2회가 진북의 순으로 황교전이야말로 규모를 확대하였든 만큼 피해가 우심(尤甚, 정도가 더욱 ..

김형윤의 <삼진기행> 8 / 1954년 4월 22일 (목)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2 논둑 받아(?) 둑아 날 살리라 심의중(沈宜中)이 불콩이 날 죽인다! 이것은 누구의 창작인지 미상이나 지금도 산야엘 가면 나물 캐는 촌새악씨나 나무하는 목동이나 또는 소먹이는..

김형윤의 <삼진기행> 7 / 1954년 4월 21일 (수)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1 우리일행은 이교재선생의 묘소에 정중한 전배식(展拜式)을 마치고 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사양(斜陽)이 부락에 빚칠 때이다. 일행은 노부인과 작별인사를 할 때 굵은 눈물..

김형윤의 <삼진기행> 6 / 1954년 4월 20일 (화)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6 불우 순국열사들!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백년 일세기를 영길리(英吉利, 잉글랜드)의 식민지로서 정치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치명상을 입고 경제적으로 약탈착취(掠奪搾取..

김형윤의 <삼진기행> 5 / 1954년 4월 18일 (일)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5 그러면 다른 말은 잠간(暫間, '잠깐'의 비표준어) 차정(次頂)에 미루어두기로 하고 정부에서는 무수한 순국열사에게 무엇으로 보답하였으며 무엇을 하려고 구상하고 있는가? 또..

김형윤의 <삼진기행> 4 / 1954년 4월 17일 (토)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4 이야기는 본선(本線)에서 조금 지났지만은 이교재 선생을 검거한 이만갑이라는 자(者)는 어떠한 자인가를 말 안할 수 없다. 기자(김형윤 선생 자신)와 이만갑은 (지금은 일반..

김형윤의 <삼진기행> 3 / 1954년 4월 16일 (금)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3 산협의 좁은 비렁(&lsquo;벼랑&rsquo;의 방언)을 얼마쯤 나가니, 간데 마다 산은 백구질을 하여 황토만 노출(露出)한 독산인데 이 산 중복(中腹)쯤 되는 곳에 선..

김형윤의 <삼진기행> 2 / 1954년 4월 15일 (목)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2 일행은 이(李) 열사가 생전에 생장하셨다는 봉곡 부락 길가에 정차를 하고, 좁다란 밭 기슭을 타서 가면 신작로에서 불과 3&middot;4분 만에 선생의 구거에 당도된다...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오늘부터의 포스팅은 창원지역에서 평생 언론인으로 살다간 목발(目拔) 김형윤(金亨潤) 선생이 남긴 기행문이다.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실렸고, 기고자는 본명 대신 &lsquo;H 생&rsquo;이라 되어 있다. 제목은 「삼진기..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lsquo;대한민국 건축문화제&rsquo;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