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 8. 3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진주가도' 알 수 있는 유일한 지도

<租界地現況圖* (조계지현황도*)>

1899년 / 창원감리 / / / 「창원보첩」감리보고 제7호 / 奎章閣

마산보다 2년 앞선 1897년에 개항한 목포와 진남포의 조계지에서 러시아가 영사관 부지를 턱 없이 넓게 차지하려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은 마산조계지에서 무려 60,000㎡나 되는 땅을 영사관 부지로 먼저 차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조계장정 제10관 제2조에 각 영사관 부지는 15,000㎡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를 무시하고 나섰던 겁니다.

일본의 이러한 위법적 의도를 간파한 창원감리가 이 사실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본 지도는 그 보고서에 첨부되었던 것입니다.

지도를 그린 목적은 일본의 영사관부지에 대한 야욕을 저지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보면 초기 마산각국공동조계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비록 축척도 없이 붓으로 그린 재래식 지도이지만 조계지내의 당시 모습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도면 중앙부에 일본영사관의 영역을 넓게 표시하고 있는데, 이 만큼의 토지를 차지하려 했다는 겁니다.

지도 설명을 위해 예목(例目)을 표기해 놓아서 구로(舊路)․신작로․표목․해관․천․인가 등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표목은 각국공동조계지가 결정되면서 박은 것이며, 조계지 내의 인가(人家)는 당시 월영리를 이룬 마을로 보입니다.
영국․일본․러시아 영사관 예정 부지가 영관기(英館基)․일영관기(日領館基)․노관기(露館基)로 표기되어있으며 서쪽에 월영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도에는 바다로 내려오는 세 개의 하천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운데 창원천은 지금도 시내 중심을 흐르고 있지만 조계지의 경계점인 왼쪽 월영천(현 경남대 정문 부근)과 오른쪽 신월천(현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우측도로)은 복개되어 지금은 땅 속에서만 흐르고 있습니다.

지도 좌측에 칠원계(漆原界)라는 표시는 당시 자복포를 포함한 현재의 경남대 서쪽이 칠원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편 가운데 바다와 면해있는 기역자 부지는 세관(당시 해관)입니다.

해안 가까이 직선으로 신작로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개항 직후 이미 예정되었던 주도로의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작로는 마산 최초로 개설된 근대식 도로인데 개설 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산의 주간선도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작로 좌측 끝부분이 경남대 앞 월영광장인데 그 곳이 그 때까지는 바다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시내 한복판인 월영대의 위치도 당시에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이었다는 사실까지 학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특히 본 도면에 의해 ‘진주가도’라 불리면서 창원-마산-진동(당시 진해)-진주로 연결되던 구도로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마산사람들이 진주방면으로 갈 때 이용했던 길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해안과 마을 사이를 지나는 꾸부렁한 저 길이 마산포를 진동지역을 거쳐 고성, 진주와 이어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 길을 오고갔던 마산포 사람들의 발자국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지도의 위치를 현재로 옮겨 보았습니다.
그림의 방향이 다릅니다만 비교하기는 쉬울 겁니다.
푸른색이 위 지도에 표기된 세 개의 하천이며 황색직선은 위 지도에 직선으로 반듯하게 난 신작로, 곧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마산시내의 간선도로입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2010/08/2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Trackback 0 Comment 0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5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4) 그렇다면 이교재와 함께 형무소에 갇힌 위의 인물들은 누구일까. 순서대로 적힌 인물들을 검토해 보자. 沈相沅에 관한 기록은 재판 기록 이외에서는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4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3) 이교재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뛰어든 것은 3.1운동 때였다. 그는 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고향의 동지와 더불어 선언서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문..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3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2) 이교재가 소년시절을 보냈던 조선조 말기와 대한제국시기에 진전면 일대에는 몇몇 서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마을 단위이자 문중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문중 중에서도 ..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2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1) 이교재(사진)는 1887년(고종 24년) 7월 9일 경상도 진해현 서면 대곡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578번지)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가 부농의 아..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 1

앞서 9회에 걸쳐 1954년 김형윤 선생이 마산일보에 기고한 '이교재 선생 생가 기행문' 「삼진기행」을 포스팅했다. 오늘부터는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위 사진)의 생애사를 연구한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아래 사..

김형윤의 <삼진기행> 9 / 1954년 4월 23일 (금)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3 이 황교전투로 말하면 삼진방면의 만세의거로서는 제3회째라고 하는데 제1회가 현동 제2회가 진북의 순으로 황교전이야말로 규모를 확대하였든 만큼 피해가 우심(尤甚, 정도가 더욱 ..

김형윤의 <삼진기행> 8 / 1954년 4월 22일 (목)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2 논둑 받아(?) 둑아 날 살리라 심의중(沈宜中)이 불콩이 날 죽인다! 이것은 누구의 창작인지 미상이나 지금도 산야엘 가면 나물 캐는 촌새악씨나 나무하는 목동이나 또는 소먹이는..

김형윤의 <삼진기행> 7 / 1954년 4월 21일 (수)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1 우리일행은 이교재선생의 묘소에 정중한 전배식(展拜式)을 마치고 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사양(斜陽)이 부락에 빚칠 때이다. 일행은 노부인과 작별인사를 할 때 굵은 눈물..

김형윤의 <삼진기행> 6 / 1954년 4월 20일 (화)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6 불우 순국열사들!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백년 일세기를 영길리(英吉利, 잉글랜드)의 식민지로서 정치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치명상을 입고 경제적으로 약탈착취(掠奪搾取..

김형윤의 <삼진기행> 5 / 1954년 4월 18일 (일)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5 그러면 다른 말은 잠간(暫間, '잠깐'의 비표준어) 차정(次頂)에 미루어두기로 하고 정부에서는 무수한 순국열사에게 무엇으로 보답하였으며 무엇을 하려고 구상하고 있는가? 또..

김형윤의 <삼진기행> 4 / 1954년 4월 17일 (토)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4 이야기는 본선(本線)에서 조금 지났지만은 이교재 선생을 검거한 이만갑이라는 자(者)는 어떠한 자인가를 말 안할 수 없다. 기자(김형윤 선생 자신)와 이만갑은 (지금은 일반..

김형윤의 <삼진기행> 3 / 1954년 4월 16일 (금)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3 산협의 좁은 비렁(&lsquo;벼랑&rsquo;의 방언)을 얼마쯤 나가니, 간데 마다 산은 백구질을 하여 황토만 노출(露出)한 독산인데 이 산 중복(中腹)쯤 되는 곳에 선..

김형윤의 <삼진기행> 2 / 1954년 4월 15일 (목)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2 일행은 이(李) 열사가 생전에 생장하셨다는 봉곡 부락 길가에 정차를 하고, 좁다란 밭 기슭을 타서 가면 신작로에서 불과 3&middot;4분 만에 선생의 구거에 당도된다...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오늘부터의 포스팅은 창원지역에서 평생 언론인으로 살다간 목발(目拔) 김형윤(金亨潤) 선생이 남긴 기행문이다.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실렸고, 기고자는 본명 대신 &lsquo;H 생&rsquo;이라 되어 있다. 제목은 「삼진기..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lsquo;대한민국 건축문화제&rsquo;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