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시작으로 그동안 제가 수집한 마산의 지도를 간간이 소개할 계획입니다.
먼저 일본과 우리나라의 근대지도에 얽힌 글 한 편 올립니다.<<<
「고대 지나(支那)에서 행한 도량형 및 측량 등의 기술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조선반도를 거쳐 점차 일본에 도래하였다. 따라서 일본에 있어 태고로부터 행한 원시적 측량은 이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변천을 보았다」
이 글은 『일본토목사(日本土木史)』의 측량 장(章) 서두입니다.
이 글에서처럼 고대 일본은 중국의 측량술을 우리나라를 통해 도입하고 개선해 나갔습니다.
근대 일본의 측량술은 이노우 타다타카(伊能忠敬, 1745-1818)가 기틀을 세웠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측량기술 개발이 일본근대측량술의 발전을 앞 당겼습니다.
'일본의 김정호'라 부를 수 있는 이노우 타다타카는 1745년 혼슈 지바현에서 태어났습니다.
50세가 되던 1794년, 장남에게 가사를 맡기고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 나가 서양의 천문, 역법, 측량을 배웠습니다.
1800년 막부(幕府)의 명을 받아 홋카이도 동남 연안을 측량한 것을 시작으로 1818년 에도부(江戶府) 측량도를 완성하기까지 19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측량에 몰두하였습니다. 측량기기는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노우가 제작한 지도는 당시의 기술수준에 비교해 놀랄만큼 정확했습니다.
이노우의 업적은 1/36,000(대도, 大圖) 1/216,000(중도, 中圖) 1/432,000(소도, 小圖)라고 부르는 유명한 이노우도(伊能圖), 즉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與地全圖)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지도가 이노우가 제작한 '대일본연해여지전도' 중 서일본, 즉 큐슈 쪽입니다. 왼쪽 윗부분에 대마도도 보입니다.
몇년 전에 "일본 최고의 지도에 독도 표기가 없으니 독도는 원래 일본영토가 아니다"라며 국내언론들이 크게 보도한 그 지도입니다.
이노우가 직접 실측한 이 지도는 그가 죽은지 3년이 지난 1821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김정호 보다 60여년 먼저 태어난 이노우가 이런 근대식 지도를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일본의 근대 측량술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노우는 일본인들에게 ‘일본 근대측량의 아버지’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일본국민들로 부터 대단한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측량과 관련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측량을 하기 위해 일본 열도를 답사한 거리가 4만 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지바현에 있는 그의 생가에 선 그의 동상입니다.
이노우(伊能)와 같은 선각자가 있었던 탓인지 일본은 19세기 중반부터 서구의 측량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측량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해 측량기술의 개발과 전승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도제작을 이적행위로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측량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일본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년)에서 조선항로의 측량을 요구했습니다만 우리 정부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들의 측량을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약 체결 이후에도 일본의 조선항로측량은 뚜렷이 진행되지 않았으며 일본 내부의 측량 기술력을 향상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실제로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목적으로 이 땅의 측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895년경이었습니다.
1895년 3개조로 나눈 일제 임시측량반이 한반도에 파견되어 1/50,000 지도를 간행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한반도 측량계획은 조선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1개조만 남아 1900년까지 1/200,000 지도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공식적인 시도와는 별도로 일본육군참모본부가 한반도를 비밀리에 측량하여 제작한 지도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1899년 발행한 1/50,000의「군용비도(軍用秘圖)」입니다. 총 300개의 도엽으로 만들어진 지형도입니다만 여기에 마산 도엽은 빠져있습니다.
1895년에 들어온 일본인 측량부대를 관청에서는 제반 편의를 제공하는 등 극진히 대우하였습니다만 주민들은 대부분 이들을 싫어했고 지역에 따라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측량기사들에게 칼을 주어 스스로 신변을 보호하게도 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함흥, 대구, 제천, 여주와 함께 창원지역에서 특히 저항이 심했다고 합니다.
창원에서는 1895년 11월 동래부 근방에서 요코이(橫井) 측량수가 작업 중 한국인 6-7명에게 담배가 든 휴대품 등을 강탈당하였고 투석의 위험이 있어 간신히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또 창원의 자여역(自如驛)에서 스이스이(垂水) 측량수가 동행한 고용 한국인이 촌민과 논쟁한 후 얻어맞자 이를 제지하였습니다.
그날 밤 촌민 수십 명이 스이스이의 숙소를 습격하려했습니다만 창원부에서 출장 온 한국 관리가 제지하여 무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측량수를 습격하려던 주모자는 그 근방의 관리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근대적 측량을 최초로 접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일본육지측량부'가 펴낸 『육지측량부연혁지』에 의하면 1896년에 조선왕족 이준용이 일본 육지측량부 제도작업을 참관하였고, 1898년 이주환이 2년 과정의 초등지형측량학과를 졸업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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