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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2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합포만 내려다 본 일본 신사(神社)>

일제가 우리 민족을 무력으로 위협한 것이 군대와 경찰이었다면 정신적으로 위압한 것이 신사(神社)였습니다.
한반도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일본신사는 부산신사인데 이미 17세기에 일본인들이 부산에 상주하면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 후 1876년 한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후 개항된 도시에 각국공동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일본거류민들이 조계지에 신사를 세웠습니다.

마산의 일본 신사(神社)건립계획은 순종이 마산을 방문했을 때 쯤 (1909년 초) 홍청삼(弘淸三)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마산경제회 등 일본인 유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신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아무도 그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날 홍씨가 마산의 일본인 유지 27명을 요정 ‘망월’에 초대하여 신사 창건을 호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산항지』의 기록에 의하면 홍청삼은 ‘거류민으로서 조상신을 애호하는 염원과 진충보국 정신을 발양할 목적’ 으로 신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합니다.

당시 마산이사관이던 삼증(三增)이 해관장의 사택 예정지를 신사 부지로 내놓았습니다. 바로 지금의 제일여고 교정입니다.

도시공간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위계가 높았던 자리로 아래 그림의 위치입니다.
밑의 사진은 1910년대에 발간된 마산지도에 나타난 '마산신사'입니다.

 

 

 


일제기 마산신사 전경입니다.


 

 

신사건립을 위해 1909년(명치 42) 2월 8일 마산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에서 일본인 유지 백여 명이 모여 마산신사 창건위원 10명을 선출하였습니다. 그 중 전전(前田) 민장이 위원장에, 뒷날 『마산항지』를 펴낸 추방사랑(諏方史郞)이 지진제(地鎭祭)의 신관(神官)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지진제는 3월 3일 삼증 이사관, 전전 민장, 홍청삼 민회의장, 민회의원, 상업회의소의원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하였으며 전전 위원장은 신사 창건기부금 5천원의 모금계획을 이사관에게 신청, 인가를 얻어 즉각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마산신사 지진제를 거행하는 장면입니다.

 

 


공사는 마산에 거주하던 말광기오랑(末光磯五郞)이라는 장인이 맡았습니다.
공사장에는 욕조를 두어 직공들과 함께 매일 아침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마산신사에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봉안한 본전 외에 술 만드는 신 주호신(酒護神)을 모신 송미신사(松尾神社)도 있었습니다. 송미신사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1936년에 증설하였습니다.
1920년 대 이후 번성했던 마산의 주류산업이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산의 일본인 양조업자들은 일 년에 한차례씩 송미신사 앞에서 성대한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제일여고 주변에는 당시의 신사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교문 안과 바깥 돌계단이 옛 신사입구 계단입니다. 이 돌계단은 일제기 마산포 주민들이 근로봉사작업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노역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교정의 정원석으로도 신사의 흔적이 남아 사용되고있으며, 담벼락에는 축조발기인이라고 밝힌 일본인의 이름이 음각된 돌도 박혀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일제기 마산신사 입구 모습과 현 제일여고 정문 사진입니다.

 



정문 앞 계단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제일여고 교문이 신사의 신주문을 모방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마산 창원 역사읽기』에서 설립자인 이형규 이사장이 제일여고 교문은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수당문)을 모방한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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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2
  1. 옥가실 2010.11.29 20:31 address edit & del reply

    아, 못보던 사진도 올라왔군요. 특히 지진제 사진....
    어디서 구하셨나, 저 진귀한 사진을.....
    그리고 추방사랑의 일본훈은 '수와(Suwa)입디다.

    • 허정도 2010.11.29 21:37 address edit & del

      우리가 몰랐던 자료도 참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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