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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5. 06:00

옥상에 7만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건물

도시를 바꾼 10가지이야기(7)
복합문화공간과 도심공원 두마리의토끼를 잡은 오사카 '난바파크'


일본 오사카 남쪽에 위치한 '난바파크'는 창원의 '시티세븐'과 많이 닮았다.

우선 도심 한복판에 입지하고 있고, 자연스러운 곡선형태의 건물외관도 비슷하며, 극장과 음식점, 쇼핑몰, 사무소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건물옥상의 활용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시티세븐에도 옥상정원이 일부 있지만 규모나 개방감에서 내놓고 자랑하기가 부끄럽다.

난바파크의 옥상에는 총 300여종 7만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높이가 3m에 달하는 수목도 700그루나 된다. 야외 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높이다. 


난바파크 지구는 1950년대 부터 오사카종합경기장이 자리하던 곳으로 1989년부터 오사카시에 새롭게 돔구장이 생기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연극공연장 이나 주택전시장등으로 사용되다가 도심상업지구의 활성화를 위한 복합개발 프로젝트로 재개발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부지면적 37,179m2, 연면적 297,000m2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종전의 야구장이 입지하던 공공장소의 특성을 살려 대규모로 옥상정원을 조성해 일반시민에게 개방하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건물상부에 약 10,000m2에 이르는 옥상정원은 단지용적률 800%를 소화하면서 자연에 친근하고 걷기에 즐거운 장소를 만들기 위해 녹화공간과 도시광장으로 구성해 제2의 대지를 형성하였다.

특히, 옥상을 지상과 격리시키지 않고 지상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자연구릉형상으로 계획해 다양한 상업시설과 공존하게 하였다.
옥상녹화작업은 미적인 관점에서만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친환경적인 컨셉이 에너지 절약과도 직결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실험결과, 여름철 외부기온이 섭씨 311도일때 옥상에서 녹화된 곳과 수목이 없는 콘크리트 온도는 각각 29.2도, 45.6도였다. 같은지역이라도 녹화여부에 따라 16.4도나 차이가 난다.
중요한 점은 녹화를 통해 옥상 기온을 낮추면 그아래에 위치한 점포 주변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져 과거보다 에어컨가동을 줄일수 있다는 점이다.


난바파크는 한해 3,0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가되었다.
잘 디자인된 건물과 다양한즐길거리가 있고, 친환경과 에너지절약을 동시에 이루어 도심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도시의 회색건물들 사이에서 상상조차 할수없는 시원한 녹색그늘과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을 만날수 있게 된것은 공원이 부족한 오사카의 도시여건과 관계깊다.

처지가 비슷한 마산의 입장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통합시청사 후보지로 오르내리고 있는 마산종합운동장이 재개발 된다면 아마도 이런모습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Trackback 0 Comment 2
  1. 임종만 2010.11.05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감동먹었습니다^^

  2. 옛 마산시민 2010.11.05 17:33 address edit & del reply

    오사카 환경답사 코스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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