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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김근태의 추억

by 허정도 2012. 12. 5.

<김근태의 추억>

아내와 함께 영화 ‘남영동 1985’를 보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 영화는, 고 김근태 선생이 1985년 9월 4일부터 22일간 당했던 공권력의 악랄했던 고문을 생생하게 다룬 영화입니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라 영화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김근태 그 분의 추억이 떠올라 이 글을 올립니다.

 

 

1987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영동 고문이 세상에 알려진 뒤였습니다.

그 분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습니다. 마산에서 저녁 강연을 한 후 숙소로 제 집을 택했던 겁니다.

말로 신문방송으로 수도 없이 듣고 보았지만 그 분을 직접 본 것은 그날 저녁이 처음이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분이었습니다. 얼굴빛이 희고 몸은 가늘었습니다. 소식을 했고 목소리도 낮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은 “저렇게 가녀린 분이 어찌 그런 참혹한 고문을 견뎠을까?” 생각하며 놀랐던 제 자신의 모습입니다.

2층 방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아침이 되자 누가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젊은 청년 두세 명이 집으로 왔고, 마루에서 선생님과 뭔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청년들이 먼저 나갔고 선생님도 곧 떠났습니다.

저의 짧은 기억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와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선생님이 47년생이니 당시 나이 만 사십이었고 제 나이는 서른 넷이었습니다.

참 잔인한 세월이었는데 불과 2-30년만에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절대 잊지 말자고, 두 번 다시 지지 말자고 막걸리 마시며 다짐한 게 어제 같은데 그새 잊고 살았습니다.

영화 끝 자막과 함께 나온 이학영의 고문 증언까지 들으니 모골이 송연하며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했고 또 미안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런 잔혹한 세월을 거쳐 이런 시대가 왔으니 말입니다. 

 

작년 12월 30일,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온 파킨슨 병으로 떠났습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김근태 선생, 그 분이 우리에게 남기신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