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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3) -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3. 12. 23.

<도시 외곽지였던 산호리 상황>

1930년대부터 해방 때 까지 원마산의 범역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해방 무렵에는 북서쪽으로 상남동을 지나 회산교까지 원마산과 이어짐은 물론 오동교까지 건물이 가득 들어섰으며, 해안지역에는 오동교까지 매립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달리, 산호리는 여전히 원마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산호리의 정경은 1941년 발표된 지하련의 단편소설「체향초(滯鄕抄)」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 임화의 둘째 부인이었던 소설가 지하련(1910년, 거창생, 본명 이현욱 李現郁)은 천석지기 집안에서 태어나 1926년 마산으로 이주하여 1935년 마산으로 내려온 임화와 결혼, 1938년 상경하였습니다. 하지만 1940년 결핵에 감염되어 마산 산호리 562번지로 낙향하였다가 1947년 가을, 임화와 함께 월북하여 1960년 병사하였습니다. 본 글에서 인용한 단편소설『滯鄕抄』는 현재의 마산 산호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1941년 발표하였습니다.  

사흘 째 되든날 아츰, 끝내 산호리(山湖里)로 옴기게 했든 것이다.

․․․․․․․․산호리는 조용해서 거처하기 가장 적당하다는, 이러한 것을 말슴드린 후․․․․․․․․지금은 이렇게 시가지와 떠러진 산 밑에서 나무와 김생들을 기르고 날을 보내는 셈이다․․․․․․․․

이제는 그의 다정한 고향 바다와, 산과 들을 생각할 때마다, 먼저 나무와 꽃이 욱어지고, 양과 도야지와 닭들이 살고 있는 양지바른 산호리, 그 축사와 같은 적은 집에․․․․․․․․

또 삼히를 위해서 광선(光線)의 드나듦이 가장 알맞고 바다가 잘 보이고 하는 이러한 좋은 조건을 가진 방을 그에게 주었었다․․․․․․․․

이 소설의 한 조각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방 직전 산호리는 원마산의 범역에 연결되지 않은 채, 조금 떨어진 용마산 아래의 오산포구를 끼고 자연취락 형태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로 창원가도라고 불렀던 간선도로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해방 직후 마산지역을 촬영한 항공사진인데. 노란색 타원형으로 그린 곳이 산호리 입니다. 용마산도 보이고 용마고(전 마산상고)와 합포초등학교의 운동장이 보입니다.

해방 2년 후인 1947년에 미공군이 마산도시를 항공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당시 산호리의 정경이 잘 나타납니다.

어떻습니까? 바닷가에 자리잡은 한가로운 산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