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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9. 00:00

한국100명산 8. :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남해금산

 ● 이번 산행은 송년회를 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산을 고르다 보니 100명산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이며, 산행하기 수월한 남해금산을 선택하였습니다. 해발이 그리 낮은 편은 아니지만, 정상근처인 보리암까지 여차하면 차량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으로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2월 28일(토)아침 10시에 출발하여 남해읍에 도착할 즈음 12시경,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번 산행에서도 지역의 맛집을 찾은터라, 급하게 남해의 맛집중 짜장면이 유명한 집을 읍내 근처에서 쉽게 찾을수 있었습니다. 읍에서 차를 돌리려는 차에 우뚝 솟은 지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남해성당이었습니다. 정삼각형에 가까운 경사지붕이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단순 명료한 형태에 군더더기 없는 이미지가 보기 좋았습니다. 단지 출입구 부분의 전실과 전이공간에 대한 과정없이 현관에 바로 들어서는 것이 아쉬웠읍니다. 또한 큰 나무가 전면 시야를 가려서게 거시기(?)했습니다. 실내를 보지는 못했지만, 외관의 형태와 재료 및 색상은 완성도가 높아보였습니다. 원정 산행을 할 때 이런 건축물들을 한개씩 찾아보는 것도 원정의 묘미이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 남해읍에서 한다는 중국집을 갔습니다. 성당을 보고나서, 네비를 찍어서 남해에서 가장 잘 한다는 중국집을 찾았습니다. 읍내에서 금산가는방향으로 5분정도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짜장면과 짬뽕을 시켰습니다. 대체로 맛은 있었습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특별메뉴형태로 해물짜장, 해물짬봉이라는 이름하에 가격이 7천원정도 하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말에 같은 가격에 맛이 있어야지, 가격 비싸게해서 맛있는 음식은 누가 못만들겠습니까. 그래서 별로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암튼 이과두주 한병으로 장거리 차멀미의 속내을 털어내고 금산으로 향하였습니다.

 - 금산은 북측방향으로 차량으로 이동해서 보리암까지 도착하는 코스와, 남측 등산로에서 올라가는 두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은근히 떠보는 얘기로 차로 그냥 보리암까지 올라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은 100명산 탐방대다운 방법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묵살하고 그냥 남측산행코스로 향하였습니다.-금산을 배경으로 출발전 인증샷(출발시간은 12시 40분)

 - 정상까지는 주차장에서 약 2.32Km 로 그리 멀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상의 높이가 704미터이고 보니 거리가 짧을수록 경사도는 급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거리는 짧지만 꾸준히 경사면을 올라야 하는 코스였습니다.(월출산에서 본 산행안내코스와 꼭 같았습니다. 아마 국립공원내 산행안내판은 이러한 형태로 정리한 것 같았습니다. )

 - 서포 김만중을 만나다. 산행 중간도선바위를 지나서 안내판을 발견하였습니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가 남해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김만중이 유배된 곳은 남해 금산 바로 코앞에 있는 노도라는 조그만 섬이였다고 합니다. 남해 노도에서 마지막 생을 맞이하였다느 생각을 하니 조금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이 분도 어지간한 성정이 대쪽같은 분이셨던것 같습니다. 입바른 소리 때문에 세번의 유배생활을 하였다고 하니 알만할 정도입니다. 특이 마지막 입바른 소리는 인현황후 폐비반대를 외치다 희빈장씨에 의해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분은 엄청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유명한 소설인 '구운몽'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유배지에서 지었다고 하니 그 효심을 가히 짐작할 만 합니다. 마지막 3년을 남해 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소설을 지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지 얼마지 않아 그도 어머니를 만나러 저승으로 갔다고 합니다. 정말 가슴이 울컹해집니다.

 - 해골문에 도착했습니다. 보리암을 앞두고 기암괴석이 즐비해있습니다. 우선 급경사면에 고개를 처들고 보니 해골처럼 생긴 바위가 떡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입은 땅 밑에 처박힌 상태이고 눈두덩이 움푹한 면과 코뼈 정도와 두개골만 남아있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쌍무지개를 뜻하는 쌍홍문이라고 합니다. 원효대사가 지은 이름이라고 하니 부정하기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세월이 천 몇백년정도 흐른점을 감안한다면 그럴법도 했습니다. 그 때는 동그란 쌍무지게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천년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그 무지게 형상이 모진 풍상을 맞아 지금의 해골모양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ㅎㅎㅎ(해골봉의 모습 vs 쌍무지게 모습)

- 해골문 왼쪽 눈으로 들어서는 계단입니다. 해골 속은 비워져 있답니다.

- 해골암은 불이문 : 통상 절에 들어가는 초입에 불이문이 있으며, 다음에 있는 것이 사천왕문입니다. 사천왕들이 귀신들을 쫓아내는 전이공간역할을 합니다. 보리암의 해골문은 불이문과 사천왕문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듯 합니다.(해골문에서 보리암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 해골문에서 좌측에 있는 눈부위로 한려해상을 바라본 모습입니다.(많은 섬과 많은 구름들이 닮은듯 합니다.)

- 사선대라고 합니다. 4명의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는 뜻입니다. 앞의 봉우리는 대장신선이 앉았을 것이고, 오른쪽은 조그만한 세개의 봉우리에는 쫄병 신선들이 앉았을것 같습니다.

- 인물바위입니다. 이 이름은 저가 지은 것입니다. 머리 숱을 보아서는 50대인것 같습니다. 약간 웨이브를 넣은 꼬시랑 머리입니다. 얼굴은 길쭉한 편이며, 코 또한 역시 길쭉합니다. 계통으로 보아서는 남방계는 아니고 북방계통인 것 같습니다. 저희 대원중의 한분과 꼭 닯은듯 합니다.

- 바둑이 바위입니다. 이 이름도 저가 지은것입니다. 귀가 짝짝이기는 하지만 분명이 두개가 솟아있습니다. 눈은 찡그리듯이 감고 있는 모습니다. 코는 약간 짤리워져 나간듯 합니다. 입은 다물었으나, 혓바닥이 약간 내밀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 매번 바위이름을 보며서 따지는 버릇이 있어서 이름없는 바위들을 보면서 느낀인상을 적어보았습니다. 100명 탐방이 끝나면, 전혀 이름과 닮지않은 바위 리스트를 뽑아보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어서, 앞으로 계속 바위이름에 대한 크리틱을 할 참입니다. 많은 기대바랍니다.

- 해골문을 지나서 바라본 보리암의 전경입니다. 좌측에 보이는 것은 종각입니다. 보리암은 암자로 보기에는 규모가 적지않은 것 같습니다.

- 암자에서 바라본 남해안 전경입니다. 오른편에 터진 구름사이로 햇살니 내리쬐는 모습이 보입니까?

- 해수관음보살상이라고 합니다. 보리암 남측면 전망대에 설치되어있읍니다.

- 바위과 동거하는 종각 : 보리암 건너편에 자리한 종각 한켠에 큰 바위가 들어앉아있습니다. 아마 이 바위는 종각이 서 있기 전부터 그곳을 지켜온 터줏대감이었겠지요, 바위의 지상권을 인정하고 종각을 지은 결과 이러한 모습이 탄생하게 되었겠지요, 종소리의 울림을 유지시켜주는 반향판의 역할도 할 것 같습니다.

(보리암 주차장에서 인증샷)

- 정상에 설치된 봉수대, 아마 왜구의 침략을 알리기 위한 통신기지였겠지요.

- 정상에서 본 한려해상 전경 

-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2시 34분, 약 2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남해금산 인증샷 : 100명산 8번째 등정기념, 2013년 마지막 등산)

- 학봉산악회 100명산 탐방대의 원정은 지난 5월에 시작하여 년말까지 8개의 명산을 탐방하였습니다. 이런 추세로 라면 2023년까지는 별 무리없이 달성되리라 생각합니다.  계사년 한해동안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갑오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반듯한 산행은 쭈- 욱 계속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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