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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2. 00:00

문익환의 추억

지난 18일은 늦봄 문익환 목사님 가신지 2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소용돌이쳤던 역사의 한복판에서 한 치 두려움 없이 살다 가신 그를 추억하며 짧은 글 한 편 올립니다.

5공화국 독재 권력의 칼바람이 불던 시절, 목사님은 이 나라 전역을 누비며 시국강연을 많이 하였습니다.

우리지역에도 대학이나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문 목사님의 강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독재타도'의 사자후를 토했습니다. 건강한 몸도 아니고 체구가 크지도 않은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가 그의 몸에서 솟구쳤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면 문 목사님과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뒤풀이를 가졌는데, 모일 장소가 늘 문제였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 구하기가 마땅 찮았습니다. 주무실 곳 찾기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이유는 다 아실겁니다.

저와의 인연은, 이 문제를 해결키 위해 목사님을 제 집으로 모시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죠.

 

사석의 목사님은 강연 때와 전혀 딴 분이었습니다. 조용한 말씨와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끄셨고, 말씀 어디에도 가벼운 구석이 없었습니다. 생명과 자연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실사구시의 생활관을 실천하는 진지하고 해박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목사님의 관심은 오직,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뿐이었습니다.

리가 잘 아는 몇 분들에 대한 이야기 중 기억나는 몇 마디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목사님과 함께했던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는 “동주가 살아 있었으면 나는 시를 안 썼지, 동주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감히 시를 써?”라 하셨고,

동생이라 불렀던 백기완 선생에 대해서는 “기완이는 생이지지(生而知之)야,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알지, 하늘이 낸 천재야”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어머니 김신묵 권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 토막 들었습니다.

1919년 3월, 당신의 어머니는 북간도에서 10개월 된 장남 문익환을 업고 만세 군중에 뒤섞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시위 며칠째, 어머니의 귀에 무언가 큰소리가 들려서 흠칫 놀라 몸을 뒤로 돌렸는데, 갑자기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중학생이 쓰러졌답니다.

어머니가 그 순간 뒤를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업혀 있던 아들 문익환이 맞았을 총탄을 그 학생이 대신 맞았던 겁니다. 얼른 엎드려 학생을 일으켜보니 하필이면 머리에 맞아 벌써 숨을 거두었더랍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그 학생 몫까지 살아야 한다, 그 학생이 외쳤던 만세 소리를 기억하며 평생 민족을 위해 살아라”고 자신을 가르쳤답니다.

“어머님이야말로 평생을 나라사랑 민족사랑으로 사신 분이지….”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던 목사님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식사를 많이 드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내는 정성껏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따끈한 국물과 나물 한두 가지, 구운 생선 한 토막에 김치 정도였습니다.

식탁 앞에서 축원하는 목사님의 기도는 경건하고 엄숙했습니다. 한끼의 밥상도 가벼이 대할 수 없게 했습니다.

번은 아침 식전에 함께 산책길에 나섰는데, 갓 돋아난 소나무 새순을 따다가 나에게 내밀면서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어른 말씀에 못 하겠다 할 수가 없어서 입에 넣고 씹어보았지만 텁텁한 솔잎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싱긋 웃으며 송순(松筍)을 익숙하게 씹어 넘겼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요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른 아침 숲속에서 이슬 맞은 솔잎을 씹는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습니다.

목사님과의 인연 때문에 짧은 머리의 덩치 큰 사내들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교도소에서 의학공부하신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민중의학’이라는 책까지 내셨고 파스요법으로 아무 유명하셨죠.

어느새 30대 중반이 된 제 딸과 아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신 뒤 편지로 소상히 의견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보관하고 있는 문 목사님의 편지입니다.

 

한 때는 한글풀어쓰기 운동도 하셨습니다.

모음과 자음을 영어식으로 이어 쓰는 표기방식인데, 자음 중 'o'은 생략합니다. 예를 들어 ‘을지문덕’을 ‘ㅡㄹㅈㅣㅁㅜㄴㄷㅓㄱ’으로 써는 겁니다. 컴퓨터 시대를 내다본 혜안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런 식의 표기방법으로 직접 쓰신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둥글 둥글 한민족 한겨레 1984 12 11 늦봄 문익환’입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목사님 떠나신지 20년입니다.

이 나라에는 그의 삶을 존경하는 사람들과 아직 그를 빨갱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에 대한 저의 추억은 ‘사악한 시대를 온 몸으로 저항한 지식인’ 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꿈꾸었던 ‘민족의 통일’과 ‘가난한 사람들의 안녕’은 요원하지만 그 꿈은 지금도 이 땅 수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테지요.

문익환 목사님,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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