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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by 허정도 2014. 5. 6.

 

 

5일 어린이날,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별 생각 없이 가보았습니다.

이미 실종자가 5-60명으로 줄어든 탓에 팽목항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유족으로 보이는 분들보다는 저와 같은 방문객들과 자원봉사자, 기자, 경찰들이 많았습니다.

 

핏기 없는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흐렸고, 너나없이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햇볕이 뜨거웠지만 긴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끔 세월호 선원들에게 퍼붓는 욕설도 들렸지만 대부분 한숨과 탄식소리 뿐이었습니다.

먼 바다가 바라보이는 부두에서는 흐느낌도 더러 들렸습니다.

마치 5년 전 봉하 마을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아팠지만 절 더욱 아프게 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란 기적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갖가지 원인이 들끓어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그 현상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게 그 시대의 맨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이번 사고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사회의 맨 얼굴입니다.

짐작컨대 이 사태를 책임져야할 자리에 있는 분들은 이번 사고가 우리사회 맨 얼굴이 드러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겁니다.

현재 자신들이 맡고 있는 직책 때문에 표정 없는 얼굴로 유족을 만나고 카메라 앞에서는 진상과 책임을 운운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들은 우리사회가 이렇게까지 망가져버린 까닭조차 모를 겁니다.

 

때마침 일어난 서울 지하철 추돌사고에서 ‘가만히 있어라’는 안내방송 때문에 승객들이 더 많이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보도를 접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우리 사회는 돌이키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재난이 났을 때 누구 말에 따라야 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 국민들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어느 고등학생이 칠판에 썼다는 ‘OECD 대한민국 각자도생 불신지옥’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고 후 이 나라가 한 일이라곤, 바다 속으로 침몰해가는 세월호와 그 배 속의 삼백두 생명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중계방송한 일 뿐입니다.

책임져야할 자들이 죽음으로 빠져가는 눈 앞의 국민들을 구경만 하는 동안, 지도자가 그렇게 들먹였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중 삼백두 생명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두 번 다시없어야 할 참혹한 사고이지만, 앞으로도 우리사회가 세월호 같은 사고를 피해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제도를 고치고, 재난구조에 관한 매뉴얼을 다시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택한 방식 속에서 이런 사고를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마치 불이 난 원인도 모른 채 불조심을 하고, 물에 빠진 원인도 모른 채 물조심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두 허망한 믿음입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합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는 그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만이 지배하는, 힘의 쟁취와 탐욕이 난무하는, 무한 경쟁과 무한 성장의 늪으로 몰아가는 지금의 우리사회에 그 답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대통령은 국민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끌어가는 자들은 국민의 안위보다 대통령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금의 우리사회에 그 답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답은 분명 다른 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