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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8.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6. 공중욕탕

16. 공중욕탕

 

60여년 전 인구 2만을 넘지 못했을 때 신·구마산의 공중 욕탕을 손꼽으면 신마산 일인촌에 불로탕(不老湯), 앵탕(櫻湯), 구마산에 상반탕(常盤湯), 명호탕(鳴戶湯), 오동동에 조선인이 경영하던 곳이 고작이었다.

40여 년 전에는(구마산의 3개 탕은 폐업) 오처탕(吾妻湯), 오동동 입구 오동탕(午東湯) 그리고 현재 청락탕 자리(마분'馬糞'저장소)에 웅천 사람이 탕업을 차린 조일탕, 남성동 매립지에 소금탕, 현 철도 PX 이웃에 일인이 경영하던 곳과 철도 합숙과 기관구에 직원용의 큰 욕탕은 현재도 있다.

공동탕의 입욕료는 대인 5전, 소아는 3전에서 1전 5리까지며 월정을 하고 매일하는 사람은 1월 5전으로 4, 5전의 덕을 보게 되며 이웃 사람에게는 온정을 베풀어 무료 제공인바, 이것은 극장 이웃 사람들에게는 출입권을 주어 극장의 소란함에 대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다.

지금 마산에만 30수처가 있지마는 당시 마산에 목욕탕 수가 이 모양이니 인근 부락의 욕탕 유무는 불문가지 아닌가.

멀리 진영, 창원, 칠원, 진동 등지 주민들은 마산의 닷새, 열흘 만에 개장하는 장날을 틈타서만 간신히 목욕을 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웬만한 부락이면 욕장시설이 되어 있고, 경영이 곤란한 곳은 그 지방 면에서 보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농촌 주민의 보건으로 보아 매우 반가운 일이다.

여기 결미에 부언할 것은 북면의 마금산 온천 입욕료가 50원이라 하는데 농민의 위생관념 함양이나 경제 형편을 경영주가 참작해서 요금을 감하(減下)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일반의 고언이며 희망이라고 한다.

<1910년대부터 있었던 앵탕(櫻湯)이 앵화탕이란 이름으로 아직 존재하고 있다 / 신마산>

 

<공동탕의 시간범(視姦犯)>

불교와 기독교에서 남녀 간에 편연(片戀)하는 것도 오계 가운데에 간음이라고 했다.

더욱이 여성의 나체를 보는 것은 더 큰 간음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가리켜서 시간(視姦)이라 한다.

한때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한국에 건너온 사람들은 구주(九州) 땅 웅본천초(熊本天草)의 창기들과 토목업자들인데 이 자들은 대개 집안에서는 남녀가 벌거숭이 짓은 예사이고 보행할 때 맨발에 훈도시로서 태연하다.

한국 여성들은 집안에서도 버선을 벗는다는 일은 큰 수치로 여기며, 가두(街頭)에서는 얼굴을 가리지 않는 일도 금기로 되어 있던 시절인데,

일인들 집안을 보면 시부나 아비 되는 자가 전 나체로 혹은 욕탕에서 며느리 아니면 여식이 들어와서 등을 밀어주며, 여름에는 부채질까지 하는 것도 일가(一家)단란이라고 할지 모르나 이것은 남성들에게는 하등 환심거리가 안 된다.

일본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벌거숭이가 예사다. 창기가 아닌 그들의 주부 말이다.

더운 날 여름 석양쯤 해서 노변의 집 뜰에 출입문을 열어놓고 널따란 통에 앉아 목욕을 하며 아동주졸(兒童走卒)은 고사하고 어른들이 그 광경을 엿보면 수치가 웬 말이냐, 도리어 미태로써 대응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일인의 수가 늘고 구마산 방면으로 진출하는 상인들도 날로 증가하게 됨과 동시에 공중목욕탕도 생기게 되니 한인들도 점차 입욕하는 맛을 알게 되었다.

구마산에 처음 생긴 것이 상반탕(常盤湯)과 명호탕(鳴戶湯) 두 곳인데, 그 다음에 시설 불비(不備)한 욕탕이 생김으로써 남자의 시간(視姦)이 늘게 되어 목욕도 잘 하지 않는 자가 부질 없이 출입하게 되면서, 목욕탕 수입이 다소 윤택(?)하여졌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생긴 시간범(視姦犯)으로 여성이 등장했다.

동호(同好) 여성 2, 3명이 조를 지어 화입구(火入口) 창틈을 이용해서 뭇 남성의 각간물(脚間物)을 음미하는 중에도 육중한 것이 눈에 스칠 참에는 감격과 감탄을 억누르지 못하더라는 화부(火夫)들의 진술이다.

이런 경우와 비슷한 것은 시간(視姦)이 아니라 여성 자체가 은연중에 자기의 보림(寶林)을 남성이 시간(視姦)토록 하여 자기의 흥분과 목적을 달성케 한 일이 종종 있었다고 인부(人夫) 씨는 덧붙였다.

필자가 아는 시장의 한 상인이 매일 욕객으로 필자와 탕 내에서 자주 만났었는데, 여러 달이 지나도록 탕 내에서 볼 수 없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장사에 바빠 목욕할 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알고 보니 시간(視姦) 사건의 신문이 퍼지자 경찰에서 풍속 단속에 주의를 받던 욕탕주가 시간하던 곳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상인 선생은 자연 출입할 용무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그 상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의 청년시절 행적을 농조로 말했더니, 이제 희수(稀壽)도 훨씬 지나고 여타의 생각은 전연 없다고 쓸쓸히 말하였다.

이 사람을 보니 서양인의 자전소설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의 탄식하는 결론이 문득 머리에 스쳐간다.

‘명호로재! 아기로재(鳴呼老哉! 我己老哉 / 슬프다, 늙었구나! 내 이미 늙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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