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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9. 풀먹은 총순, 20. 쌍사슴표 성냥

by 허정도 2015. 6. 1.

19. 풀(糊) 먹은 총순(總巡)

마산 본주민으로 우리가 유시(幼時)부터 알기로는 총순(總巡)이라 칭하는 사람이 두 분인데, 한 분은 한부성 친부(親父)인 한총순과 정성호 친부(親父)인 정총순이다.

그런데 확실히 기억 안 되나 한성(서울) 경무국에서 출장 온 총순 한 분이 마산경무청(위치=현 구마산 오처탕 위의 공설시장) 청사(廳使 / 使童)에게 위장이 좋지 못하다 하여 밥을 먹을 수 없으니 미음을 끓여오라 하였다.

총순은 출발 차시간이 급박하였다.

명령을 받은 김응도(故)는 번개 같은 꾀가 났다.

그때는 다 엽전을 쓰던 때다. 엽전 두 푼(百푼이 일원)어치의 풀(糊-그때 풀은 쌀임)에다 설탕을 섞어서 끓여다 진상하였더니 총순 어른은 풀인 줄이야 알 턱 없이 신속하고 맛이 좋게 끓였다 하여 사환 김응도에게 칭찬이 대단했고, 상금(대금 5원)까지 주고 간 뒤 풀 먹고 상금 주었다는 소화(笑話)도 있었다. 

※ 총순(總巡)은 구한말 경무청에 속한 판임관(判任官)이다. 고종 32년(1895년)에 두었는데 경무관 다음 서열로 30명 이하의 정원을 두었다.

<일제기 한성 경무국> 

 

20. 쌍사슴표 성냥

일본의 동아연초(東亞煙草) 회사에 권연초(卷煙草, 골연이라고 와칭)가 이 땅에 들어옴과 때를 전후해서 들어온 것은, 물체의 그림자와 같은 성냥이 처음 수입된 것은 일본 신호(神戶)에 공창(工廠)을 둔 쌍사슴표(雙鹿票)로서 사슴 두 마리를 그린 포장 뒷면에는 한인들에게 선전하는 글이 있었는데 이러하다.

‘이 두 사슴표 성냥은 장마 때에도 불 잘 나고 대한첨군자(大韓僉君子)께서……’로 시작하여 모두 101자로 기입한 것으로 한 갑에 5리이며 일 전에 세 갑으로 팔았다.

그 외에 딱 성냥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아무데나 문질러도 딱 하면서 불이 나는 것이다.

쌍사슴표가 한국 전역에 독판 칠 때 이것에 대항하는 회사가 평양에 설치되었으나 원체 뿌리가 깊이 박힌 쌍록사(雙鹿社)를 제어할 길이 없는 평양 성냥회사에서 한 가지 간계를 생각해냈다.

즉 신호쌍록사(神戶雙鹿社)의 제품을 막대한 수량으로 구입하여 이것을 내근 사원은 제외하고 중견 고급사원만이 극비밀리에 시골로 옮겨 야음을 틈타 수 시간 동안 침수시켰다가 시중 판매를 함으로써 쌀록표의 신용은 일보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국내 각처에서 성냥 공장이 발족함으로써 그들의 독점기업도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마산에서도 구 상업학교 자리에 장곡천(長谷川) 성냥회사가 생겼다.<<<

<일제기 인천 성냥공장 내부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