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8.05.21 00:0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해방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전까지의 해방공간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표출하려는 다수의 도시 빈민들 및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 동포가 늘어나 주택수요에 비해 공급의 절대량이 부족했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敵産家屋)을 다투어 차지하려는 경쟁이 심화되었고, 19506월에 한국전쟁까지 발발해 그나마 있던 기존 주택마저 전란(戰亂)으로 파괴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주거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해방 후 귀환 동포들과 전쟁 피난민이 가장 많이 모여든 곳은 당시 한국전쟁 초기 임시 수도였던 부산이었지만 인접한 마산도 귀환 동포들과 전쟁 피난민들로 도시 인구가 급증했다.

갑자기 마산에 모여든 이들이 사용한 주거는 신포동과 월포동 및 중앙동 등에 있었던 일본군 창고와 노동자 숙소였다.

회원동에 있었던 일본군 말 사육장의 마구간도 주거지로 이용되었다. 이들은 보통 10-20 가구가 한 창고 안에서 칸막이도 없이 함께 살았다.

<가운데 음영이 짙은 직사각형 세 건물이 마산 회원동 일본군 말 사육장이다>

 

밑바닥엔 헌 가마니나 짚 혹은 판자조각 등을 깔았고, 비가 새는 지붕 밑에서 누더기 같은 이불이나 담요를 덮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판자를 주어다 칸을 막으니 마치 그 모양이 하모니카 같다하여 하모니카 촌이라 불렀다.

하모니카 촌의 집이 이 정도니 주방 설비는 더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지혜를 발휘, 창고의 콘크리트 바닥 한 부분을 깨내고 그 밑 부분의 흙을 넓게 파낸 다음 솥을 걸고 불을 때어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였다.

그리고 큰 깡통을 주워 모서리 부분을 잘라내고 편 것 여러 장으로 견고한 지붕을 만들고 시멘트부대나 비료부대 그리고 코르타르를 주워와 루핑을 만들어 창고 처마에 덧대어서 주거공간을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 외곽지역에 난립한 판자 집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도시 미관은 물론 화재가 났다하면 대형 화재로 번졌고 소방 차량의 진입에도 지장을 초래하였다.

또한 판자집 밀집지역에는 오물 처리도 쉽지 않아 전염병을 쉽게 확신시킬 우려가 있었으며 도범(盜犯) 방지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진주지역은 6·25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다. 이 때문에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인 19528월부터 기존의 주택을 보수하거나 신축하여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도시 정비 사업이 시작되었다.

1972년까지 20여 년간 시행된 대안지구 토지구획사업이 그것으로, 수정남동·수정북동·평안동·대안동·동성동·계동·상봉서동일부·봉곡동일부·인사동일부·남성동일부·본성동일부·중안동일부·장대동일부·봉래동일부 등 총 14개 동에 걸쳐 25만여 평 규모의 대대적인 주거지 사업이었다.

전쟁 후 적극적인 주택정책을 세우고 있지 못하던 정부는 1957년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외국자금에 의존해 긴급히 건설했던 임시 구호성 주택에서 항구적인 주택을 짓도록 유도하기 위해 민영 ICA주택(미국 국제협조처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자금을 융자해주어 지은 주택)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정부는 이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타입의 표준형 공동주택을 제시하였고 이는 곧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1958년 ICA주택 낙성식 후 주택을 둘러보는 참석자들>

 

이 정책은 시멘트 블록 벽에 외부는 시멘트 모르타르, 지붕은 슬레이트 기와를 이용한 현대적 감각의 주택들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게 했다.

단독주택의 규모는 대지 40평에 건물 15평 정도였으며 연립주택은 4세대가 한 동에 입주하는 2층이었다.

실내에 욕실을 배치하는 등 신개념의 평면구성 때문에 문화주택이라 불리기도 했다.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마산의 교원동에도 이런 집합주택이 있었다.<<<

 

 

 

 

Trackback 0 Comment 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5. 마치는 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숙소로 시작되었지만 당시..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1) 단지계획 2) 주동계획 가. 동선유형 주동의 동선유형은 주동..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1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주거환경은 기후와 지형 등 자연조건과 도로와 수목 등의 공공시설에..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0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6 1) 전면 폭 2) BAY 수 3) 실 구성 가.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9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1) 전면 폭 2) BAY 수 3) 실 구성 가.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8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4 1) 전면 폭 2) BAY 수 3) 실 구성 가.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7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3 2) BAY 수 대규모 단위주거가 아니라면 BAY 수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대원2지역이 건축되었던 198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6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단위주거 조합방식이 나타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편복도형식과 계단실형식..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5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아파트의 기원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집중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4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3 앞에서 본 것처럼 창원신도시의 계획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원칙들은 어디 내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최초의 의도는 건설과정에서..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2 창원 신도시에 주거용 건물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대부분 단독주택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주도한 조적조 2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1 수혈주거로 시작된 인간의 거주양식이 드디어 아파트라는 형식에까지 도달했다. 생활에 필요한 내외조건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달라졌고 인간의 삶을 담았던..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

<이번 포스팅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에 재건축 중인 '꿈에그린' 아파트 부지(아래 그림의 붉은 밑줄친 부지)에 존재했던 현대사원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을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던 글이다.> 목차..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8

Ⅳ. 맺음말 이 글에서 우리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일어난 1차 시위에 참가한 하상칠이라는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도출된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시위 참가 동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7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1) 보복 공포와 빨갱이 트라우마 2) 증언 결심 동기 하상칠은 그동안 증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날 밤 내 혼자만 싸웠던 것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