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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경남은 서북쪽은 소백산맥, 동남쪽은 바다에 면합니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대륙성기후라고 볼 수 있지만 바다와 가까운 지역은 해양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기온은 동남 해안에서 서북 내륙으로 가면서 낮아지며 연 평균 강수량도 이와 비슷합니다. 경남 주거문화의 형성과 발전은 이와 같은 자연적 특성의 산물이며 그 궤적은 경남지역의 역사 및 문화 발전과 같이 해왔습니다. 글은 시기에 따라 다섯 항목으로 나누었습니다. 1)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3) 해방이후부터 제4공화국(197.. 2018. 4. 16.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리가 극장에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장내마이크에서 ‘지금 밖이 시끄러우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들려왔다. 관객들이 욕설 섞어 돈(입장료)내놔라’고 고함친 것은 당연한데, 그것도 잠시, 갑자기 극장 전체에 불이 나가버렸다. 그때서야 심상찮은 낌새를 느낀 관객들이 아우성을 치고 밟고 밟히며 밖으로 나왔는데, 손을 꼭 잡고 나온 우리 둘이, 극장 문 앞에서 주로 아래쪽으로 밀려가는 사람들 따라 가다가, 남성동파출소 쪽의 상황을 보고는 대강이.. 2018. 4. 9.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길었고, 나머지 대부분도 자유당 각료들과 국회의원들 이야기였으며, 조병옥, 장면 등 야당정치인 몇명의 이름도 본 것 같다. 거기에 이용범도 올라있는 걸 기억하는 건 당시 그의 이름이 마산 창원을 통털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많이 쓰는 신사정치인’ 정도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여당에 오히려 누가 될 ‘희작’이 되었겠지만, 그때 나의 머리엔 그런 인식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엔 여당성향의 우리집.. 2018. 4. 2.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한평 없어 어차피 얻은 구장집 머슴자리 지켜 새경 모은 것으로 동네 가난한 처자와 눈맞추어 토백이처럼 산 김씨 같은 사람도 있었다. 또, 부두노동으로 돈 모아 논밭 사둔 것이 나중에 개발되어 알부자 소리를 들은 천씨 같은 사람도 있고, 개울가 움막 같은 초가에 살았던 박씨처럼 어설픈 재인 노릇하다 결국 좀도둑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삶을 마감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며 난민생활을 하는 일은 196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 2018. 3. 26.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기합이라하여 상급생이 하급생들에게 거의 합법적으로 가하는 폭력, 그래서 항상 긴장해야하는 학내외 생활, 동급생끼리나 동네친구 나아가 또래급끼리의 쟁투를 위한 몸과 주먹 단련, 학교끼리의 패싸움으로 인한 모표, 교복 살피기 등등이 일상생활의 상당부분을 지배했던 것이다. 군사교육 강화로 인한 계급의식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정적 인간관계의 매마름이나 자유당정권의 깡패문화 등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며, 반자립적인 사대문화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쨋든, 딱히 잡히는.. 2018. 3. 19.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사색의 공간’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처음에 지어질 때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출처 - 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 (http://www.auric.or.kr/) 현재의 이 곳은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운, 또다른 의미의 멋진 정원이 되어 있습니다. '휴식과 사색’ 을 포용하는 좀 더 넓은 기능의 공간이 되어간다는느낌이며, 이러한 느낌은 녹색 지붕의 정원 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자연스레 생겨납니다. - 수생 식물원 녹색 기둥의 정원을 돌아나와 도달하는 곳, .. 2018. 3. 15.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마치는 행사였으며, 선수 수는 30명, 경기 시간은 30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술한 바처럼, 청수(淸水)들판 오른쪽 동네(봉덕동, 봉암2동)와 봉암다리쪽 동네(봉암동, 봉암1동)를 시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는 통에, 한 팀이 되었다 분리되었다 했지만, 성적은 분리되었을 때의 성적이 훨씬 좋았다. 여러 번 우승한 것도 그때였다. 그때 우리 동네는 비록 떨어졌어도 한동네라는 의식이 강했기에 함께 모여 응원도 하고 밥과 술도 같이했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 군데군데에 각 동의 선수와 응.. 2018. 3. 12.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생태공원으로 개관한 것은 2002년 4월 26일, 햇수로 16년째 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엔 어땠을까요? 겸재 정선, 선유봉, 1742, 비단에 채색. 출처 - blog.naver.com/pfloyd56/90008180704 선유도는 원래 '선유봉' 이라는, 40m 높이의 아담한 바위산 이었습니다.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 라고 이름이 붙여질 만큼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는 명소 중의 하나였던 선유봉은 1925년 큰 홍수 이후 한강의 제.. 2018. 3. 8.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같은 데에 담아 팔았고 대팻날 같은 데에 얼음덩이를 올려 즉석에서 갈아 팥, 향료, 설탕 등을 얹어 주던 빙수는 접시나 사발에 담아 팔았었다. 거기에 비해 아이스케키는 공장을 두어 제조했고, 보온 질통에 넣어 거리에 다니면서 파는 아이들이 마산에만도 이백 명이 넘을 정도로 판매규모가 방대했었다. 한편으론 어려운 집들의 청소년들이 학업도 포기해가면서 다투어 나섰기 때문에 더 붐이 일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어쨌든, 당시 도심 거리에 나가면 여기서 아이스케키! 저기서 께에끼! 그러다 한.. 2018. 3. 5.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바닥을 보았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민얼굴이기도 했다. 내내 참담했고 암울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도시개발로 버림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과 눈물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성남시가 된 광주대단지 철거민의 실상(1971)이 가장 먼저 터진 사건이었다. 압권은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6)’이었다. 영희의 다섯 가족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개발독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었다. ‘난쏘공’이라 부르며 숨어서 읽었던 불온서적(?)이기도 .. 2018. 3. 1.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情)이란 영화에서도 큰 흥미는 못 느꼈었다. 영국 명우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주연의 명화였으나 선생님들은 좋았겠지만 중1짜리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폭발시킨 영화는 중2 때 본 ‘셰인(SHANE)’이었다. 「부림동에 있는 국제극장(1948년 부림극장으로 개관했다가 1950년 국제극장, 1956년 강남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4년 폐관하였고 2008년 건물도 헐려 지금은 오피스텔이 들어서있다)에서 본 그 영화는 그 후 한참동.. 2018. 2. 26.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다. 우선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 미술관,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의 이미지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Tate Modern seen from the River Thames : 출처 - www.geograph.org.uk 직접 가 보진 못했을 지라도 이름은 한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테이트 모던은 연간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영국 런던의 명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미술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화력발전소 건물 겸 수련 기계공 및 전기공 양성기관이었.. 2018. 2. 22.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3년 동안엔 거의 매일 바냇들 길로 다녔었다. 등교 땐 공군병원 스리쿼터를 많이 탔지만 하교 땐 거의 빠짐없이 그 길로 다녔다. 당시엔 모든 학교가 오후 세시경이면 파했기 때문에 부림시장, 철로, 바냇들에서 구경하고 장난칠 여유가 좀 많았었다. 바냇들은 용마산과 문둥산(반월산을 두고 그 땐 그렇게 불렀다. 거기에 한센일들 집단 수용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 꽤 넓은 들을 말하는데 동쪽 끝은 국도2호선, 서쪽 끝은 회원동 창신농업고등학교(현 회원동 한효아파트)까지를 대강 그렇게 .. 2018. 2. 19.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이 흉내 내는 데 따라 짚 뭉치 잡고 던지고 뺏으면서 듣기만 한 럭비를 한답시고 빈 밭고랑과 둑을 쓸던 기억도, 푸석푸석한 밭이라 살이 아프지 않아 좋았던 느낌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고무로 된 공을 본 건 전쟁 중 반쪽 운동장에서 처음이었던 것 같고, 가죽으로 된 공을 만져본 건 정전 전후였던 것 같다. 군용물자들이 대거 민간에 불하되어 시중에 나오면서 고무제품이나 가죽제품들이 가공되어 우리들에게 까지 영향을 준 것 같다. 까만 고무주머니에 바람만 넣은 공이었지만 보통 아이들이 가지.. 2018. 2. 12.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 우리들의 선망대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특히 뛰어난 기량을 보였거나 남다른 재능이나 인기 끌 요소까지 겸비한 선수는 우리들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우리들 의식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기도 했다. 매년 8월 15일이 되면 방학 중인데도 모든 학생들은 등교하여 기념식에 참석해야 했다. 식이 끝나면 바로 시가행진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마산 인구는 전쟁 피난민이 보태져 10만 명이 조금 넘었을 정도였는데도 도로가의 시민들 참여도도 높고 하여 지금 세태로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장관을 연출했던 것.. 2018. 2. 5.
기억을 찾아가다 - 15 15. 정전 후의 체험들 Ⅵ - 공군 요양소 우리 동네 대여섯 채의 적산가옥(일본인들이 살던 집)들은 다 불하되어, 동네 사람들이 들어갔지만, '봉선각'은 그 얼안이 커서(500평은 되었을 듯) 동네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내었던 듯 한동안 비어 있었다. 그러다 시내의 누군가가 임대하여 영업을 했던지 한때 장구소리를 듣기도 했었는데, 시국이 시끄러워지고 팔룡산 꼭대기에 봉홧불이 오르고, 곧이어 전쟁이 나고 하면서 봉선각은 폐가로 되어갔고, 우리들도 거기 가길 꺼려했었다. 그래선지 내 어렸을 때 거기에 얼킨 이상한 얘기들 – 밤 되면 말 달리는 소리도 들리고, 여자 울음소리도 들린다는 투의 괴담들 –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곳이 부활한 건 공군 병원이 들어오면서다. 정전 직후부터 오륙년 동안 주둔했었는데,.. 2018. 1. 29.
건축의 외형 - ‘(조개)껍질’ (Shell) 지난주의 새둥지에 이어 또다른 자연물의 형태인 '조개껍질' 형태의 건축물 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건축에서 shell 이라고 하면, 셸구조(shell 構造) 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겠습니다만, '건축의 외형' 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가고 있으므로 외부 형태를 표현하는 단어로 지칭하여 보겠습니다. - 다롄 조개 박물관 (Dalian Shell Museum, 중국, 2009) 출처 - www.archdaily.com 전 세계에서 5,000종 이상의 조개껍질들을 전시하고 있는 중국 다롄 의 조개박물관 은 말 그대로 '조개껍질' 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로 18,000 제곱미터 (약 5,500평) 정도의 전시공간을 품고 있는 이 박물관은 조개의 '입' 부분의 커다란.. 2018. 1. 25.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Ⅴ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것이나 군에서 불하한 것들이었는데, 차종에 관계없이 크기가 좀 작고 연하게 생긴 것은 일제(일본제품), 크고 견고해 보이는 것은 미제(미국제품), 개조한 차들은 선제(조선제=국산)라 불렀다. 차에 호기심들이 많았던지라 지나가는 차들을 그렇게 분류하기를 즐겼고, 종종 분류를 다투기도 했다. 이 용어들은 한참동안 옷, 화장품, 학용품 등에서도 쓰였다. 60년대 서성동 버스 종합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 회사 별로 여기저기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주로 오동동, 창동, 남성동에 있었는데, 회사가.. 2018. 1. 22.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동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아니든 간에 완성된 형태가 자연과 닮아있는 경우들도 생겨났습니다. 오늘은 ‘새둥지’ (Bird’s Nest) 라는 주제를 가지고 와 보았습니다. - The Reading Nest (미국, 2013) 출처 - www.markreigelman.com 건축에 조금은 가까운 설치미술가 혹은 예술가 라고 해야 할까요? 홈페이지의 소개란 에서부터 작업들 까지 유쾌한 (누군가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Mark Reigelman (http://www.markreigelman.. 2018. 1. 18.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총선 이후였다고 생각된다. 참고 ; 자유당 전성기 건설업계는 이용범의 대동공업, 황의성의 조흥토건, 김용산의 극동건설, 이재준의 대림산업, 정주영의 현대건설, 조정구의 삼부토건 다섯 회사가 지배했다. 고장이 나면 불편이 컸던 양덕교(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정문 앞의 다리, 지금은 복개되어 다리로 인식되지 않는다)를 두고 불평과 비난의 말들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에도 공사자나 회사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을 보거나 들었던 기억은 없다. 지금처럼 시공사의 이름을 써놓은 입간판 같은 건 그땐 .. 2018. 1. 15.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주변의 수많은 원통형태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의 형태 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모두가 아는 건축일 터인 피사의 사탑으로 오늘의 주제인 '원통' 을 시작해 봅니다. - 피사의 사탑 (Leaning Tower of Pisa, 이탈리아, 1173~) 출처 - pixabay.com 유명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 시의 피사의 사탑 입니다. 약 58의 8층 .. 2018. 1. 11.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왔고, 다른 두 분은 정전 한참 후 제대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우용 아저씨는 볼에 큰 흉터를 가지고 왔는데, 내 당숙은 손끝 하나 다친데 없었다. 부대가 후퇴할 때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다 열차탈선으로 부대원 전체가 부상 혹은 사망을 당하여 모두 상이용사로 제대되었는데, 집결지에 늦게 가 열차를 못 탄 당숙도 함께 상이제대 되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동네사람들의 화제 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참동안 소식이 없어 죽은 줄만 알았던 남규 아저씨의 귀환은 우리들에게 상당한 인.. 2018. 1. 8.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명이 사용된 방식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표면 내지 외피의 시각적 강렬함을 가지게 되는 '타공판'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 Quality Hotel Friends (스웨덴, 2013) 출처 - www.archdaily.com 스웨덴 건축가 Karolina Keyzer 와 스웨덴 건축회사 Wingårdhs 의 협업으로 설계된, 객실 400개 규모의 호텔 입니다. 모든 창문을 3가지 크기의 원형 으로 디자인하여 멀리에서 보면 건물 왼쪽 위에서부터 마치 .. 2018. 1. 4.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2018. 1. 1.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igital photo frame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으며, 액자 자체가 예술품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액자의 형태와 재질, 방식 등이 달라져도 '평면의 어떤 것을 담는 장치' 임은 변하지 않을 듯 합니다. 건축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인간의 삶' 을 담아내겠지요. 그러한 나름의 유사성을 생각해 보며, 오늘의 주제는 '액자' 로 잡아보았습니다. - 김옥길 기념관 (대한민국 서울, 1999) 출처 - 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 2017. 12. 28.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군에서 불하된 차들을 개조한 것이었다고 했다. 화물차는 약간만 고쳐서 다니는 것으로 보였고, 버스는 엔진만 쓰고 껍데기는 드럼통 등을 두드려 맞춘 것이었다고 들었다. 어떤 차든 그때 우리들 사이에선 차타본 경험이 큰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봉암동에서 양덕동으로 조금 나오면 양덕교(수출자유지역후문앞)로 오르는 고개가 지금보다 높게 있었는데, 당시 화물차의 엔진 힘으로는 그 정도의 고개에서도 힘들어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거기에서 차에 기어 올라.. 2017. 12. 25.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흔한 형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규모의 건축물에서 다양한 이유로 차용되고 있습니다. - 치첸이트사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 (El Castillo, Chichen Itza, 멕시코, 8~12세기)출처 - en.wikipedia.org 마치 거인의 야트막한(?) 전망대 같기도 한,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도 등재된 고대 마야족 도시의 대유적 치첸이트사 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건축물이며, 관광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야의 뱀신 인 쿠.. 2017. 12. 21.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였던 기억은 없다. 아마 선생님의 설명을 통하여 상황인식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정부에선 백두산까지 밀고 올라가 통일하자고 했는데 유엔이 정전을 강행했다는 것만 알았다. 혼자서 수류탄을 들고 적 탱크 밑으로 들어가 산화한 전쟁영웅 열 명의 사진에 간단한 설명을 붙인 소의 ‘육탄 십 용사’포스터가 교실 벽마다 붙었고, 그들은 한동안 ‘반공웅변대회’의 중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각 학교에서 ‘반공강연회’가 수시로 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2017. 12. 18.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상징 이기도 한 초승달의 형태를 건축에서 차용한 예를 소개해 봅니다. - The Crescent House (영국, 1997) 출처 - www.makearchitects.com/ 1977년부터 2004년까지 foster and partners 의 파트너 로 재직하다가 Make architects 를 설립한 Ken Shuttleworth 본인과 그 가족을 위해 설계한 Crescent House 입니다. 아무래도 건축주와 건축가가 동일인 이다보니 여러 건축상을 수상한 이 건축의 독.. 2017. 12. 14.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이들에겐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1~2주에 한번 씩 하는 검사는 대체로 손발의 때 검사만 했기에 부담이 덜했지만 매 달하는 ‘총검사’는 팬티만 입혀놓고 했기에 그 전날부터 대비하느라 많은 고생들을 했다. 한 학년 차이의 내 여동생에게 들어서 알고 있거니와, 여학생들에게만 실시한 머릿니 검사도 역시 생활환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 같다. 영양상태가 좋은 아이들은 피부에 윤기가 돌고 때도 잘 끼지 않을뿐더러 씻어내기도 쉬운데, 당시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 반대.. 2017.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