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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7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3


2) BAY

대규모 단위주거가 아니라면 BAY 수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대원2지역이 건축되었던 1980년경에 지어진 60는 전부 2BAY였고 85규모의 계단실형 아파트도 대부분 2BAY였다. 최근은 두 규모 모두 3BAY, 심지어 4BAY까지 출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BAY 수는 채광이 양호한 쪽의 실 개수를 말한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BAY 수는 모두 2BAY이고 북쪽은 3BAY이지만 새경남아파트와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경남아파트는 남북 두 쪽 모두 2BAY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동양상가아파트의 경우 주방과 거실 및 작은 방으로 구성된 3BAY이고 북쪽이 큰 방 두 개로 구성 2BAY이다.

 

3) 실 구성

.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규모가 작은 아파트일수록 한정된 면적을 각 실에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거실, 식사실, 부엌 등 공실의 구성계획이 평면의 가장 중요하다.

전체 평면에서 이 부분이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동선이 용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 구조는 거실과 식사실, 그리고 부엌을 모두 가지고 있는 평면이다.

비교적 넓게 개방된 거실(L)과 식사실 겸 부엌(DK)을 공간적으로 연결하여 구성하는 방식(L+DK)이 대부분이다. 좁은 공간에서 활용도가 높은 이 방식은 시기별로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공실의 면적은 1980년대에는 평균 23정도였으나 이후에는 조금씩 좁아지는 추세였다. 침실의 숫자와 관계가 있다. 85에서는 28.59정도의 평균면적을 가졌는데 이런 규모는 큰 변화가 없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공실은 다음과 같다.

현대사원아파트, 대원아파트, 쌍용아파트 ; 전형적인 LDK 방식으로 남쪽으로 개방된 거실에 식탁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다.

현대사원아파트의 부엌 조리대는 가로세로 1.7m의 크기로 좌측 방 쪽에 원볼 타입의 개수대가 우측 베란다 쪽에 가스렌지가 배치된 형태였다.

조리대는 당시 아파트에 대량으로 제작 납품하던 중급 제품이었다. 베란대 쪽으로 약 폭 1.2m×높이 0.4m 정도의 환기구가 있었고 조리대가 접한 벽은 타일 무늬의 비닐벽지가 붙여져 있었다.

 

<현대사원아파트의 거실, 식당, 부엌 (LDK)>

 

<현대사원아파트의 부엌 조리대>

 

<대원아파트의 거실, 식당, 부엌 (LDK)>

 

 새경남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거실(L)은 없다. 하지만 부엌과 연결되는 방이 두 짝의 미서기 문으로 되어 있어서 가족 수에 따라 거실로 전용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있다. 소형아파트에서 채택되던 평면형이다. 식탁은 부엌과 연결(DK)되어 있다.

새경남아파트 부엌 조리대는 원앙리빙키친이라는 브랜드이다. KS마크가 선명한 이 브랜드는 당시 꽤 수준 있는 브랜드였으며 지금도 생산되는 제품이다.

 

<새경남아파트의 식당, 부엌 (DK). 두짝 미서기문이 달린 방이 보인다>

 

<새경남아파트 싱크의 브랜드>

동양상가아파트 ; 거실과 식당 주방이 연결된 LDK 형식이지만 다른 아파트가 남북으로 이어진 것과 달리 남쪽에 거실과 주방이 배치되고 그 사이에 식탁이 놓인다.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연결되는 거실이 부엌과 연결되기 때문에 개방감이 높았을 것이다.

 

<동양상가아파트의 거실과 연결된 남쪽 부엌. 거실 쪽에서 촬영>

 

경남아파트 ; 거실이 없고 부엌에 식탁만 놓인다(DK). 대신 각 방으로 진입하는 문앞 공간이 넓어 결과적으로 부엌이 넓어 보이는 구조이다. 부엌 맞은 편 방 문이 두짝 미서기가 아니고 외짝 여닫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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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6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단위주거 조합방식이 나타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편복도형식과 계단실형식으로 양분되어 정착하였다.

박노학의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단위주거 평면계획 변화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편복도형은 아파트 주거동 형식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85규모 중심으로 계단실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1990년대부터는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시기부터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설비가 보편화되었고 무엇보다 땅값과 건축비가 급등하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고 거주자들의 선호경향도 편복도형에 비해 거주성이 양호한 계단실형으로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각 아파트 위치 및 구분>

 

면적에 따라 변화의 시기 차이가 있었다. 전용면적 60규모의 경우 1990년 이전까지 대부분 편복도 형식이었다가 90년대 이후 계단실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원2구역 아파트 역시 이런 대세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약간 이른 시기에 계단실형을 선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층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원2구역의 경우 계획도시 창원이 도시경관 관리를 위해 적용한 고도제한에 의해 5층으로 층수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내부공간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했다. 여기서는 아파트 내부공간의 일반적인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의 변화를 살펴본다.

설명 시 구분이 용이하도록 7개로 나누어진 단지 내 아파트 군을 <그림 7>처럼 번호화(numbering)하였다. 번호 순서는 편의상 북단의 현대사원아파트부터 시작하여 최남단의 대원경남아파트를 마지막으로 ~로 정하였다.

같은 동 내에도 단위세대의 규모와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단위세대 별로 정리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각 동에서 기본이 되는 한 세대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 ) 내는 그림에서 표기된 명칭이다.

현대사원아파트(2) ; 가동 108(현대아파트) / 1984년 준공

새경남아파트(6) ; 3101/ 1986년 준공

대원아파트(2) ; 나동 105(대원맨션) / 1984년 준공

쌍용아파트(14) ; 5106/ 1982~2001년까지 수 차례 준공

동양상가아파트(3) ; B111(동양아파트) / 1981년 준공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3) ; C114/ 1984년 준공

경남아파트(4) ; 2101/ 1985년 준공

 

1) 전면 폭

전면 폭은 단위주거의 전체적인 평면구성 그리고 거주생활의 쾌적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향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주거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박노학의 연구에 의하면 대원2지역과 같은 판상형의 경우 전용면적 60의 경우 2000년대까지 평균 6.80m에서 7.24m 사이의 길이를 보이고 있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 현격히 넓어졌다.

또한 전용면적 85규모의 전면 폭은 2000년대 이전까지 평균 9.00m에서 9.49m 정도의 범위를 보였다. 단위주거 평면의 전면 폭/깊이(W/D)의 비율은 전용면적 60규모의 경우 2000년대 이전까지 0.7이하였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전면 폭은 다음과 같다. 표기된 폭은 거실이 배치된 남쪽이며 ( )안의 치수는 북쪽 치수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적용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전면 폭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원아파트 ; 7.2m (8.4m)

새경남아파트 ; 6.6m (5.4m)

대원아파트 ; 6.0m (7.6m)

쌍용아파트 ; 6.0m (7.3m)

동양상가아파트 ; 7.8m (6.5m)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6.6m (5.2m)

경남아파트 ; 6.6m (5.2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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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4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3

 

앞에서 본 것처럼 창원신도시의 계획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원칙들은 어디 내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최초의 의도는 건설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건설 후 관리과정에서 더 손상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백년대계가 되어야할 도시정책이 갈지()자 걸음을 걸은 탓이다.

대원2구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간대자본 투입이 용이치 못해 단지를 소규모로 나눈 것이 대원2구역의 가장 큰 문제였다.

소규모로 분절된 부지로서는 도시계획에서 내세웠던 아파트 단지 계획의 여섯 가지 원칙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계획 당시 창원 신도시 조감도>

 

창원공단 조성 2년이 경과한 1976년 말에는 공단에 58개 업체가 입주하였고 그중 18개 업체가 가동에 들어가 6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기타 건설관련자 등 인구 유입이 확대일로에 있었다.

이런 여건을 배경으로 주거지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77년 말경이었다. 택지개발을 착수 시기별로 나누어보면 197717개 지구, 197811개 지구, 19791개 지구, 19871개 지구 등이며 91년까지 39개 지구가 완료되었다.

대원2구역이 속한 두대지역은 이중 가장 먼저 시행되었으며 면적은 56.73였다. 두대지역의 택지조성은 773월에 시작해 819월에 완공하였으며 주용도는 단독주택 및 아파트 단지였다.

공단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과 공단에 입주한 기업체 직원들을 위한 주거용지였다.

개발방식은 전면매수에 의한 공영개발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저렴한 가격의 안정적인 택지공급에 역점을 두었다. 철거 원주민과 이주민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택지는 조성원가로 공급하였다.

택지조성이 가장 빨랐던 두대지역의 대원2구역 아파트들은 대부분 80년대 초중반에 지어졌다. 시범주택으로 77년 지어진 세플러 사원아파트도 있지만(법적 사용승인은 8493) 나머지 모든 아파트의 건축시기가 80년대 초중반이다. 택지조성이 가장 앞섰듯이 건축공사 시기도 빨랐다.

아파트가 주거문화로 정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부터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의 홍수는 198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주택 2백만 호 건설공약 때문이었다. 대원2구역 아파트 건설이 대부분 끝난 뒤였다.

2백만 호라는 애당초 무리한 주택건설정책은 노태우 정권 내내 시행되었고 창원지역에도 영향이 크게 미쳤다.

비민주적인 권력의 행태가 언제나 그렇듯이 중앙정부가 결정한 정책은 일선 행정기관으로 하달되었고 그에 따라 경남도청 및 각 시군의 담당국과에서는 매일 주택건설 독려에 혼신을 다했다.

자연히 도에서 한 해 지어야할 주택의 량이 할당되었고 그렇게 할당된 양은 각 시군으로 재할당되어 시군 주택건설 목표치가 되었다.

주택 2백만 호 건설로 열린 아파트 시대는 민간건설업체에 의한 브랜드아파트를 등장시켰고 이에 따라 각 건설사의 아파트들이 내용에서 약간씩 차별화되었다.

대량공급이 시작되면서 아파트들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건설에 효율적인 획일화된 블록배치가 대부분이었다.

주택 2백만 호 건설로 인해 아파트건설이 규모와 내용에서 많이 달라졌지만 대원2지역의 아파트가 80년대 초중반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직접 관련은 크게 없다.

  새롭게 사람들 앞에 나타난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미래에 어떤 가치를 가질 것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아파트가 우리 주택양식의 주류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문가마다 의견이 달랐다.

아파트가 미래 한국사회의 주류 주거양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었고, 아파트는 단지 전환기의 주거수단일 뿐 장기적으로는 단독주택의 대체수단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대원2구역의 아파트들은 창원신도시 주거양식의 선도적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윤장섭은 아파트를 주택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평면적으로 교외로 확장됨에 다라서 도시주변의 농경지가 침해될 뿐 아니라 도시의 급속한 확장에 다른 교통문제, ·하수도, 전기, 기타 각종 공공시설들의 해결안 등의 불합리한 점을 막기 위해서 주택을 고밀화 시킨 것 이라고 정의했다.

이 견해에 따른다면 신도시 창원이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원2구역 일대를 시작으로 대량의 아파트를 공급한 정책은 시간과 공간적 측면에서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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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

 

<이번 포스팅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에 재건축 중인 '꿈에그린' 아파트 부지(아래 그림의 붉은 밑줄친 부지)에 존재했던 현대사원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을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던 글이다.

 

 

목차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5. 마치는 글

 

 

1. 시작하는 글

19721017일 유신헌법 체제로 시작된 제4공화국은 공업입국을 위한 기계공업의 요람지로서 1970년대 중반부터 창원공업단지(이하 창원공단)를 개발하였다.

창원공단은 국제적인 규모의 기계류 공장을 집단화함으로써 기술집약적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관련 기계류 공장의 전문화와 계열화로 투자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계공업단지이다. 

당시 마산시에서 동북쪽으로 14km 떨어진 창원지역을 기계공업단지로 결정한 요인은 다음과 같다.

포항·울산·구미·부산·마산 등 다핵적 공업벨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및 경전선과 진해선의 철도분기점이면서 마산항을 끼고 있어 물류이동이 유리하다.

표고 500800m의 구릉에 둘러싸인 1,500만평의 광활한 평지형 분지를 확보할 수 있다.

지반이 견고하여 중량물 공장 건설에 유리하다.

낙동강으로부터 송수가 가능하여 공업용수와 생활용수 확보가 유리하다.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 등 천연조건이 기계공업에 적합하다.

수림이 울창한 작은 구릉이 점재하고 있어서 경관이 아름답다.

 

이상과 같은 입지조건을 배경으로 시작된 창원공단에 건 제4공화국의 기대와 계획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국가의 기계공업을 이끌어갈 대규모 종합기계공업단지를 조성한다.

시험연구소 및 기술교육기관을 통해 우수한 기술자와 기능공을 양성하는 산업교육기지로 발전시킨다.

창원대로를 경계로 남서쪽에 공업단지를 건설하고 이와 조화시켜 창원대로 북동쪽에 새로운 산업도시(이하 창원신도시)를 건설한다.

 

이러한 기대 속에 세워진 창원신도시 건설의 기본방향은 건전한 도시기반의 구축, 쾌적한 환경 조성, 도시기능의 정비, 사회복지 및 후생의 증진, 교육문화 및 인력개발, 도시미관의 정비, 도시의 개발, 도시계획의 추진 등이었다. 이를 토대로 작성된 기본구상도가 아래 그림이다.

<1973년 대통령비서실 문서 속의 창원기계공업기지 기본구상도 / 출처 ; 대통령기록관>

 

추진 일정은 1975년을 기준연도로 하고 77년을 계획연도, 86년을 목표연도로 잡았다. 경기도 반월, 전남 여수와 함께 무에서 유를 만든 신도시로 우리나라 도시발달사의 획기적인 사례였다.

신도시의 개발계획은 3단계로 나누어 시행하기로 했다. 그 중 주거시설은 제1단계(7779)18,190호의 주택과 공공시설, 2단계(8082)61,520호의 주택과 공공시설, 3단계(8386)94,076호의 주택과 공공시설을 건설하도록 계획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의해 도시 곳곳에 택지를 개발하였는데 대원2구역이 자리한 두대지역이 최초로 개발된 주거단지였다 

창원공단과 신도시 건설조성 과정에는 토지수용과 이주민대책이라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보상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지역주민의 피해가 컸다.

불가피한 진통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창원공단과 신도시는 이들 원주민의 피해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총규모 1,470만평에 달하는 전래의 전답·대지·임야·주택·생활시설·도로 등을 모조리 갈아엎은 뒤 공단과 신도시를 조성했기 때문에 토지매수와 지장물 철거, 그리고 대대적인 거주민 이동이 이루어 졌다.

외동·내동·남산동 일대 15개 마을이 걸쳐있던 주민은 용호동에, 적현단지 주민은 외동에, 삼동·완암·귀곡·안민단지 주민은 두대동에 각각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택지를 분배하였다.

원주민들에게는 조상의 뼈가 묻혀있는 곳이자 생활을 기탁해온 보금자리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떠나야했기 때문에 시대가 요청한 이향(移鄕)은 이주민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는 심각하였다.

 

<19789, 실향민들과 공무원 사이에 벌어진 몸싸움 / 2001년 창원의 옛모습 사진전>

 

택지를 분양 받았다고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축비가 없어 집을 짓지 못하고 땅을 되파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집을 짓다가도 돈이 모자라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제2의 이주민도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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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

<이번 포스팅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에 재건축 중인 '꿈에그린' 아파트 부지(아래 그림의 붉은 밑줄친 부지)에 존재했던 현대사원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을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던 글이다.> 목차..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8

Ⅳ. 맺음말 이 글에서 우리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일어난 1차 시위에 참가한 하상칠이라는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도출된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시위 참가 동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7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1) 보복 공포와 빨갱이 트라우마 2) 증언 결심 동기 하상칠은 그동안 증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날 밤 내 혼자만 싸웠던 것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