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9. 1. 21.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9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1) 전면 폭

2) BAY

3) 실 구성

.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 침실

다. 다용도실

. 욕실

전용면적 85규모의 경우 1980년대 중반부터 2개의 욕실을 두는 평면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1개였다.

하지만 60규모는 면적의 한계로 1개의 욕실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60의 경우도 1998년 안목치수 도입 이후 실질적인 면적 증가로 소규모의 욕실이 추가되는 평면도 출현하였다.

1개의 욕실을 가진 60규모 아파트의 경우 욕실면적은 2000년대까지 평균 4.32였고 85규모는 욕실 1개였을 때는 대략 5~6, 2개일 때는 7~8였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욕실 수는 각 세대별 1개 였으며 넓이는 타 아파트와 유사하다.

각 욕실의 면적은 다음과 같다.

현대사원아파트 ; 1.6×2.4 = 3.84

새경남아파트 ; 2.0×2.7 = 5.4

대원아파트 ; 1.6×2.5 = 4.0

쌍용아파트 ; 1.8×2.1 = 3.78

동양상가아파트 ; 1.8×2.2 = 3.96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1.9×2.7 = 5.13

경남아파트 ; 1.8×2.7 = 4.86 

각 욕실 안에는 샤워기가 장착된 욕조와 세면대 및 양변기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넓은 면적의 욕실에는 세탁기가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조사 당시에는 많은 세대들이 욕실을 보다 넓게 활용하기 위해 욕조를 철거하고 샤워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욕실에 세탁기를 놓을 수 없는 세대에서는 세탁기를 베란다에 두었는데 베란다에 연결된 하수관은 우수관이어서 오수관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세탁기 배출수 때문에 하천 및 나아가 마산만의 오염원이 되기도 했다.

 

<현대사원아파트 욕실 내부>

<새경남아파트 욕실 내부>

<대원아파트 욕실내부>

<동양상가아파트 욕실내부>

<경남아파트 욕실내부>

 

. 현관

현관이 크기도 시기변화에 따라 조금씩 넓어졌다.

1980년의 경우 60규모의 아파트 현관의 면적은 약 2였고 85규모는 약간 넓은 2.1정도였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현관은 이 보다 현격히 좁은 규모였다. 실 사용면적을 넓히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원아파트 ; 1.5×0.9 = 1.35

새경남아파트 ; 1.2×1.4 = 1.68

대원아파트 ; 1.1×1.6 = 1.76

쌍용아파트 ; 1.1×1.3 = 1.43

동양상가아파트 ; 1.1×1.5 = 1.65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1.1×1.3 = 1.43

 

경남아파트 ; 1.3×1.4 = 1.82㎡ <<<

 

<대원아파트 현관 >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현관문>

<경남아파트 현관>

Trackback 0 Comment 0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5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4) 그렇다면 이교재와 함께 형무소에 갇힌 위의 인물들은 누구일까. 순서대로 적힌 인물들을 검토해 보자. 沈相沅에 관한 기록은 재판 기록 이외에서는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4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3) 이교재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뛰어든 것은 3.1운동 때였다. 그는 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고향의 동지와 더불어 선언서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문..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3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2) 이교재가 소년시절을 보냈던 조선조 말기와 대한제국시기에 진전면 일대에는 몇몇 서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마을 단위이자 문중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문중 중에서도 ..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2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1) 이교재(사진)는 1887년(고종 24년) 7월 9일 경상도 진해현 서면 대곡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578번지)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가 부농의 아..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 1

앞서 9회에 걸쳐 1954년 김형윤 선생이 마산일보에 기고한 '이교재 선생 생가 기행문' 「삼진기행」을 포스팅했다. 오늘부터는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위 사진)의 생애사를 연구한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아래 사..

김형윤의 <삼진기행> 9 / 1954년 4월 23일 (금)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3 이 황교전투로 말하면 삼진방면의 만세의거로서는 제3회째라고 하는데 제1회가 현동 제2회가 진북의 순으로 황교전이야말로 규모를 확대하였든 만큼 피해가 우심(尤甚, 정도가 더욱 ..

김형윤의 <삼진기행> 8 / 1954년 4월 22일 (목)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2 논둑 받아(?) 둑아 날 살리라 심의중(沈宜中)이 불콩이 날 죽인다! 이것은 누구의 창작인지 미상이나 지금도 산야엘 가면 나물 캐는 촌새악씨나 나무하는 목동이나 또는 소먹이는..

김형윤의 <삼진기행> 7 / 1954년 4월 21일 (수)

황교 교반의 전적지 / 장렬히 순국한 8열사 - 1 우리일행은 이교재선생의 묘소에 정중한 전배식(展拜式)을 마치고 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사양(斜陽)이 부락에 빚칠 때이다. 일행은 노부인과 작별인사를 할 때 굵은 눈물..

김형윤의 <삼진기행> 6 / 1954년 4월 20일 (화)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6 불우 순국열사들!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백년 일세기를 영길리(英吉利, 잉글랜드)의 식민지로서 정치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치명상을 입고 경제적으로 약탈착취(掠奪搾取..

김형윤의 <삼진기행> 5 / 1954년 4월 18일 (일)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5 그러면 다른 말은 잠간(暫間, '잠깐'의 비표준어) 차정(次頂)에 미루어두기로 하고 정부에서는 무수한 순국열사에게 무엇으로 보답하였으며 무엇을 하려고 구상하고 있는가? 또..

김형윤의 <삼진기행> 4 / 1954년 4월 17일 (토)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4 이야기는 본선(本線)에서 조금 지났지만은 이교재 선생을 검거한 이만갑이라는 자(者)는 어떠한 자인가를 말 안할 수 없다. 기자(김형윤 선생 자신)와 이만갑은 (지금은 일반..

김형윤의 <삼진기행> 3 / 1954년 4월 16일 (금)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3 산협의 좁은 비렁(&lsquo;벼랑&rsquo;의 방언)을 얼마쯤 나가니, 간데 마다 산은 백구질을 하여 황토만 노출(露出)한 독산인데 이 산 중복(中腹)쯤 되는 곳에 선..

김형윤의 <삼진기행> 2 / 1954년 4월 15일 (목)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2 일행은 이(李) 열사가 생전에 생장하셨다는 봉곡 부락 길가에 정차를 하고, 좁다란 밭 기슭을 타서 가면 신작로에서 불과 3&middot;4분 만에 선생의 구거에 당도된다...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오늘부터의 포스팅은 창원지역에서 평생 언론인으로 살다간 목발(目拔) 김형윤(金亨潤) 선생이 남긴 기행문이다.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실렸고, 기고자는 본명 대신 &lsquo;H 생&rsquo;이라 되어 있다. 제목은 「삼진기..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lsquo;대한민국 건축문화제&rsquo;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