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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9

by 운무허정도 2020. 2. 17.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2)

 

이교재(우측 사진)의 임정문서 일부가 동아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는 이정순의 아들인 이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이상화와의 면담은 2017년 9월 27일 마산의 이디야 커피집에서 있었다. 그는 부친께서 동아대학교 총장에게 기증하였다고 말하였다.)

해당 박물관에 찾아간 결과 밀양의 황상규에게 보내는 추조문, 창녕의 성낙문에게 보내는 특발문, 그리고 두 통의 편지 등 4개의 문건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간 까닭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이상화의 말에 따르면 부친이 동아대학교 총장인 정재환에게 기증하였다는 것이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의 소장자료 목록(74-4)과 관계자에 따르면(관련자료는 두 가지로서 1)분류번호: 74-4, 품명: 대한민국임시정부특발, 2) 분류번호:동아대 003776-00000, 명칭:대한민국임시정부특발. 후자는 박물관이 부민동으로 이사할 때 새로 작성한 것이라고 관계자가 말해 주었다.125) 이상순으로부터 정재환이 기증받은 것을 박물관으로 이장하였으며, 그 날짜는 1963년 2월 1일로 되어 있다.

연유는 적혀 있지 않다.

그렇다면 동아대 박물관으로 간 문건들은 동아일보에 기사화되기 이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곧 일부는 이미 정재환에게 전달되었고, 나머지 일부가 동아일보에서 보도되었다고 짐작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홍여사의 발언과 김형윤의 기행문, 동아일보기사, 남평문씨 세거지 소유 문건, 이상화의 진술 등을 통해 이교재 선생이 마지막으로 입국할 때 9개의 문건을 휴대하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홍여사의 진술을 통해 이들 문건이 이교재 선생이 직접 휴대하고 들어왔으며, 임정에서 발행한 문건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고 본다.

형태상으로도 이 임정문서는 임정에서 발행한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모두 한문으로 작성한 이 문건들은 ‘기원 4264년, 대한민국 13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라고 기록하고 임시정부라는 글자 위에 사각형의 ‘大韓民國臨時政府印’이 새겨진 국새를 찍어 임정에서 발행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림 3>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이교재임정문서 4건. 성낙문에게 보내는 특발문(상), 조완구·김구발 김관제·윤상태 대조 편지(중), 이시영발 김관제 수신 편지(하우)와 밀양의 황상규에게 보내는 추조문(하좌)

 

이교재위임장의 경우에는 국새와 더불어 ‘내무장인’, ‘재무장인’이라는 부서인을 문건 좌측 상단에 나란히 찍었다.

성낙문에게 보내는 특발문에는 작은 부전지에 주석이자 법무장이던 이동녕의 이름과 인장을 덧붙여 놓아, 임정 발행의 문건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위임장, 상해격발문, 추조문, 특발문은 모두 비단에 작성하였고, 편지는 종이에 쓴 것이다.

이교재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는 위임장과 격발문은 한 장인 듯이 보이지만 내용과 발행일, 인쇄방식, 비단의 섬세함 등에서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문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증명을 위해 두 문건을 겹쳐 놓고 국새를 찍었기 때문에 하나의 문건처럼 보일 뿐이다.(이 문건은 2019년 3월부터 6월까지 창원시립마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한 액자 속에 들어있는 이 문건은 유족들이 이를 보관하기 위해 배접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건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 글은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사진)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99 No.- [2019]」에 게재한 논문이다. 본문 중 푸른색은 논문의 각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