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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 00:00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1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4)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상해격발」이라는 문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상화 소장 「상해격발」 참조.)

비단 위에 인쇄된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큰 주제는 ‘建國記念日建國對策建議案’이다. 현재 존재하는 임정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의안인 셈이다.

격발의 대상은 국내와 韓僑를 포함하는 모든 선생이며, 이를 위해 특파원으로 李中光을 임명한다는 것이다. 건의안은 크게 임시정부 사명과 특파원 임무로 대별된다.

임시정부 사명에는 ‘建國策定衆議, 議會出席豫期, 議會日當通告, 各自集會決議, 統合機關組織, 戰務俱體議定’ 등 7개항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특파원의 임무는 ‘使命宣傳, 大勢宣傳, 黨員組織, 別隊組織, 戰資豫約, 交通部立, 交涉報告, 抗議報告’ 등 8개 항목이다.

요컨대 임정에서는 건국대책을, 의회에서는 항시 준비를, 각 기관과 조직을 통합하면서 戰務에 구체적으로 대비할 것을 사명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특파원들은 大勢, 곧 ‘일중대사변’으로 인해 광복의 기회가 이르렀다고 선전하는 일과 새로운 조직을 갖추면서 전쟁비용을 예비하고, 교섭이나 항의 사항을 보고하는 임무 등을 부여하였다.

이 과업을 수행할 특파원인 李中光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국내와 일본까지 활동범위에 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파원 중에서도 최상위의 요인이 아닐까 하지만, 현재까지 어떠한 독립운동 자료에도 검색되지는 않는다.

특파원 임무를 총괄하는 만큼 각 지역이나 각 업무에 맞는 특파원들도 있었을 것이나 이 역시 확인되지는 않는다.

여하튼 이 문건의 존재는 임정에서 새로 출현한 동아시아의 정세에 따라 국내외에서 총궐기하도록 격문을 만들었다는 점이고, 이것을 이교재에게 휴대하고 입국하도록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이교재(위 사진) 역시 이러한 과업을 수행할 특파원이었고, 나아가 임정과 국내의 독립 세력을 연계하는 역할도 떠맡은 다중적 특파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것은 이교재를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로 임명하면서 몇 가지 중요사항을 위임한다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위임장이다.(원본은 이상화가 소장하고 있으며, 복사본은 창원시 진전면 애국사당에 전시되어 있다.)

발행일은 대한민국 13년(1931) 11월 20일, 발행인은 임정의 내무장 조완구와 재무장 김구이다.

두 사람의 친필 사인이 쓰여 있고, 또 두 부서의 관인까지 찍혀 있어서 임정에서 발행한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임정은 이 위임장에서 이교재를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로 임명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중요 임무를 위임하였다.

1) 유지자 연락에 관한 일,

2) 독립운동에 대한 비밀적 지방조직을 행할 일,

3) 정부에 대한 특수헌성을 권행케 할 일 등 세 가지이다.

유지 연락, 비밀스런 독립조직, 그리고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도록 권하는 일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문제는 임정이 이러한 중차대한 임무를 왜 이교재에게 맡겼는가 하는 점이다.

독립 이후 진전의 이교재 묘소를 참배한 김구에 따르면(허성진, 「백범도 존경했던 독립운동가, 이교재」, 마산 창원 역사읽기, 불휘, 2003, 145쪽. 김구 선생이 진전면 이교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 때는 1946년 9월 17일이다. 진전면 임곡리 이교재묘 비석 참조) “그는 독립운동의 방법과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관해 능력이 탁월하였고, 국내 주재 조직 및 독립운동 자금 모금의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로서 장관 몇 명이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였다고 술회하였다.

곧 독립운동의 방법과 조직화, 그리고 운동자금 모금에서 탁월했다는 것이다.

위임장을 작성할 당시 김구의 직책이 재무장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임정에 필요한 부분은 특히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이에 적합한 인물로 이교재를 선택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컨대 임정에서 위와 같은 능력을 갖춘 이교재에게 맡긴 책무는 네 가지 정도였을 것이다.

문서전달, 독립운동 자금 확보, 독립에 필요한 비밀조직, 거사 시의 가능성 타진 등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라는 직함을 부여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국내에서 이교재가 주어진 일을 추진하는 증명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한 일종의 특명서였다고 할 수 있다.

활동영역은 경상남북도이고, 따라서 해당 문건들을 전달하려는 대상 인물들도 숙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몇 차례의 감옥행으로 기록된 그의 독립운동 행적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감옥행은 드러난 것이지만 식민당국에 알려지지 않게 활동한 각종 행적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

김구가 이교재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유가족을 위로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렇다면 임정에서는 왜 그 시기에 이교재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였을까.

이를 위해서는 임정의 독립운동은 국가간의 전쟁과 깊은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임정 출발 자체가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였고, 조국의 광복은 일본의 패망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말하자면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반침략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제2차 대비는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이었다.

앞의 특발문이나 김관제와 윤상태에 보낸 편지에서 확인되었듯이 만주사변은 일본을 패망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에 따라 임정은 1932년 전반기에 6건의 거사를 실천에 옮겼거나 준비하였으며 이는 반침략전쟁의 성격을 내포한 것이었다.

6건의 거사는

① 이봉창의 도쿄 의거(1932. 1. 8),

② 상해주둔 일본군사령부 폭파계획(중국인 용병- 실패, 1932. 2. 12),

③ 윤봉길 등의 상하이 일본비행장 폭파계획(좌절, 1932. 3. 3),

④ 이덕주·유진식의 조선총독 공략(좌절, 1932. 3),

⑤ 윤봉길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1932. 4. 29),

⑥ 최흥식·유상근의 만주 관동청 공략(좌절, 1932. 5)

등이었다.(김희곤,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 연구, 지식산업사, 2015, 403쪽)

위의 6개 거사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봉길과 이봉창 의거는 임정의 반침략전쟁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김희곤,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 연구, 529쪽)

이러한 사실들과 이교재의 국내 파견을 연계시켜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다.

그가 국내에 들어온 시기는 이봉창 의거나 윤봉길 의거가 실행되거나 준비되고 있던 시점이었고, 따라서 이교재에게 부여한 임무는 국내에서 전개될 반침략 전쟁을 준비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당시 국내에서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반전격문을 뿌리고 이 전쟁을 그치라고 나선 활동이 있었다. 박성숙의 친구이자 경성제대 학생이었던 신현중이 이 일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었는데, 이듬해 8월에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19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신현중은 가장 많은 3년형을 받았다. 이른바 ‘경성대반제동맹활동’이었다(박태일, 한국 근대문학의 실증과 방법, 소명, 2004, 41-42쪽). 이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박한용, 「 일제강점기 조선 반제동맹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논문, 2013, 162~172쪽.)

추정이지만 이교재가 국내에 들어오는 무렵에 이봉창(이봉창이 상해를 떠나 거사를 위해 동경으로 간 날짜는 1931년 12월 17일이었고 거사를 위해 준비하던 기간에는 임정 부근의 여관에 머물렀다(김구, 정본 백범일지, 400쪽). 이교재가 상해를 떠나기 전후의 시기와 중첩된다.)도 김구와 반침략전쟁을 모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자신들이 부여받은 임무를 모두 숙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따라서 서로 만나 의논했을 가능성도 있다. <<<

이 글은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사진)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99 No.- [2019]」에 게재한 논문이다. 본문 중 푸른색은 논문의 각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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