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위생 및 의료
공중위생으로는 1906년(명치39년) 가을에 비로소 대청결법(大淸潔法)이 제정되어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집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청결사(淸潔社)라는 회사가 있어 한인 인부들이 매일 일인 감독의 지휘 하에 쓰레기차를 몇 대 돌리면서 집이나 가게 앞의 쓰레기 함에 모아둔 것을 수거해 간다.
종두(種痘)는 매년 두 번 봄가을에 장려되었다. 마산포의 거리에서도 청결차가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종래부터 일인들이 곤란하게 여긴 것은 화장실 청소에 관한 일이다. 한인들은 일정한 시기를 빼고는 분뇨를 비료로 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논밭에 시비를 할 때 이외에는 분뇨가 많이 남아서 한계에 도달하면 돈을 주어 투기하도록 했다. 청결사가 조직된 이래 이 회사는 연락을 받으면 이것을 날라 버리고 거류민은 이 회사를 편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묘지와 화장터는 신월동 지역의 산기슭에 있고 묘지에는 일본 전관(專管)과 각국의 두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토장(土葬)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간 사람이 나오면 민단의 시설인 화장장에서 화장을 해야만 한다. 묘지에는 뼛가루만 매장하는 것뿐이며 여태껏 여기에 매장된 일은 없다. 단지 신생아의 옷이 매장되어 있다.
<당시 일본인 공동묘지와 피병원>
피병원(避病院,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병원)도 신월동 지역에 있어 1907년에 한 명의 콜레라 환자를 수용해 왔으며 연간 한두 명의 이질 환자를 수용했을 뿐이다.
각기병(脚氣病) 환자는 우기 혹은 여름에서 가을에의 장마철에 발생할 때가 있으나 극히 적다. 대개 한국의 공기는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각기 환자가 많다는 것은 다소 이상한 감이 들기는 한다. 마산에서는 이 유례를 벗어나 각기 환자의 전지요양지(轉地療養地)로서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보양지라 하겠다.
기타 말라리아나 장티푸스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또한 건강에 신경을 별로 안 쓰는 한인들 사이에 간혹 천연두나 홍역 등이 유행하고 그 여파로 일인에게도 옮겨진 경우도 있는데 아주 드물다. 페스트 병은 아직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콜레라는 부산에서 그 계통의 병이 전염되어 1907년 10월 중에 4명의 환자를 내었는데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확산되는 일은 없었다. 1908년 6월 하순부터 소아(小兒) 디프테리아 환자가 2,3명 나왔으니 빨리 발견되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마산에는 지방 풍토병이라 명명할 만한 병도 없다. 특히 전염병은 대체로 느슨한데다가 그 세균이 겨울의 극렬한 추위 때문에 동사하고 그 여독을 다음 해에 끼칠 것도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베풀어주신 은혜일지도 모를 땅, 낙원이라 하겠다. 전지 요양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의료기관으로서는 이사청 보호 아래 세워진 마산병원이 신시의 남쪽 하마마치(빈정 濱町, 현 창포동) 3정목에 있었는데 1909년 9월 초순, 전에 신월지역에 있던 철도관리국 소관의 토지와 가옥을 빌려서 거기로 이전하게 되었다.
현재 75명의 화양(和洋, 왜식과 서양식) 절충의 건물을 건설하고 있으며 의무, 내과, 수술, 안과, 해부, 저약(貯藥), 조약(調藥,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서 약을 조제함), 접수, 환자대기실로 나누어 쓰게 된다. 빌린 가옥 네 동 중 세 동의 방 12개를 병실로 쓰게 되는데 특등부터 3등까지 나눈다. 게다가 저빙고(貯氷庫)까지 짓는다는 계획이다.
본 병원은 서쪽을 정면으로 하고 앞으로는 장군산의 산들이 있고 그 산이 내려오는 높은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후방은 마산만의 매축지를 눈 아래 두고 각 병실은 다 동쪽을 향해 해돋이를 보게 되어 있고 매축지 너무 마산만에 떠다니는 배가 보이는 조망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정경이라 한일 양국을 통틀어 이렇게 좋은 병원 건축의 적지(適地)는 없을 것이다.
이 청정한 공기에다가 산과 바다의 조망을 갖춘 병실은 약의 효과 이외로 위안의 효력을 자아내므로 그 치료 시기를 앞당기는데도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마산포에 분원을 경영하며 후쿠오카 출신의 활달하고 친절한 해군 2등 군의관인 하라다 히코지로(原田彦次郞)가 주임으로 종사하고 있다.
그 외 개업의원으로는 신시 혼마치(本町, 현 월남동) 1정목에 오카바야시(岡林 강림) 의원이 있다. 원장 오카바야시 도지로(岡林藤次郞) 씨는 특히 외과, 위장, 화류병과(花柳病科)에 능숙해 찾아오는 환자로 많은가 보다. 또한 완월교 부근에 오오카(大岡) 의원이 있으며 오오카 키(大岡規, 대강규) 씨는 에히메(愛媛, 애원) 현 무사 집안 출신이며 내외과와 소아과를 잘 봐서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환자가 계속 문전에서 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마산포 신마치(新町, 현 추산동)에는 산과, 부인과, 소아과를 잘보는 고세이(弘生, 홍생) 의원이 있고 신월동에는 요쿠라(興倉, 흥창) 치과 전문의가 있다. 수의(獸醫)로서는 마산포 신마치에 개원하여 경찰 수의사로 촉탁된 야마구치 가나우(山口叶, 산구협) 씨가 있다. 또한 신시 혼마치 2정목에 있는 인풍당(仁風堂) 약국의 이이츠카 추타로(飯塚忠太郞, 반총충태랑) 씨는 약제사로서 수질 및 우유 등의 검사를 할뿐더러 청결사 사장으로서 공중 위생 집행에도 입회(立會)하고 있다.
산파(産婆)로는 마산포에 오카모토 나츠(岡本なつ), 신마치에 유카다 우미에(湯川うみえ) 니시하라 마스에(西原ますえ), 구리하라 도요(栗原とよ)란 네 여사가 조산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실력에 얀간 차이가 있다 해도 모두 상당한 학술과정을 마친, 면허를 가진 이들이다.
이 지방은 소(牛)의 명산지이며 그 숫자도 많으며 공기가 건조하여 소의 병도 적은 편이다. 그래도 한 번 병이 번졌다 하면 참사를 이룬다고 한다. 닭 콜레라도 간혹 유행할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극히 드물다.
의료계에서도 페스트 예방을 위해 도쿄(東京) 식으로 고양이를 기르는 것을 권장하면 어떨까. 일이 발생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법. 이 항구처럼 해륙의 출입이 빈번한 곳에서는 언제 그 균이 들어올지 모른다. 나쁜 역병이 유행하고 나서 비로소 대청소는 한다는 꼴이 된다면 최악 중의 최악이 아니던가.<<<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열세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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