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동포발전사
12. 천동같이 진동한 쓰시마 앞바다 해전
개전 이래 이희일우(一喜一憂)하며 그 결과를 걱정했던 마산의 동포들은 당시 생활해갈 길이 막막해 떠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철도공사 개시 후로 철도감부 마산반의 사무소는 마산우편국의 맞은편 해안으로 내려가는데 있는 러시아인 소유의 빈집에 설치되어 감부원 수십 명이 근무하게 되어 이에 수반하는 다수의 인부가 출입함으로써 시장 상황이 크게 회복되었다.
특히 요정, 음식점 등에는 짙게 화장한 매춘부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전황은 매번 우리 황군의 연승을 보도하였고, 러시아가 난공불락이라 자랑하던 여순 요새도 마침내 함락되었다 한다.
광무 9년 즉 명치 38년(1905) 1월 1일 수비대장 스텟셀(1848~1915, 러시아제국 육군 중장.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뤼순요새 사령관으로 노기 마레스케가 이끄는 일본육군 제3군과 싸웠다.)은 공격군의 총사령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대장의 군문에 항복하였고 3월 10일에는 황군이 봉천에서 러시아군을 격퇴해 다음 날 그것을 점령하였다.
17일에는 철령(鐵嶺)의 적을 물리쳤고 4월에는 멀리 개원(開原), 창도(昌圖)를 점령해 50만의 러시아군을 퇴각시키게 되었다. 전승의 첩보가 올 때마다 동포들은 크고 작은 축하회를 열어 마산의 전치를 활기가 넘쳐흐르는 환락향으로 변화시키기도 했다.
1905. 5. 27. 대한해협에서 일본연합함대의 집중포격을 받고 침몰하는 러시아 발틱함대의 전함 오스라비아
한편 진해만에 의거해 전투의 기회를 기다리던 우리 엽합함대는 5월 27일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대장이 탄 함선 미카사(三笠, 삼립)에서 무선신호로 “황국의 흥패는 이 일전에 있으니 모두다 더 분려(奮勵) 노력하라”란 명령과 더불어 그 진로를 지령해 각 함선은 오전 7시 우렁찬 군악과 함께 가덕수로로 출항해 쓰시마 방면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러시아의 흑해에 근거를 둔 발틱함대가 제2동양함대를 편성하여 아프리카를 우회하고 인도양을 가로질러 동으로 향해 블라디보스톡에 근거를 둔 제1동양함대와 엽합하려는 게획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오후 3시경에 이르러 천둥 같은 포성은 마산 천지에 울렸고 그 굉음으로 집들의 유리창이 깨질 것만 같았다. 그 소리는 계속되다가 끊기곤 하였다.
거류민들은 처음에는 많이 겁에 질렸지만 거제도 송진포(松眞浦)에 있는 진해방비대 모치하라(餠原) 사령관이 타전한, 우리 연합함대가 적 함대를 쓰시마 부근에서 요격했다는 전보내용이 우편국에 게시되어 처음으로 그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해전의 상황을 멀리서라도 보자고 많은 사람들이 무학산으로 뛰어 올라가며 그 결과를 걱정했다.
원래 마산우편국 사무는 개항 이래 영사가 우편국장을 겸해서 장악하게 되었으니 이번 전보 같은 것도 언덕 위에 있는 영사관 문에 게시하기보자는 우편국게시장을 응용한 것이다.
당일 저녁 그 게시판에 “쓰시마 앞바다 해전에서 우리 군이 대승리, 발틱함대는 전멸”이라는 게시물이 나오자 우편국 앞은 금방 사람들이 산을 이루고 만나는 사람마다 만세를 부르며 서로 축하했다.
뛰어와서 영사관에 축하 말을 전하려는 사람, 철도반에 축하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실로 껑충껑충 뛰며 나는 듯했다.
그날 밤 바로 축하 제등행령이 있게 되어 미우라 영사의 천황폐하 만세, 도키오 중좌의 제국해군 만세 각 삼창으로 행렬은 시작되고 거류지에서 마산포로 돌아와서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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