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동포발전사
8. 러일의 국교단절
러일간의 기압이 갑자기 내려가 국교가 단절된 것은 명치 37년(1904) 2월 10일, 청황의 선전포고 때부터다.
이에 앞서 오사카상선회사의 시라카와마루(白川丸)는 한국 동남연안의 정기선으로 어느 날 마산에 입항한 그 배에 한 외국인이 타고 있었는데, 중국 산동성 지부(芝罘)에 가서 일본함대의 주력이 마산포의 전면인 진해만을 점거하고 있음을 전보로 알렸고 이것이 외국 신문에 게재되어 우리 해군은 크게 놀랐다.
곧바로 각 선박의 진해만 출입을 금지하여 해상 경계는 아주 엄격해지고 실리도와 견내량에는 탐조대를 설치하고 우편기(郵便旗) 깃발을 달고 각 어장을 순항하는 순라선(巡邏船)을 빼고는 어선이라도 빠짐없이 검문토록 했다.
이 바람에 마산거류민은 일상생활품의 공급이 끊겨 된장, 간장, 술, 담배 등에 이르기까지 크게 결핍하게 되었다.
2월 8일에는 고쿠라(小倉) 사단 병력이 마산에 상륙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고, 세관 구내에는 땔감, 숯, 말의 사료 기타 군수물자가 산적되었고 부산의 많은 상인들은 이 기회를 잡아 돈벌이해 보겠다고 귤, 사과, 배 등 기타 일용할 식품을 단평선(團平船, 일본 배의 하나로 넓은 폭에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 돌, 나무, 석탄, 토사 등 중량화물의 단거리 수송에 사용.)에 만재하고 상륙군을 기다렸는데 다음 날 고쿠라사단은 상륙지를 변경해 인천으로 갔다는 전보를 접하고는 상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공황상태로 부산으로 돌아갔다니 참 웃음을 그치지 못할 노릇이다.
이때 진해만에는 우리 연합함대 이외에 크고 작은 운송선이 3백여 척이나 있어 동포들은 우리 제국에 이렇게 많은 기선이 있구나 해서 아주 놀랐다고 한다.
인천 앞바다에서 바랴크, 코리에츠 두 함선을 격침했다는(제물포 해전, 1904년 2월 9일 일본이 선전포고 없이 인천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하면서 벌어진 해선. 큰 타격을 받은 러시아군은 방호순양함 바랴크호와 포함 코리에츠호를 자침시켰다.) 전보가 도달한 그 다음날 진해만의 해군은 마산을 향해 출항, 우선 현재의 유미마치(弓町)에 있는 한국정부의 유체사 및 전보사를 압수해 통신을 차단하고 율구미에 가서 러시아 해군의 육상사령부 이하의 제반 설비를 압수해 가고, 죽은 듯했던 거류지의 인기척도 그 활기를 되찾아 가는데, 마산포의 동포들은 한인 상태의 영업이 주인지라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한 감이 있었다.
9. 마산병원의 설립
동대(東大) 출신의 의학사 도쿠나가 고이치(德永吾一) 씨가 미우라(三浦) 영사의 소개로 내항하여 현재의 하마마치 3정목에 있는 오다 겐지로(小田善四郞) 씨 소유의 가옥을 빌려 사립마산병원의 간판을 건 것은 러시아와 일본이 교전하고 있던 명치 37년(1904) 가을이었다.
이에 앞서서 거류지회에서는 부산에서 개업을 개시한 의학사 아사미 쇼이치(淺海庄一)를 초빙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군의관으로 소집되었기 때문에 무자격의 오다베 겐지로(小田部源次郞)라는 사람이 병자의 집을 왕신하는 것을 허가받고 있었던 터라 그제서야 겨우 의학사의 개업을 보게 된 것이다.
병원의 위치가 너무 서쪽에 있는 것 같지만 당시는 영사관에서 내려와 바다 쪽으로 향하는 종단로의 서쪽이 발전 경향을 보이고 있었기에 매우 좋은 곳이라 여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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