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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도시이야기

스페인 도시이야기 7.마드리드, 피카소의 게르니카 vs 독재자 프랑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29.

'마드리드'는 몰라도 '레알마드리드'는 아시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하면 어느나라의 어떤 도시라는 이미지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것 같습니다. 스페인은 몰라도 그냥  유럽의 유명한 축구팀으로 더 알려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20세기를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독재자의 원조에 해당하는 독재자 프랑코(1935-1975년까지 스페인통치자)때문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프랑코 통치 하의 스페인이 문화의 황무지 였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고 합니다. 체제에 대한 이념보다 보다 통속적인 문화를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스포츠, 영화, TV를 통해 관심을 돌리려 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흥행몰이를 한 것이 축구였는데, 당시 1948년 빈곤한 스페인의 수도에 연고지를 둔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는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경기장을 건설하였으며, 축구는 스페인의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최고의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전통에 현재까지 이어져서 세계명문 축구팀으로 명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재자 프랑코의 유일한 업적이랄 수 있을까요? 그 다음으로 마드리드를 상징 할 수 있는 것이 화가 고야와 피카소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저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품이 독재자 프랑코와 대조을 이루기에 충분히 상징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는 앞서 소개된 똘레도에서 1561년 옮겨진 수도입니다. 이 지역은 의외로 이슬람세력들이 9세기 후반부터 이슬람 영토의 북쪽을 지키기 위한 성채에서 비롯된 도시로, 마드리드라는 어원은 아랍어로 '물의 원천'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암튼 펠리세2세가 1561년 수도로 정한 후 450년 동안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발달해 온 곳입니다. 마드리드 관광에서 가장 손 꼽는 것이 세계 3대미술관 중 하나에 해당하는 프라도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서양미술에 그리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고야의  '마야부인'과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그림은 볼만한 그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드리드 가로의 특성 : -- 450년 된 마드리드 전경 : 좌측 녹지부분이 왕궁이며, 왕궁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체계로 이루어진 부분이 구시가지이며, 주변부에 직교형으로 도로망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 신도시지역이다. 왕궁 후면에 남북으로 강이 흐르고 있으며, 왕궁 맞은편에 위치한 레트로 공원의 녹지가 도심의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허파역할을 하고있다.

- - 가로건물 상세 : 중심상업지 지붕모습입니다. 우리네 도시건물과 다른 2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붕이 모두 황토색기와, 다시 말해서 스페니쉬기와로 된 경사지붕이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가로변을 향한 건물간에 틈이 없이 합벽건축되어 있는 점입니다. 그리고 남는 부분은 건물 내부에 형성된 조그마한 중정공간을 마련하였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똘레도에서 건물의 형태도 거의 같은 형태였었습니다. 이러한 도시건물 구축법은 필요없는 측면공지는 없애는 반면 건물내부에 쌈지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합벽을 짓는 과정에 주변건물과 높이 및 층수, 형태와 재료 등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도심가로의 경관 개선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로 전경들- 스페인 수도이지만 인구는 350만, 녹지공원과 수공간 그리고 저층건물에 의한 저밀도의 도시공간

- 중심지 상가 건물의 규모도 5층 정도이며, 저층상가와 상층부 주거공간으로 중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 Plaza de Tolos(투우경기장) : 지금은 투우를 볼 수 없다고 함. 동물보호단체의 요청에 의해 조례로 투우경기를 금지한다고 합니다. 뭔 용도로 쓰는지?

-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 : 스페인 대문호 세르반테스가 탑앞에 앉아있으며, 그 앞에 그의 분신 조각상이 있다.

- 세르반테스의 아바타인 돈키호테아 산초판사의 조각상

-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가에 해당되는 고야의 조각상 : 미술관 주변에 서서, 자신의 작품을 보러온 관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

- 프라도 미술관 입구 : 소장품 3만점에 전시작품수 3천점으로 규모에 악! , 우리는 고야 작품위주로 보고 나왔슴.

- 뭘부터 볼까? : 봐야 할 그림, 그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봐야할 듯***

- 결국은 도록 보면서 길찾기 : 다행히 조예가 있는 가이드(조르디 허)선생의 미술지식 만큼 듣고, 느끼고 왔습니다.

- '게르니카'는 보지 못했습니다. : 왜냐하면 그 그림이 있는 '소피아 미술관'에는 갈 여행일정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알아왔답니다. 본 글 초장에서 언급한 독재자 프랑코와 독일군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하여 피카소가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작품인 '게르나카'는 전시후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본인을 고발한 그림을 받아줄리 만무했겠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게르니카'는 스페인이 민주화가 되었을 때 돌려받기로 하고 뉴욕 박물관에 기증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그림은 독재자 프랑코 사후 6년이 지난후 1981년에 지금의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44년만에 돌아온 이 그림의 의미, 그냥 한 폭의 그림의 아니라 독재에 항거한 역사의 증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마드리드의 이미지는 민주화를 상징하는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소유한 도시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게르니카 : 블로그 아가타(cho3sister) 에서

1936년 스페인내전을 통해 군사독재정권을 획득한 프랑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