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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17. 14:00

경남도민건축대학 3. 함양 남계서원 답사

남계서원에 대해서 : 정여창 고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계서원이 있습니다. 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을 모시는 서원입니다. 학자로서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목적과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지어질 당시는 함양지역의 뼈대있는(?) 문중에서 기금을 내어 지어진 사립학교로 운영관리 되었다고 합니다. 건립은 정여창 선생의 후손인 하동정씨, 풍천노씨, 진주정씨, 진주강씨, 나주임씨, 동래정씨, 남원양씨 등이 동참해 지었다고 합니다. 훗날 명종 21년(1566년)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액'은 국가에서 내리는 서원의 액자간판으로 국가에서 운영을 지원하는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인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당시의 건물이 아니라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나촌이라는 곳으로 옮겨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년)에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서원에 모셔져 배행된 분이 당시 정여창 선생님 한분이었으나, 이후 숙종때 후대 인물인 강익, 정온선생 두분을 추가로 모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분을 한 서원에서 모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유호인, 정홍서 두분을 위해 별채를 지어 모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종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별채에 모셔진 유호인 정홍서의 제향공간은 훼철되었다고 합니다.

일두 정여창 선생님 :  일두 정여창 선생은 김종직의 제자로 조선 5현(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화)의 한분으로 성리학의 대가로 經史에 통달한 분이라고 한다. 경사(經史)는 유학에서 경서(經書)와 역사서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이 되어 소격서(제사를 주도하는 관청) 참봉으로 되었으나 사양하고, 이후 왕세자 모시고 경사() 강의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당시 왕세자 였던 동궁(연산군)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연이 훗날 무오사화때 김종필의 문인이라는 하여 유배되었다가 돌아가셨으며, 다시 갑자사화때 부관참시 당하는 화를 당하게 됩니다. 이후 중종때 우의정으로 추증되었고, 공해군 때 문묘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사화로 인해 55세 일기를 마감한 것이 참 아쉽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호인 '일두'의 의미를 가이드선생님에게 여쭤본 바, '좀벌레 한마리'라는 뜻이랍니다. 본인의 학식이 보잘것 없다는 의미로 붙였다고 합니다. 조선 성리학의 5현이 '좀벌레'라면 우린 뭐가 됩니까?

남계서원 공간의 특징 : 서원은 건물의 배치가 규정되어져 있읍니다. 일반적인 배치는 출입문을 기준으로 남북방향을 주축으로 남축에서 북측방향으로 건물을 배치합니다. 산을 등지는 배산형태를 취합니다. 건물의 배치는 출입구에서 보았을 때 정면에 보이는 곳이 공부를 하는 강학공간으로 교실, 회의실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좌우측에 별채의 건물이 ㄷ자형태로 배치되게 됩니다. 그것은 동재, 서재라고 하며 개인별 학습공간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강학공간 후면에 선현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당이라고 합니다. 이를 들어 '前學後廟'배치라고 합니다. 이러한 배치는 지형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남계서원의 경우 남북축이 아니라 동남향 축 배치입니다. 이것은 산의 경사지형에 순응하기 위한 의도인 것 같습니다. (건물배치: 좌측 누문-강학공간-사당-묘소, 상단에 관리사인 고직사가 배치되어 있다.)

- 서원의 진입구 "풍영루" : 보통 누각을 통해 들어서는 형태이기 때문에 누문이라고 합니다. 즉 출입문고 누각의 두가지 용도를 만둘어 진 것입니다. 누각은 교실 및 놀이공간으로 쓰였겠죠(서원입구의 홍살문 : 제대로 출입이 가능하도록 손을 보았으면 좋으련만)

(출입누문 '풍영루' 정면3칸 측면2칸의 큰규모이다.)

(풍영루 처마상세: 화려한 단청의 흔적이 남아있다.)

 

( 마당 전경 : 정면이 강학공간이 명륜당)

 

(동재, 서재 사이에 비각건물이 있어서 답답해 보인다.)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서재: 지형이 경사인 관계로 아랫쪽은 기둥으로 들어올려겨 있다.) 

(중앙의 명륜당에는 '남계서원'이라는 사액이 걸려있다.)

(누문 좌우에 사각형의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강당 우측면에 잇는 서고 : 통기를 고려하여 바닥이 들려있다.)

(유생들의 생활공간으로 정면2칸, 측면1칸으로 규모는 소박하다.)

(사당으로 향하는 길)(제향공간이 사당) 

(사당옆에 있는 전사청(典祠廳): 이건물은 종묘제사(宗廟祭祠)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이다.)

(사당에서본 강당, 경사가 가파르다.)

(사당앞의 마당 : 담장옆으로 고목들이 즐비하다.)

 

   (생활공간의 3배에 해당하는 누각 : 학습외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된 듯하다.)

이 시대에서 서원의 의미

- 서원하면 사화, 그리고 당파싸움의 근원지로 인식되어져, 오직 했으면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까?  어느정도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낸 사학으로서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큰 스승밑에서 수학을 한 죄로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정도로 극심하였던 학파간의 분쟁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최근 대학에서 소위말해서 돈이 않되는 인문학부의 여러 과들이 폐과가 된다고 합니다. 옛날로 치면 기술학원에서나 보였을 법한 학과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혀를 내 찬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학문의 길이 이리도 험난한가" 하고 탄식했을 선비들이 지금의 우리사회를 보고 뭐라고 할 지 궁금해집니다.

 

 

2013/10/03 - [찾아간 도시이야기] - 경남도민건축대학 2. 함양 상림, 정여창고택 답사

2013/09/27 - [찾아간 도시이야기] - 경남도민건축대학 1. 산청남사마을 답사

 

Trackback 0 Comment 2
  1. 팬저 2013.10.19 09:44 address edit & del reply

    잘시내시고 계시지요? 잘보고 있습니다. ^^ 사실 서원의 공간적인 배치나 향교나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대상이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말이죠. 일단 남계서원의 경우 전묘후학의 구조네요. 이런 전묘후학이 거의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제대로 보존이 되고 있는 것 같네요. 사실 공간적인 위압감을 주기위한 것도 있다고 하더군요. 향교의 경우 홍살문, 외삼문, 명륜당, 대성전으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쳐다보아야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향교를 가면서 본 구조나 남계서원도 비슷하게 보이네요.

    • 삼식 2013.10.19 12:45 address edit & del

      펜저선생 오랫만입니다.
      뵌지 제법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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