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21. 8. 9. 00:00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3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글 순서>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3. 건축적 가치 - (이번 글)

4. 제안

 

 

3. 건축적 가치

이 건물은 2005년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바 있다. (위 사진)

당시 「경남지역(24개소) 근대문화유산 등록예고」에 따르면 이 건물은 ‘관사주택 설계집단의 인맥과 기술의 흐름을 잘 보여주며, 여러 차례의 개·보수가 이루어졌음에도 건물의 평면 상태나 외관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주거사적, 건축적, 근대사적 가치가 있다.’고 등록문화재 예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때 문화재청이 등록 예고한 경남 24개소(진해 11, 마산 3, 밀양 3, 거창 2, 창원·통영·남해·진주·산청 각 1개소) 중 유독 본 건물만 건축주의 반대로 등록되지 않았다.

 

이 건물의 건축적 가치를 간략히 정리하면,

1)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마산이지만 공공건물로 마산헌병분견대 정도만 남아 있을 뿐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이 건물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주택이다. 유일하다.

2) 단층 조적조+목조이며 일식 시멘트 기와로 지붕을 얹은(현 지붕은 덧씌움) 전형적인 일식주택이다. 벽체하부는 구형 적벽돌로, 상부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단순하고 검소하게 디자인되어 당시 관사건축의 흐름을 가늠하게 해준다.

3) 스위치, 욕실, 창호, 화장실 등의 기구 및 소재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당시 건축 기자재의 수준과 형태를 잘 알 수 있으며, 전통 일식주택의 건축요소인 다다미(たたみ), 후스마(ふすま), 토코노마(とこのま), 오시이레(おしいれ), 부쓰단(ぶつだん) 등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4) 경사지를 극복하기 위해 건축한 석축 옹벽 및 돌계단과 세월을 말해주는 가이즈카(カイヅカ) 향나무가 잔존하고 있다.

 

 

○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2021년 3월 12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1.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근대기 일본 관사주택이라는 건축사적 관점에서,

2. 110년 전(1911년)에 들어온 마산 전기회사가 남긴 유일한 것이라는 산업사적 관점에서,

3. 개항으로 시작된 일본인 마산진출의 중요한 흔적이라는 도시사적 관점에서, 이 건물의 가치는 충분하다.

문제는 현재 이 건물이 포함된 주변 일대에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Trackback 0 Comment 0
2021. 8. 2. 00:00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2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글 순서>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 (이번 글)

3. 건축적 가치

4. 제안

 

 

 

2. 건축 연도 추정

이 건물의 건축연도는 1939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건축물대장에 기록된 건축연도가 1939년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2000년 마산근대건축물에 대한 최초의 논문인 「한상술」에서 사용하였고 후속연구자들이 이 논문을 인용함으로써 확산되고 확정되었다.

하지만 해방 한참 후 작성된 건축물대장의 건축연도는 신빙성이 낮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사(私)건물의 건축연도가 대부분 이 시기로 적혀있어서 기록정리과정에서 편의상 발생된 오류로 보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1939년이라는 건축연도는 다음의 자료들이 그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첫째, 토지대장에 의하면 전기회사 사택이 앉은 터를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일본인 사토 사부로(佐藤三郞)에게서 매입해 소유권을 이전 등기한 일자가 1927년 6월 3일이라는 점이다. 알려진 대로 건축연도가 1939년이라면 경성전기에서 마산지점장 사택 건축용으로 토지를 매입한 후 12년이나 묵힌 뒤 건물을 지었다는 말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둘째, 현 사택 건축 당시 실내용 문짝에 바른 도배지의 초벌로 사용된 신문지가 「조선조일(朝鮮朝日)」 1928년 10월 28일자 및 12월 9일자라는 점이다. 이 신문지는 필자가 직접 현장조사 후 확인하였다. 알려진 대로 건축연도가 1939년이라면 이 신문을 무려 11년이나 보관해 두었다가 도배지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셋째, YMCA 시민논단에 토론자로 참여한 신삼호 건축사의 주장이다. 마산에 수도시설이 준공된 것은 1930년 3월 31일이었고 집집마다 수돗물이 공급된 것을 기려 행한 통수식은 같은 해 6월 6일이었다. 따라서 수도시설이 있느냐 없느냐는 건축연도를 알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이 사택 주방으로 인입되는 수도관이 건물외부에 노출 배관되어 있다. 신축 당시 배관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또한 화장실에 설치된 세면기는 아예 급수가 안 되는, 사용자가 직접 물을 부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세면기이다. 이것으로도 이 건물은 수도시설이 없었던, 즉 1930년 이전에 건축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위의 세 가지 이유 외에 몇 가지 추가로 덧붙인다.

1) 앞서 포스팅한 ‘시기별 전기회사 변경과정’에 의하면 1939년 건축했을 경우 이 건물은 ‘남선합동전기(주) 부산지점 마산영업소장 사택’이 된다. 지점에서 격하된 영업소장의 사택 치고는 건물이 너무 고급지지 않은가.

2) 그런가하면 이 시기 경성전기의 전기료는 매우 고가여서 사용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시대일보 (1924. 5. 14일자)와 중외일보(1930. 10. 1일자) 등에 따르면 마산에서도 전기사용자들이 집단적으로 전기료 인하요구를 하였다. 이런 불만은 경성전기에서 생산한 전기가 독점적으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원성이었고 그만큼 경성전기의 수익이 높았음을 말해준다.

3) 1920년대 경성전기는 서울을 제외한 인천, 수원, 마산 세 곳에 지점을 갖고 있었으며 한국근현대사회사조합자료에 의하면 지점장을 중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성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장이었던 야마모토 토시오(山元利雄, 1887~?)는 가고시마(鹿兒島) 출신으로 1914년 7월 동경제국대학 법학과 정치부 졸업한 엘리트였다. 1915년 1월에 한국으로 건너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입사하였고, 경성전기주식회사에는 1918년 6월에 입사했다. 마산지점장(진해지점장 겸임)으로는 1926년 9월 부임해 1935년 11월 1일 경성전기 마산지점이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로 넘어갈 때까지 재임하였다. 마산지점장 재직 중 마산체육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모두 종합하면,

1) 토지매입시기 2) 초벌도배지로 사용된 신문 발행일자 3) 신축 당시 수도시설이 없었던 점 4) 건물의 수준 5) 경성전기의 독점적 위세 6) 경성전기 내 마산지점장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야마모토 토시오(山元利雄)가 마산지점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1927년 후반기나 1928년 봄쯤 착공하여 1929년 초에 준공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Trackback 0 Comment 0
2021. 7. 26. 00:00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1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글 순서>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 (이번 글)

2. 건축 연도 추정

3. 건축적 가치

4. 제안

 

 

우선 마산에 전기를 들여온 전기회사의 궤적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최초의 전기회사는 1898년 한성전기회사로 시작되어 한미전기(1904)로 이어졌는데 그 한미전기를 1909년 일한와사주식회사가 인수하였다. 그 후 일한와사주식회사는 명칭을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로 바꾸었다.

마산에 처음 들어온 전기회사는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이었다.

1909~1910년 마산부윤 및 거류민 단장이 상경하여 마산에 전기공급을 요청했고, 일한와전 간부가 마산 현지를 답사한 후 중역회의에서 최종 결정하고 1910년 발전소를 착공했다.

발전소의 설치인가는 1911년 3월 16일 받았고 같은 달 30일 발전소를 낙성했다. 발전소는 지금의 마산합포구청(옛 마산시청) 터에 두었다. 영업 시작은 5월 23일부터였다.

 

<최초의 마산의 발전소 공사장면, 준공 후 모습, 마산지점 사무소>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는 1915년 9월 1일 경성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마산의 전기회사 지점도 ‘경성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20년 후인 1935년 11월 1일 경성전기는 ’마산지점’을 부산 소재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에 매각하였고, 인수한 조선와사전기(주)는 ‘경성전기 마산지점’을 ‘조선와사전기 부산지점 마산영업소’로 격하시켰다.

 

<경성전기 마산지점이 조선와사전기로 넘어가는 부산일보(일문판) 1935년 11월 31일 기사>

 

그것도 잠시,

2년 후인 1937년 3월 7일 남부 조선 일대의 전기 회사(대흥전기, 남조선전기, 대전전기, 천안전기, 목포전기, 조선와사전기)들이 합동하여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라는 거대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조선와사전기(주) 부산지점 마산영업소’는 ‘남선합동전기(주) 부산지점 마산영업소’가 되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5월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는 남선전기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 마산영업소도 부산지점에서 분리해 마산지점으로 승격, ‘남선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이 되어 해방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1961년 6월 정부의 전기회사 통합정책에 의해 「한국전력주식회사법」이 공포됨에 따라 남선전기주식회사는 조선전업주식회사, 경성전기주식회사 등과 통합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로 출범하였고, 이에 따라 남선전기 마산지점’는 ‘한국전력주식회사 마산지사’가 되어 지금에 왔다.

이를 정리해보면 마산의 전기회사 변천과정은 다음과 같다.

1911년 3월 16일부터 ;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

1915년 9월 1일부터 ; 경성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

1935년 11월 1일부터 ;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 부산지점 마산영업소

1937년 3월 7일부터 ;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 마산영업소

1945년 5월부터 ; 남선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

1961년 7월부터 ; 한국전력주식회사 마산지사

이처럼 시기에 따라 마산의 전기회사 지점은 소유회사가 변했기 때문에 이 사택의 명칭도 그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이 건물의 건축시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Trackback 0 Comment 0
2021. 7. 1. 07:58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가치를 논하다

마산YMCA  제22회 시민논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에 현존하는 옛 전기회사 지점장 건물의 보전 문제를 두고 지난 3월 12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가 심의한 뒤 그 가치를 인정해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참석한 10명의 위원들이 격론을 벌이면서 토론한 결과라고 했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전기회사는 맞지만 그 전기회사가 한일와사전기인지 일한와사전기인지 아니면 경성전기인지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건축연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건물의 적절한 명칭과 건축연도, 건축적 가치, 그리고 향후 사용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제안한다.<<<

 

Trackback 0 Comment 0
2021. 6. 28. 00:00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마산YMCA 제89회 아침논단

 

 

 

이번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는 창원대학교 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준비한 이번 강연은 유물과 유적으로 창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장 중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 참석자에게는 특별한 기회가 있을 예정입니다.(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창원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사실과 관련한 2021년 4월 20일자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의 기사입니다.

 

창원지역 구석기 흔적 첫 확인

창원대·목포대박물관, 동읍 용잠리·도계동서 유적 발견

모룻돌 등 뗀석기 채집…"지역 고대사 공백 새롭게 써"

 

창원대박물관이 창원 의창구 도계동과 동읍 용잠리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견했다. 이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공백 상태로 남아있던 창원지역 구석기시대의 역사를 밝혀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창원대박물관은 19일 "올해 2월 김주용 학예실장과 팀원들이 동읍 용잠리와 도계동에서 구석기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뗀석기들을 채집했다"며 "이헌종 한국구석기학회장과 함께 확인과정을 거쳐 창원지역에선 최초로 구석기 유적을 발견하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밝혔다.

창원대박물관은 목포대박물관과 공동으로 창원지역 구석기 유적 조사를 벌여왔다. 구석기 연구 권위자이자 한국구석기학회장인 이헌종 목포대 고고인류문화학과 교수가 목포대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2월부터 고토양층이 있는 창원 의창구 동읍과 도계동, 북면, 대산면을 대상으로 조사해왔다.

창원대박물관은 지난 2월 학술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구석기 유적을 발견했다.

구석기시대 중·후기로 추정되는 자갈돌 망치, 모룻돌, 긁개, 도끼형석기, 미완성석기 등 유물 9점을 동읍 용잠리에서 확인했다.

용잠리 유적에서는 현재 과수원을 운영 중인데, 과수원 내 경작지에서 뗀석기를 채집했다고 박물관 쪽은 밝혔다.

 

<창원 의창구 도계동에서 출토된 구석기 유물. 여러면석기와 긁개, 망치돌, 도끼형석기, 미완성석기 등 10점. /창원대박물관>

 

창원대박물관은 도계동고분군 보존구역 안에서 사냥에 이용하는 팔매돌이나 망치돌로 사용되던 석영제 여러면석기 1점도 발견했다.

도계동에서 채집된 여러면석기는 깨진 면의 마모가 심한 상태로 확인됐다. 석기가 오랜 기간 지표면에 노출돼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물은 도계동지역의 토양분포 특성상 구석기의 존재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미확인 유적에서 이동돼 왔을 가능성이 커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창원대박물관의 설명이다.

이윤상 창원대박물관장은 "창원에서 최초로 신석기시대 유적과 공룡 발자국 화석을 찾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석기 유적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학교 당국의 인력증원 등 전폭적 지원과 목포대박물관의 협조를 통해 이번에 구석기 유적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창원대박물관이 창원시의 문화유적 조사용역사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그동안 공백 상태였던 창원의 구석기 역사를 새롭게 쓰는 중요한 유적을 확인하게 돼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헌종 한국구석기학회장은 "창원대박물관과 공동 조사를 통해 구석기 유적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창원지역에서 최초로 구석기 유적을 찾아낸 것은 지역 고대 역사를 새롭게 쓰는 매우 가치 있는 발견이다"라며 "앞으로 두 대학 박물관이 이번에 확인된 유적에 대한 추가 현장 조사와 유물의 실측, 보고서 작업 등을 함께 진행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7. 6. 1. 00:00

마산YMCA회관 설계

 

랜만에 해본 일입니다.

 

2005년 경남도민일보 입사 후에도 간혹 이일 저일 만졌지만, 기획 단계부터 개입해 마무리한 일은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마산YMCA회관 건축설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는 1980년 건축사 시험에 붙어 다음 해 6월 마산 창동에서 건축사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개업 후 적지 않은 건축물을 설계하였습니다.

볼만한 건물도 간혹 있었지만 부끄러운 건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건축설계는 천직처럼 제 몸에 착 붙었습니다. 재미있게 만족하며 일했습니다.

 

2005년 봄 뜻하지 않게 언론사 대표가 된 후 손을 놓았다가 '마산YMCA회관 건축설계' 때문에 다시 펜과 종이를 들었습니다. 작년 늦여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었지만 워낙 몸에 배였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1946 창립한 마산YMCA는 뿌리가 깊은 시민사회단체입니다.

 

저는 1975년 입회했습니다. 20대 초에 시작해 올해로 42년째니 YMCA는 제 인생 한복판을 관통한 셈입니다.

 

자체회관이 없었던 마산YMCA가 지난 70여 년간 회관 때문에 겪은 부침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91년부터 근무한 이윤기 사무총장이 지난 520일 개관식 날 이번 이사가 10번 째하는 이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건축비가 모자라 빚은 좀 남겠지만 70년 만에 가진 자체회관이라 마산YMCA 회원들은 요즘 많이 즐겁습니다.

 

토지를 구할 때부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YMCA는 시민사회단체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도 주된 목적 중 하나입니다.

YMCA는 자연을 매개로한 인성교육을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자연환경적 입지조건을 염두에 두고 땅을 찾았습니다.

 

1~2 걸려 마침내 찾은 곳은 마산 회원동 앵지밭골에 있는 땅이었습니다.

 

뒤로 700m 거리에 편백 숲이 있고 옆으로 300m 쯤에는 수백 년 된 마을 숲과 회원천 상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뒤편으로 무학산이 버티어 섰고, 왼옆으로는 시인 이선관이 마산 민주정신의 발현지로 꼽았던 봉화산이 눈 앞이었습니다 

 

 …… 가부좌한 참 스님답게 턱 버티고 / 앉아있는 봉화산의 돌 틈새에 /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불씨 / 식어질 줄 모르는 그 불씨 ……

 

터의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주변의 자연조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반풍수 눈에도 좌청룡 우백호에 남주작 북현무까지 어느 정도 갖춘 길지다 싶었습니다.

 

200여 평이라 넓지는 않지만 인접한 낙락장송이 땅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어서 아이들과 엄마들이 좋아할 곳이었습니다.

이사장과 이사들도 터를 본 뒤 선뜻 동의해 거금(?)을 치르고 매입했습니다.

 

계는 제 몫이었습니다.

 

어떤 건물을 앉힐지 구상이 시작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마산YMCA회관을 꼭 내 손으로 설계하고 싶었던 젊었던 시절도 떠올랐습니다.

좋은 건물을 짓고 싶은 마음과 넉넉하지 않은 자금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했습니다.

 

순리대로 공간을 자르되 치수를 아꼈습니다.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랐습니다.

루이스 설리반을 추종했다기보다 기능에 충실하면 단순해지고 단순해야 오래가기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함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사람 눈에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는 사각형 몇개를 엮어 정면을 완성시켰습니다.

 

집의 가치는 좌측의 낙락장송과 병풍처럼 뒤에 선 무학산에서 나오도록 했습니다.

건물은 그저 먹물로 찍은 한 점 손장난에 불과합니다.<<<

 

 

epilogue

 

공사는 태림건설 박현관 이사가, 감리는 마산Y 이사인 류창현 건축사가 맡아 고생했습니다.

그 덕에 집이 잘 지어져 지난 달 20일 개관식까지 가졌습니다.

 

본관은 진작 옮겨왔고 교방동 유치원도 이사를 마쳤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와 함께 마산YMCA의 하루하루가 활기차게 열리고 있습니다.

 

당분간 공간문제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턴 시민사회단체 역할을 다하는 데만 집중하면 될 일입니다.

 

앞으로 이 집에서 마산YMCA 사람들이 무슨 일들을 해낼지,, 궁금합니다.

 

 

 

 

 

Trackback 0 Comment 5
  1. 이윤기 2017.06.01 16: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사장님...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해 주신 덕분에 넉넉치 않은 자금으로도 멋진 건물을 완공하였습니다.

  2. 워킹마미 2017.06.01 18:37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 건물 감사합니다♡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사님의 고민과 애정이 느껴지네요. 최대한 많이 활용하고 아끼며 살겠습니다.

  3. 회원 2017.06.01 21:08 address edit & del reply

    이윤기총장이 빈 그릇을 잘 채울겁니다

  4. 허정도 2017.06.02 09:04 address edit & del reply

    설계를 제가 했을 뿐, 이 집을 있게 한 것은 마산YMCA와 관계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죠.
    감사한 일입니다~

  5. 안희정 2017.06.02 14:32 address edit & del reply

    몰랐던 사실을 알게됐네요
    고생많았습니다.
    시간되면 함 들렸다 감상하고싶네요
    오랫동안 좋은일들을 많이했네요
    축하합니다

2009. 12. 17. 06:00

중매 세 번하면 천당 간다는데



두 번째 중매에도 성공했습니다.
두 번 시도에 두 번 성공, 확률 100%입니다.


첫 중매가 1993년이었으니 16년만의 중매입니다.
경남은행에 다니던 총각 오공환과 마산건축사회에 근무하던 처녀 안경희를 이어 주었습니다.
1월에 중매를 섰는데 그 해 10월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지금 창원에서 아들딸 쌍둥이 낳아 네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가 벌써 중학교 3학년입니다.
오공환은 결혼 후 건축사 시험에 합격, 현재 창원 다몬건축사사무소 대표입니다.
이 부부, 지금도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 설 추석마다 우리 집에 찾아 옵니다.
와서는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저의 첫번째 중매입니다.


          <아들 딸과 함께 창녕 화왕산에 올랐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올 여름에는 서울 한 복판까지 갔네요>


두 번째 중매의 주인공 신부 최은영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마산YMCA 간사입니다.
영민하게 보이는 얼굴에 실제 일처리도 잘하는 마산YMCA 일꾼입니다.
영어를 잘한다는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여자 나이 밝히는 게 좀 그렇긴 합니다만, 중매까지 섰는데 봐주겠죠, 뭐.
갓 올라온 사학년입니다.

결혼 안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독신주의자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언젠가 한 번 ‘최 간사님, 결혼은 왜 안 해요?’ 물은 적이 있는데, 웃기만 했을 뿐 별 말이 없었습니다.

신랑 이진규는 고등학교 후배로 최 간사보다 다섯살 위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가 총각이란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결혼했느냐’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우연한 자리에서 아직 미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뭘 하고 살았는지, 지금까지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했다고 다른 후배가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선후배 사이에 인간성 좋다는 평판을 받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입니다.
건설관련업을 하는데, 해병대 출신이라 화통하고 몸도 건강합니다.

지난 1월 ‘최은영과 이진규, 둘이 어울리려나?’ 는 생각이 들어, 우선 최 간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다섯살 위 총각 한 번 소개할 테니 만나보겠느냐’ 고.
거절을 한 건 아니지만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총각? 농담일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질문을 받은 이진규 후배는 ‘회장님 소개라면 만나봐야죠’ 라고 냅다 대답을 하더군요.

‘회장’이란 호칭은 제가 창신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이라 후배들이 절더러 그렇게 부릅니다.

좋은 커플이 되겠다 싶어 최 간사에게 몇 차례 더 권했더니, 나중에는 못이긴 척 ‘결혼을 전제하기보다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으니’ 라는 조건을 달고 맞선에 응하더군요.

2월 중순, 시간은 오후 여섯 시로 기억합니다.
제가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라,
신문사 건너편 사보이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20분 쯤 함께 자리하다가 저는 중매쟁이 각본대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다음 날, 이진규 후배에게 전화해 어떻더냐고 물어보니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과분한 사람같더라' 면서 하루새 최 간사한테 푹 빠졌더군요.
그래서 제가,

‘최 간사는 자넬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더냐?’ 고 물으니 감이 잘 오지 않는다고 아리송한 답을 했습니다.

최 간사가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중매가 성사될 거라는 기대를 별로 안했습니다.

하지만 둘이 더러 만난다는 소문은 바람결에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진규 후배가 들떤 목소리로 ‘은영 씨와 결혼하기로 했다’ 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이 친구, 결국 아가씨의 마음을 돌려 세웠더군요.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
6월에 약혼식을 하더니 드디어
 지난 일요일 오후 한 시, 창원 인터내셔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 손잡고 '동시입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주례는 신랑의 고등학교 은사 창신고 강호환교감께서 맡았고,
결혼식에서 흔히 있는 축가 대신 중신애비인 제가 축사 한마디했습니다.

늦은 결혼이라 그런지 축하객들 얼굴도 모두 환했습니다.
특히 나이 많은 신랑 이진규는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결혼 안할 거라던 늦깎이 신부 최은영도 만족스럽고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제 짝 기다리느라 둘이 저렇게 늦었나?'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객 중 권영길 국회의원이 눈에 띄어 혼주와의 관계를 물었더니, 신랑 어머니가 창원 상남동에서 운영하는 '오동동 부엉이식당' 단골손님이라고 하더군요.

행복해하는 신랑 신부,
흡족한 표정의 양쪽 어머니,
왁자지껄한 축하객들의 웃음소리,
분위기 참 좋았습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여의고 지금은 홀어머니만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중매를 가장 기뻐하며 감사하는 분은 두 어머니였습니다.
신랑의 어머니는 특히 더 했습니다.
제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말씀과 표정 속에 그 마음이 짙게 묻어 나왔습니다.

그 동안 나이 든 딸과 아들을 둔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썩었으면 중신애비한테 그렇게 고마운 표정을 짓겠습니까.

이 신혼부부,
제주도로 3박4일 신혼여행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남들보다 한참 늦었으니 많이 뜨거웠겠죠?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저 역시 올해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나빴던 일도 없지 않았지만 보람 있었던 일과 재미있었던 일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흔 넘은 노총각 노처녀를 짝지어준 것이 그 중 잘한 일 같습니다.

이 두 사람,
남들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늦은 대신,
이 부부 하루는 다른 부부 한 달 사랑 한 것만큼, 이 부부 한 달은 다른 부부 일 년 사랑한 것만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기 바랄 뿐입니다.

애써 날 찾아 올 필요는 없지만,
첫 번째 중매한 부부처럼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라는 인사는 꼭 듣고 싶습니다.

중매 세 번하면 천당간다는데, 저는 이제 한 번 남았습니다.


                                               <신랑 신부 어머니들>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나는 신랑 옆에서 주례선생님은 신부 옆에서 축하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14
  1. 신삼호 2009.12.16 10: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두번째 커플 사진도 좀 올리시죠!

  2. 세미예 2009.12.17 06:26 address edit & del reply

    중매 잘하기가 참 쉽지않은데 잘하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고운 하루 되세요.

  3. 실비단안개 2009.12.17 08:47 address edit & del reply

    숨가쁘게 읽었습니다.

    신랑신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건강하시고
    모두모두 행복하셔요.^^

  4. 유림 2009.12.17 11:15 address edit & del reply

    중매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데..
    중매해서 다들 잘 사신다니 선배님의 또 다른 능력같습니다 하하

    교감선생님은 꽤(?) 낯이 익습니다 ㅎ

    • 허정도 2009.12.17 11:47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감기는 다 나았나요?

    • 유림 2009.12.17 18:36 address edit & del

      아닙니더..
      감기란 놈이 아주 질기게 붙어있는가 했는데
      아마도 빈혈때문에 감기가 쉬이 떨어지지 않나봅니다.
      조금 심하다고 하네요 ^^
      그래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 같아요
      너메 피좀 묵고 기운 차리겠습니다.ㅎㅎ

  5. 괴나리봇짐 2009.12.17 11:24 address edit & del reply

    오호.... 천국행 티켓이 바로 코앞이군요.
    정말 보람된 일 하신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 허정도 2009.12.17 11:47 address edit & del

      저도 참 흐뭇합니다.

  6. 한가비 2009.12.22 11:58 address edit & del reply

    회장님.이진규후배 결혼상대자 만나고 있다고 했을때 저역시 무척 기뻣습니다.멋쟁이 후배가 노총각으로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으니까요.큰일 하셨습니다.두사람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거라 생각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좋은글들도 잘 읽어 보고 있습니다.

    • 허정도 2009.12.22 14:59 address edit & del

      나도 참 흐뭇합니다.
      두 사람 잘 살아가도록 주위에서 도와 줍시다.

  7. 윤종수 2010.02.03 15:53 address edit & del reply

    오공환이와 고등학교 동기됩니다.
    이런 인연이 있었군요.

마산번창기(1908) - 16

제7장 교통 □ 우편전신, 전화 이들 사무는 모두 마산우편국에서 취급하고 일본인, 청국인, 한국인은 물론 구미인의 서신, 전보도 다 다루고 있다. 집화와 배달은 매일 수차례 행해지며 아주 편리하다. 특히 마산포에도 히로시 세이..

마산번창기(1908) - 15

제5장 신도 및 종교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런 시설도 없지만 멀리 고향을 떠나 한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숭배하여 앞날의 안전을 기원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건..

마산번창기(1908) - 14

제5장 교육기관 일본인 아동의 교육기관으로는 마산거류민단이 공설(公設)한 마산심상고등소학교가 있다. 위치는 전에 신월동 지역 내에 있던 철도관리국의 소관지이며 신시와 마산포 사이에 있으면서 약간 신시 쪽에 가깝다. 그 소재지는..

마산번창기(1908) - 13

제4장 위생 및 의료 공중위생으로는 1906년(명치39년) 가을에 비로소 대청결법(大淸潔法)이 제정되어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집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청결사(淸潔社)라는 회사가 있어 한인 인부들이 매일 일인 감독의 지휘 하..

마산번창기(1908) - 12

제3장 지질 및 기후 마산 부근 일대는 제3기층에 속하는 데가 많고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또는 결정편암(結晶片巖)을 노출하고 있는 데가 있다. 해변 및 평야는 주고 제4기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미(地味)는 기름지고 좋다. ..

마산번창기(1908) - 11

마산의 관공서 - 5 □ 민의소(民議所)-마산포 소재(전 마산보통학교 터) 이것은 한인(韓人) 측의 자치기관이며 마산포 읍내 6개 동의 하급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사무소에도 역시 민의소장과 부소장이 있고 의원도 있지만 ..

마산번창기(1908) - 10

마산의 관공서 - 4 □ 마산거류민단역소(馬山居留民團役所)-신시 사카에마치(榮町, 홍문동) 소재 1899년(명치 32년) 7월에 조직된 일본거류민회의 총대(總代) 사무소가 진화한 것이며 그 후 총대를 이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

마산번창기(1908) - 9

마산의 관공서-3 □ 마산경찰서-신시 토모에마치(巴町, 대외동) 소재 각국 거류지회 조직과 더불어 각국 경찰 사무를 보기 위해 설치된 것이며 새로 신축할 곳은 마산정차장 앞 철도관리국 소관지를 예정하고 있다. 아마 1909년(..

마산번창기(1908) - 8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2 □ 러시아 영사관(露國領事館)-신시 다이마치(臺町) 소재 마산이사청의 구청사를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붉은 벽돌 벽에 유리창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것이 러시아 영사관이고 지금은 영사 대리인 한 ..

마산번창기(1908) - 7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1 □ 마산이사청(馬山理事廳)-신시(新市) 다이마치(臺町) 소재 언덕 위의 조망이 좋은 데에 있으며 1899년(명치 32년) 개항 당시 부산 영사관의 분관으로서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로 하여금 건..

마산번창기(1908) - 6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4 ■ 마산포 - 2 □ 월영동(月影洞) 신시의 서쪽부터 남쪽 일대를 포함하는 큰 마을이다. 그 일부는 일본의 전관지(專管地)이기 때문에 1908년(명치 41년) 7월 퇴거령으로 인해 서쪽의 산 ..

마산번창기(1908) - 5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3 ■ 마산포 - 1 신시(新市)의 북쪽 약 2km 거리에 있는 본래의 마산이다.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일본 해군성 수로부가 간행한 조선의 해안, 항로, 도서 등의 지리정보를 망라한 수로지로 동..

마산번창기(1908) - 4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2 ■ 각국 거류지(各國 居留地) 월영동의 일부와 신월동 일부를 쪼개서 이루어진 해변의 신시가(新市街)이며 마산이사청 관내의 중심인 곳이다. 1898년(명치 31년) 2월 21일부 칙재(勅裁)로 개..

마산번창기(1908) - 3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1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밝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

마산번창기(1908) - 2

서언 마산의 진상(眞相)을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으로 세상에 알리는 일은 오직 스와교도(諏方去洞) 씨가 편찬한 『마산번창기』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시찰이나 관광 명목으로 수많이 관민에 의한 수기가 잡지, 신문 등에 기술되었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