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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육군중포병대대 연병장 매립 (옛 한국철강 터)>


1909년 일본 육군중포병대대가 월영동(구 국군통합병원자리, 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으로 오면서 진입 도로 일부와 대대가 끼고 있던 자복포 일부를 매립하여 연병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창원으로 떠난 한국철강 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철강 터 중 안쪽(월영동 아파트 단지 쪽)입니다.

아래 그림은 1912-1914년 경에 제작된 지도입니다.
중앙하부에 직선으로 그려 놓은 기역자 형 토지 내 ‘연병장(練兵場, 둥근 점)’이라고 적혀 있는 곳이 매립지입니다.
이 자리에 부대가 들어선 것이 1909년이고, 주위에 연병장 둘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부대 이전 직후 간석지를 매립해 연병장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입도로 쪽 일부(사각 점)도 매립한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1899년 제작된 매립 전 지도를 보면 비교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매립공사는 일본군부에서 시행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절차와 과정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엇습니다.
다만 부대 이전 후 달라진 해안선 형태를 지도로 확인하여 추정했을 뿐입니다.

면적은 진입도로 쪽 약 4천 5백여 평, 자복포에 있는 연병장이 약 2만여 평(매립부분과 평토작업부분 포함) 정도 되었습니다.

위 지도에 나타난 부분의 현재 상황입니다.
노란색으로 그은 부분이 매립과 평토처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역입니다.



<옛 고려모직 (현 오동동 서광아파트) 부근 매립>

1912년 토지조사 이전의 시기, 간석지였던 옛 고려모직(현 오동동 서광 아파트 ) 부근에 일본인이 토지로 사용하기 위해 매립을 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지적도의 형태를 보아 오동동 16번지와 17번지였던 것 같았습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사정토지대장에 나타나는 기록을 보면, 이 토지는 1912년 사정(査定)되었는데 오동동 17번지의 1,139평은 일본인 ○동행조(○銅幸朝), 오동동 16번지의 235평은 한국인 윤군옥이었습니다. 지도를 이용하여 추정한 매립면적은 약 2천 4백여 평이었습니다.

중간에 소유권이 바뀌었다가 1939년 조선물산주식회사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가 해방 후 고려모직(주) 소유가 된 땅입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마산도시의 갈등요인인 매립은 시작부터 주민 의사와 상관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개항이후시기(1899년-1910년) 마산에서 있었던 네 차례의 매립공사와 계획으로만 그친 다섯 차례 매립에 대한 포스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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